"국정원 악용되는 경우 있어 서글퍼"...이재명, 첫 부처 방문서 과오 성찰·사명감 주문
권력 악용 논란의 중심에 섰던 국가정보원을 둘러싸고, 이재명 대통령과 정보기관이 정면으로 과거를 마주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부처 방문지로 국가정보원을 선택하면서, 국정원의 과오 성찰과 개혁 의지가 다시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8일 국가정보원을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은 뒤 "국정원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때 국가가 얼마나 더 나아지는지 보여달라"고 당부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이 대통령의 국정원 방문은 취임 이후 처음이며, 개별 부처를 직접 찾아 업무보고를 받은 것도 정부 출범 후 첫 사례다.

이 대통령은 국정원의 위상과 책임을 동시에 강조했다. 그는 "국정원이 바로 서면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국정원이 국가 경영에 있어 정말로 중요한 조직이지만, 역량이 큰 만큼 악용되는 경우가 있어서 서글프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각오와 사명감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국가정보원이 최근 실시한 자체 특별감사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강유정 대변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국정원이 계엄과 내란 정국에 휘말리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특별감사를 통해서 지난 과오를 시정했다"는 취지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통령실은 국정원이 계엄군의 선거관리위원회 서버 점검 의혹 사건 등에 대해 내부 특별감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오찬 자리에서도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과오 성찰과 조직 사기 진작이라는 두 축에 맞춰졌다. 이 대통령은 "여러분 중 압도적 다수는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가끔 쌀에 뉘가 끼듯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동원을 당하는 일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간첩 조작 사건 같은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모든 직원이 도매금으로 비난받는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공무원으로서의 자부심도 거듭 상기시켰다. 이 대통령은 "최근 순방을 다녀오며 대한민국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체감했다. 이렇게 만든 것의 핵심은 바로 공무원"이라며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누가 뭐라 한들 여러분의 국가 정보 활동은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냐"며 "국가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달라"고 독려했다.
이 대통령이 첫 방문 부처로 국정원을 고른 배경에 대해 강유정 대변인은 "지난 과오를 성찰하고 혁신해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는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격려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정원은 여러 불미스러운 일에 연관된 바 있으나, 이번 내란에는 휘말리지 않았다"며 "과거를 단절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국정원의 노력을 치하하고자 직접 방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정원 스스로의 반성도 이어졌다. 강 대변인에 따르면 이날 업무보고에서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은 "조태용 전 원장을 비롯해 역대 국정원장 16명 중 절반이 불법 도감청, 댓글 공작, 내란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고 돌아봤다. 정보기관 최고 책임자 상당수가 형사 처벌을 받은 비극적 역사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종석 원장은 "지금 국정원은 문화 예술인 블랙리스트 피해자, 민주노총 간첩단 무죄 대상자에 사과하는 등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국민만 바라보며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과거 정치 개입과 공안 조작 논란에서 벗어나 대외·대공 정보 수집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선 국정원 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가열될 가능성이 크다. 여권은 대통령의 첫 부처 방문이 국정원에 대한 신뢰 회복과 책임 강화라는 이중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과 전문성 제고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과거 간첩 조작 사건과 불법 사찰 논란 등을 거론하며 보다 강도 높은 제도 개혁과 국회 통제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국정원의 과오 성찰이 내란 사건 수사, 권력기관 개편 논의와 맞물리면서 향후 정국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와 관련 상임위는 국정원 특별감사 결과와 후속 조치 이행 상황을 집중 점검할 전망이며, 여야는 정보기관의 권한 범위와 통제 장치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