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시트 이행 협의체 논의”…박윤주, 미국과 원자력 협력 후속 협상 착수

정책 후속 조치를 둘러싼 한미 간 줄다리기가 본격화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조인트 팩트시트 이행 방향을 놓고 외교 당국이 고위급 협의에 착수하면서 원자력 협력 확대와 대북정책 조율이 정국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30일 미국 워싱턴 DC 인근 덜레스 공항에 도착해 연합뉴스 기자들과 만나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를 위해 방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안을 구체화하고 이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 측과 연쇄 접촉에 나선다.

박 차관은 방미 목적과 관련해 “팩트시트에서 논의된 여러 이슈를 양국 간에 상의하고 어떻게 진전을 만들지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팩트시트 이행을 전담할 한미 간 협의체 설치 여부에 대해 묻자 “그런 것을 포함해서 논의할 것”이라고 언급해 별도의 이행 조직 구성을 시사했다.

그는 “한미 간 여러 가지 사항이 실제로 이행되려면 미측도 필요한 조직이 있어야 하고 우리도 필요한 조직이 있어야 한다”며 “미측 사정을 감안해서 협의 채널을 파악하고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이 각각 전담 조직과 상설 채널을 마련해 후속 협상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핵추진 잠수함 확보 문제를 협의할지에 대한 질문에 박 차관은 구체 사안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팩트시트에 있는 여러 가지 사안들 한번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진전을 만드는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해 원자력 협력 전반이 포괄적으로 다뤄질 수 있음을 내비쳤다. 대북정책 조율 여부에 대해서도 그는 “전반적으로 모든 사안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고 답했다.

박 차관은 12월 1일 크리스토퍼 랜도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회담할 예정이다. 이번 회담은 10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11월 14일 조인트 팩트시트 발표 이후 처음 진행되는 고위급 대면 협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박 차관은 회담에서 팩트시트에 명시된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관련해 조속한 이행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이 문구에 따라 한국이 향후 어느 수준까지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현행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 이른바 123협정 틀 안에서 권한을 보완할지, 아니면 협정 개정까지 검토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거론된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1월 28일 국회에서 “협정을 개정할지 아니면 현재 협정에 추가로 어떤 조항을 추가시킴으로써 우리가 농축과 재처리를 할 수 있게 할 것인지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발언은 정부가 협정 개정과 보완조항 신설 두 가지 방안을 모두 열어둔 채 미국과 협상에 나서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미국이 비확산 원칙과 국내법 요건을 강조해온 만큼, 한미 간 시각차와 정치적 부담도 변수로 꼽힌다. 한국 내에서는 에너지 안보와 폐연료 관리 차원에서 자주적 기술 확보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미국 내에서는 동맹 지원과 핵비확산 체제 유지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병존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워싱턴 회담에서 구체 합의에 직결되기보다는, 팩트시트에 담긴 문구를 실제 협상 의제로 옮기기 위한 이행 협의체 구성과 협상 절차 설정이 우선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원자력 협력뿐 아니라 대북정책, 경제안보, 첨단기술 협력 등도 패키지로 점검되면서 향후 한미 전략 대화의 기본 틀이 재정비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부는 한미 간 고위급 채널을 통해 원자력·안보 협력의 로드맵을 구체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회 역시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 개정 여부 등 실질적 쟁점을 놓고 향후 회기에서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