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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가 현장 동료로"…GS건설·LGU+, 업무혁신 가속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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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가 건설과 통신 등 전통 산업의 업무 방식을 바꾸고 있다. 대규모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한 챗GPT 엔터프라이즈가 현장에서 프로그래밍 경험이 없는 직원의 앱 프로토타입 제작까지 돕는 수준으로 확장되면서, 기업 내부의 디지털 전환 방식도 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단순 RPA 수준의 효율화 경쟁을 넘어, AI를 동료로 전제한 전사적 업무 재설계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GS건설은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빠른 축에 속하는 시점에 챗GPT 엔터프라이즈를 도입했다. 도입 이후 일간 활성 사용자 비율 94퍼센트, 월간 활성 사용자 비율 99퍼센트라는 수치를 기록하며, 사실상 전 직원 활용 체계를 구축한 상태다. 서아란 GS건설 DX·CX 혁신부문장은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열린 오픈AI 코리아 기자간담회에서 “오픈AI로부터 글로벌 최상위 활용 수준이라는 평가를 들었다”며 “AI가 단순한 도구에서 일상의 동료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 도입 효과는 건설 현장과 사무 조직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 50대 건설 현장 소장은 과거 파워포인트 제작을 외부에 요청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챗GPT의 코드 생성 기능을 활용해 스스로 작업지시용 앱 화면을 구현했다. 기존에는 전문 개발팀 의존도가 높았던 영역에서, 자연어 대화를 중심으로 한 코드 생성과 화면 설계가 가능해진 것이다. GS건설은 이러한 사례를 내부 프로토타입 수준에서 검증하며, 후속 개발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현장 안전 관리 영역에서도 활용 방식이 구체화되고 있다. 안전 담당 직원은 소방 관련 인테리어 개선안을 고민하던 과정에서 챗GPT와 아이디어를 교환해 대안을 도출하고, 이를 실제 현장 설계와 시공에 반영했다. 종이 스케치나 반복 회의에 의존하던 의사결정 구조를, AI 기반 시뮬레이션과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특히 이번 활용은 코드 작성이 아닌 창의적 설계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 생성형 AI가 지식 노동과 현장 업무의 경계를 허무는 사례로 평가된다.

 

GS건설은 효과적인 내재화를 위해 사내 갤러리 형태의 유스케이스 공유 체계를 만들었다. 건축 영업 부서에서 생성한 우수 프롬프트와 산출물을 토목 영업 부서가 참고하는 식으로, 기밀 정보를 제외한 활용 노하우를 부문 간에 자발적으로 공유하도록 설계했다. 이 결과 도입 100일 만에 1000건 이상 사례가 축적됐으며, 직원 개개인이 AI 활용법을 학습하고 고도화하는 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서 부문장은 “직원들이 AI를 동료처럼 인식하게 된 과정 자체가 조직문화 전환의 핵심 성과”라고 설명했다.

 

통신 업계에서는 LG유플러스가 컨택센터에 LLM을 결합해 업무 흐름을 재구성하고 있다. 기존 AI 콜봇이 메뉴 안내나 간단 정보 제공 수준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LG유플러스는 오픈AI 기술을 결합해 상담 전 과정을 엔드투엔드로 처리하는 구조를 구축 중이라고 밝혔다. 정영훈 LG유플러스 기업AI사업 담당은 “기존에는 기능과 부서 단위로 파편화된 효율화에 그쳤다면, LLM 기반 상담은 기업 전체의 업무 플로우와 워크로드를 하나로 묶는 통합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병원 예약 상담을 예로 들 수 있다. 과거 콜봇은 예약 정보 조회와 같은 수동적 안내에 그쳤지만, LG유플러스가 오픈AI와 함께 구현 중인 컨택센터는 전자의무기록과 고객관계관리 시스템을 연동해 실제 예약 변경까지 단일 대화 흐름 차원에서 수행한다. 이후 예약 변경 결과를 문자나 알림톡으로 재확인까지 제공하는 완결형 상담 모델을 지향한다. 단순 음성 인터페이스를 넘어, 내부 시스템과 연계된 에이전틱 콜봇 구조가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LG유플러스는 12월 중으로 에이전틱 콜봇 스탠다드 상품을 공개하고, 2025년 상반기에는 고도화 버전인 에이전틱 콜봇 프로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 서비스는 고객 의도를 LLM이 해석하고 필요한 사내 데이터를 조회한 뒤, 자체적으로 행동 계획을 수립·실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순 FAQ 기반 응답이 아니라, 실제 업무 프로세스에 개입하는 수준의 자동화를 통해 컨택센터 역할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정 상무는 “과거에는 상담센터 효율화를 내세운 AI 도입이 오히려 고객 불편을 키웠다는 자성이 컸다”며 “이제야 LLM을 활용한 새로운 컨택센터 아키텍처가 본격 시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AI 활용이 수동적 지원에서 능동적 실행으로 이동하면서, 일자리 대체 논쟁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서아란 상무는 GS건설 사례를 언급하며 “AI 전환이 사람을 대체하는 과정으로 오해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는 기업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중견·고경력 인력의 경우 이미 현장 도메인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 AI를 통해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집단이라는 평가다. 반면 신입사원과 청년층에게는 어떤 새로운 역할과 경력 경로를 제공할지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영훈 상무는 국내 생태계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글로벌 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국내 기업들끼리만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글로벌 선도 기업과 협력해 국내 AI 역량을 확장하는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며 “정부, 통신·제조 등 대기업, 그리고 글로벌 빅테크가 함께 논의하는 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오픈AI와 같은 해외 모델 제공자를 단순 기술 공급자가 아니라, 산업 구조 전환의 동반자로 바라보는 관점에 가깝다.

 

오픈AI 코리아도 이런 방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경훈 오픈AI 코리아 총괄 대표는 “경제적으로 가치가 큰 활동 대부분이 기업 내부에서 발생하는 만큼, AI의 긍정적 경제 효과도 기업의 AI 전환을 통해 가장 크게 실현될 수 있다”며 “오픈AI 코리아가 국내 기업 AI 전환의 최적 파트너가 되겠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100만 개가 넘는 기업이 오픈AI 기술을 기반으로 AI 전환을 추진 중인 만큼, 한국 기업의 도입 속도와 활용 전략에 따라 산업 경쟁력이 갈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앞으로의 경쟁이 단순 모델 성능보다 활용 구조와 제도 설계에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과 통신처럼 규제가 촘촘한 분야에서는 개인정보 보호, 시스템 연계, 책임 소재 등 복합 이슈가 얽혀 있어, 기업 단독이 아닌 정책·규제 당국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GS건설과 LG유플러스 사례가 보여주듯, AI를 ‘사람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업무 방식을 재설계하는 동료’로 정의하는 조직이 향후 AI 전환 경쟁의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산업계는 이러한 변화가 실제 생산성과 서비스 품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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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코리아#gs건설#lg유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