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발자국이 증거가 된다”…외도·이혼 분쟁에 IT 포렌식 급부상
모바일 메신저와 스마트홈 기기가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으면서, 외도와 이혼을 둘러싼 분쟁 양상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 배우자의 휴대전화 문자 한 줄, 출입문 비밀번호 변경 기록이 곧바로 법정에서 다뤄지는 디지털 증거가 되면서 IT 기술과 가사소송이 맞물리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디지털 포렌식 활용이 혼인 파탄 책임을 가르는 핵심 도구로 부상하는 동시에, 계정 접근·비밀번호 변경 행위가 새로운 법적 분쟁 요소로 떠오른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소개된 한 이혼 갈등 사연은 이러한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남편은 아내의 귀가 패턴 변화와 한밤중 몰래 이뤄진 통화를 의심하다가, 결국 아내의 휴대전화에서 남자 동창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확인하고 외도 사실을 파악했다. 물리적 증거보다 메신저 기록이 사실상 ‘결정타’ 역할을 한 셈이다. 실제 가사소송에서는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 대화, 통화 기록, 위치 기록, 사진 메타데이터가 혼인관계 파탄 시점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1차 디지털 증거로 폭넓게 활용되는 추세다.

핵심 기술은 디지털 포렌식이다. 디지털 포렌식은 삭제되거나 숨겨진 전자 데이터를 추출해 복원하고, 조작 여부를 검증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포렌식 전문업체나 법원 감정인은 스마트폰의 저장공간, 클라우드 백업, 메신저 로그, 심지어 IoT 기기의 접속 로그까지 확보해 시간대별로 행동 패턴을 재구성한다. 예를 들어 모텔 방문이 의심되는 시점의 기지국 접속 기록, 차량 내비게이션 위치 이력, 숙박 앱 결제 기록을 결합하면, 기존 아날로그 증거보다 훨씬 높은 정밀도로 외도 여부를 뒷받침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사례처럼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하게 바뀌거나 야근이 잦아지는 상황은, 사전에 동의한 위치 공유 서비스나 회사 출입기록 시스템을 통해 디지털로 검증될 수 있다. IT 기반 근태관리 솔루션은 출입 시간과 장소를 분 단위로 기록하는데, 법원은 이런 시스템을 비교적 신뢰도 높은 데이터로 보고 있다. 다만 배우자 동의 없이 불법으로 계정에 침입해 데이터를 추출할 경우, 정보통신망법 위반이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어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해졌다.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둘러싼 공방은 스마트홈 기술과 법의 마찰 지점을 보여준다. 공동명의 주택에서 일방이 스마트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꿔 상대방의 출입을 차단한 경우, 최근 판례는 ‘디지털 잠금장치 조작’도 사실상 출입 제한·사용 방해로 보고 손괴죄 등 형사책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출입통제 권한이 물리적 열쇠에서 네트워크 기반 스마트락으로 옮겨 간 만큼, 비밀번호 변경 이력과 관리 로그가 곧 법적 책임을 가르는 IT 데이터가 되는 셈이다.
명예훼손 쟁점에서도 디지털 특성이 작동한다. 외도 사실을 양가 부모에게 알린 행위는 전파 가능성이 제한돼 명예훼손 성립 가능성이 낮다는 해석이 많다. 반면 같은 내용을 메신저 단체방이나 소셜미디어에 게시할 경우,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전파’ 요건을 충족해 바로 형사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순식간에 캡처·공유되는 환경에서, 감정적 폭로 한 번이 디지털 증거로 남아 역으로 소송에서 불리한 카드로 돌아오는 사례도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외 IT 기업들은 이러한 민감한 가정 내 분쟁 데이터를 둘러싼 책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로그 보관 기간 단축과 데이터 암호화 강화, 접근 권한 이력 기록 등 기술적 조치를 확대하는 중이다. 클라우드 메신저 업체들은 메시지 내용에 직접 접근하지 못하는 종단간 암호화 방식을 유지하면서, 수사기관 요청 시 제공 가능한 범위를 약관과 투명성 보고서로 공지하는 방식으로 법적 요구와 이용자 프라이버시 사이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지털 증거를 전제로 한 가사소송 실무가 정착되는 분위기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위치추적 기기, 차량 블랙박스, 스마트워치 활동 기록 등이 불륜 입증뿐 아니라 양육권 분쟁에서도 부모의 생활습관과 돌봄 시간 확인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무단 위치추적 앱 설치나 계정 해킹을 통한 증거 수집은 불법으로 간주돼,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추가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증거가 이혼 소송의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데 기여하는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수집된 데이터가 오남용될 위험을 지적한다. 특정 시점의 메시지나 위치 기록만을 떼어내 편향된 해석을 할 경우, 실제 관계의 맥락과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녀 사진과 대화 내용, 건강 정보 등 고감도 개인정보가 포렌식 과정에서 대량으로 노출될 수 있어, 별도의 안전장치와 비식별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향후에는 메신저·스마트홈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디지털 포렌식 인증 제도가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 가사소송에서 어떤 IT 데이터가 어떤 절차를 거쳐야 증거로 인정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정교해질수록, 분쟁 당사자의 예측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산업계와 법조계에서는 가족관계 파탄의 책임을 따지는 속도보다, 사생활 보호와 데이터 오남용 방지를 위한 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디지털 기술과 사법 시스템의 균형이 새로운 가족 분쟁 시대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