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10.6기가 공급…과기정통부, 국방·UAM 지원 확대
공공 인프라의 디지털 전환을 떠받치는 주파수 정책이 국방과 재난 안전, 차세대 모빌리티를 축으로 재편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놓은 2026년 공공용 주파수 수급계획은 첨단 무인체계와 도심항공교통 같은 신산업 수요를 전제로 설계돼, 전파 자원이 사실상 국방·안보와 공공 서비스 혁신의 전략 자산으로 쓰인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업계와 정책당국에서는 이번 계획을 국방 중심 공공망과 차세대 교통 인프라 구축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공용 주파수 정책협의회를 통해 2026년 공공용 주파수 수급계획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전파법에 근거한 연례 수급계획으로,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이 제출한 중기 주파수 이용계획을 평가해 실제 공급량과 대역, 조건을 결정하는 절차다. 올해는 국방부와 국토교통부를 포함한 21개 기관이 총 47건의 신규 주파수 이용계획을 냈고, 과기정통부는 이에 대해 적정 14건, 조건부 적정 29건, 부적정 4건으로 분류했다. 평가 결과에 따라 공공용으로 총 10.6기가헤르츠폭의 주파수가 배분된다.

이번 수급계획의 기술적 핵심은 고주파 대역을 활용한 드론 탐지 레이다, 무인기 지휘 통제, 해상 감시, 조류 탐지 레이다 등 감시 정찰체계에 필요한 연속 대역을 우선 공급했다는 점이다. 레이다와 통신 시스템은 주파수 연속성, 대역폭 크기, 출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성능을 확보할 수 있는데, 과기정통부는 국방·안보 분야에만 8.5기가폭을 묶어 공급해 기존 파편화된 대역 사용 구조의 한계를 줄이려 한다. 이를 통해 다중 표적 동시 탐지, 장거리 정밀 추적, 저피탐 드론 식별 등에서 기존보다 높은 분해능과 추적 정확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가로 2.1기가폭은 재난 예방과 국민 안전 서비스를 위해 책정됐다. 해상감시 레이다와 조류탐지 레이다에는 파고, 유속, 조류 방향 정보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중고주파 대역이, 철도 무선제어에는 열차와 관제센터 간 지연 시간이 짧고 간섭에 강한 안정적 통신 대역이 요구된다. 산불 감시의 경우 산악 지형에서의 난반사와 전파 음영을 고려해 다중 기지국·중계기 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정 폭 이상의 연속 대역이 있어야 센서망과 영상 전송망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런 수요를 종합해 재난·철도·환경 감시 분야에 추가 대역을 붙여주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공급 방식도 나눴다. 적정 판정을 받은 계획은 수요와 기술 스펙이 명확해 곧바로 공급 절차에 들어가고, 조건부 적정은 기관 간 공동 사용, 필요 대역폭 조정, 기술 고도화 일정 등을 전제로 한다. 주파수는 희소 자원이라 동일 대역을 복수 기관이 지역·시간·용도 기반으로 공유하는 방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데, 이번에 조건부 적정이 29건에 달한 것은 공공 영역에서도 이런 공유 모델이 본격 도입된 신호로 해석된다. 반면 장비 출력이나 필요 대역폭이 확정되지 않았거나 수요 추정이 불명확한 계획 4건은 부적정 평가를 받았고, 추후 기술 스펙이 구체화될 경우 다시 심사받게 된다.
차세대 공공 서비스 측면에서는 위성과 도심항공교통을 위한 주파수 공급이 주목된다. 과기정통부는 위성통신과 UAM 관련 신규 서비스 2건에 25.38메가헤르츠폭을 배분할 계획이다. 위성 분야에서는 저궤도 위성을 활용한 광역 통신과 재난 감시, 항행 보정 서비스 등이 대상이 될 전망이다. UAM의 경우 지상과 기체 간 통신, 기체 간 충돌 방지, 교통 관제 시스템 연동에 필요한 전용 또는 준전용 대역이 필요하다. 도심 상공에서 수백 대의 기체가 동시에 움직이는 시나리오를 고려하면, 통신 실패나 간섭이 곧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주파수 정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국방·안보 부문에서는 드론과 무인체계 수요 확대가 주파수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있다. 무인 정찰기, 자폭 드론, 다중 드론 군집 운용 같은 개념이 실제 작전 개념으로 자리잡으면서, 영상·레이더·항법 데이터를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넓은 대역과 고신뢰 통신이 필요해졌다. 기존 유선 기반 지휘통제 체계와 달리, 무인체계는 대부분 전파에 의존하기 때문에 특정 대역 혼잡이나 간섭이 작전 수행 능력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기정통부가 국방·안보 분야 20건에 전체 공급량의 상당 부분을 집중한 배경이다.
글로벌하게도 공공용 주파수는 국방과 신산업 지원을 동시에 겨냥하는 방향으로 재편되는 추세다. 미국은 군 위성통신과 5세대 이동통신 간 주파수 재할당을 조정하며 양측 요구를 조율하고 있고, 유럽은 항공·철도 안전망과 디지털 인프라 확충을 연계한 주파수 계획을 추진 중이다. 중국 역시 군용 레이다와 민간 5세대, 위성항법 시스템이 혼재된 환경에서 국가 차원의 종합 주파수 관리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이번 한국의 수급계획도 국방, 재난, 차세대 교통을 한 묶음으로 보는 방향에서 이런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규제와 절차 측면에서는 주파수 배분 이후의 이행 관리가 관건이다. 과기정통부는 적정 평가를 받은 이용계획에 대해 실제 사업 추진 일정과 무선국 개설 계획에 맞춰 개별 허가를 발급하고, 이 과정에서 혼신과 간섭 가능성을 다시 검토할 방침이다. 전파 혼신은 같은 대역 또는 인접 대역을 사용하는 다른 시스템의 성능을 떨어뜨리거나 서비스 중단을 야기할 수 있어, 전파 강도, 안테나 방향, 지리적 분포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특히 해상과 산악, 도심 상공처럼 전파 환경이 복잡한 영역에서는 시뮬레이션과 실측을 반복해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향후 수급계획에는 무인체계 국방력 강화, 국민 안전 확보, 도심항공교통 등 공공 서비스 혁신이 핵심 축으로 반영될 예정이다. 디지털 전환이 진전될수록 공공 서비스는 센서, 통신, 데이터 분석이 결합된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변하고 있어, 주파수 정책이 곧 서비스 품질과 안전의 하드웨어 인프라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통신 업계와 방산,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이번 공공용 주파수 공급 결정이 향후 사업 구조와 기술 투자 방향을 가르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수급계획에 따라 배분된 주파수가 실제 현장 시스템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