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안전 강화 대책 추진…과기정통부, 첨단 연구환경 위험 낮춘다
연구개발 현장의 안전 관리가 과학기술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반복되는 연구실 사고를 줄이기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면서, 첨단 분야로 확장되는 연구 환경 전반의 안전 기준을 손질하는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 바이오, 2차전지 등 고위험 실험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연구자 보호와 연구 연속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제도 개편 여부에 업계와 학계의 관심이 쏠린다.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21일 서울 코리아나 호텔에서 제14회 연구실안전심의위원회를 주재하고 연구실 안전 강화 대책 안을 심의했다. 연구실안전심의위원회는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제7조에 근거해 설치된 심의 기구로, 연구실 안전 관련 주요 정책의 총괄과 조정 역할을 맡고 있다. 위원장은 과기정통부 1차관이 맡고 있으며, 과기정통부와 교육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 국장급 공무원과 산학연 연구실 안전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이번 회의에서 논의된 연구실 안전 강화 대책 안의 목표는 첨단 실험 장비와 대형 연구시설, 위험물질 사용이 늘어난 연구 현장에서 구조적인 사고 감소를 유도하는 데 있다. 특히 반복 사고 요인을 점검하고, 고위험 분야를 중심으로 안전 규정과 관리 체계를 고도화하는 방향이 중심 과제로 다뤄졌다. 과기정통부는 연구 환경이 첨단화와 대형화, 고위험화되는 흐름에 맞춰 기존 규제 중심 관리에서 선제적 위험 예측과 예방 중심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은 화학물질, 생물학적 위험인자, 물리적 위험을 다루는 전국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기업 부설연구소의 실험실을 관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최근 반도체, 나노소재, 합성생물학, 유전자 편집 등 신기술 분야 실험이 늘면서 기존 법령이 첨단 연구 환경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번 대책 안에는 이러한 기술 환경 변화를 반영한 법령 개정 방향과, 안전 점검 체계 고도화 방안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대형 연구장비와 공정 시뮬레이션 장비를 다루는 실험실에서는 고압, 고전압, 극저온 등 복합 위험이 동시에 존재해 기존 화학물질 중심 안전관리 체계로는 위험을 충분히 통제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유전자 재조합 실험, 병원체 취급 수준이 높아지면서 생물안전등급에 따른 차등 관리와 공간 분리, 폐기물 처리 체계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이번 대책은 이러한 고위험 연구를 별도 등급으로 세분화해 관리하거나, 분야별 맞춤형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는 방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연구 현장에서는 위험을 사후에 점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설계 단계부터 안전을 반영하는 체계 구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신규 연구시설 설계와 장비 도입 과정에서 안전 기준 반영을 의무화하고, 연구 과제 기획 단계에서 위험성 평가를 병행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과기정통부가 언급한 법령 개정과 제도 개선에는 이러한 선제적 안전설계 개념을 제도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
예산 지원 방향도 관심 영역이다. 안전관리 전담 인력 확보와 노후 실험실 개선, 위험 감지 센서와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 등은 연구 기관 단독 재원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이어져 왔다. 특히 중소 연구기관과 지방 대학 연구실은 최소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데 필요한 설비 투자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연구실 안전 인프라를 국가 연구개발 예산과 연계해 지원하거나, 특정 분야를 대상으로 한 안전 인프라 패키지 사업을 통해 격차를 줄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선진국에서는 연구실 안전을 연구 생산성과 직결된 핵심 인프라로 간주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미국과 유럽의 연구기관들은 화학물질 관리와 생물안전 체계를 세분화하고, 안전 담당 책임자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 왔다. 디지털 기반 안전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실험실 출입과 시약 사용, 장비 상태를 실시간 관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연구실 안전을 디지털 전환과 연계해 관리 효율을 높이고, 사고 데이터를 축적해 위험 예측 정확도를 끌어올리는 방향이 대책에 반영될 수 있다.
연구실 안전 정책은 과학기술 분야 규제 완화 흐름과도 맞물린다. 첨단 바이오와 AI, 반도체 소재 개발 등에서 신속한 실험과 시범 적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규제 개선이 논의되는 만큼, 안전 기준을 어떻게 병행 강화할지가 관건으로 떠오른다. 특히 바이오와 화학 분야에서는 연구 단계에서의 안전 미비가 곧바로 인체와 환경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어, 규제 혁신과 안전 규율 간 균형 설계가 필수 과제로 지목된다.
구혁채 차관은 과학기술을 국가 핵심 동력으로 규정하며, 연구자 안전 보호를 과학기술 발전과 분리할 수 없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대책을 통해 연구자들이 안심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과 예산 지원, 제도 개선 등 연구실 안전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향후 공개될 구체적 대책 내용과 실행력에 따라 국내 연구 생태계 전반의 신뢰도와 글로벌 협력 수준이 좌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 안전 정책 논의가 실제 현장에 얼마나 빠르고 촘촘하게 안착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