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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첨단항공엔진” 범부처협의체 가동…예산 효율화로 산업도약 노린다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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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첨단 항공엔진 개발을 둘러싼 국가 차원의 기술·예산·인증 전략이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극소수 국가에만 허용돼 온 전략 기술을 국내에서 자립화하려면 장기간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인 만큼, 정부가 부처 간 칸막이를 줄이고 예산 중복을 차단하는 협의체를 띄운 것이다. 항공엔진은 차세대 전투기와 민항기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성공적인 기술 확보 시 국방력 제고와 함께 유지정비 비용 절감, 수출 확대까지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와 정책 당국은 이번 협의체 출범을 항공엔진 독자 개발 경쟁의 분기점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우주항공청과 방위사업청은 28일 정부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산업통상부, 국토교통부, 국방부 등 관계 부처가 참여한 첨단 항공엔진 개발 범부처 협의체 출범식을 개최했다. 협의체는 차세대 전투기급에 적용될 첨단 항공엔진 개발 계획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범부처 협력을 위한 의견수렴 창구 역할을 맡는다. 특히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추진해 온 항공엔진 관련 사업과 예산을 한데 묶어 중복 투자를 줄이고, 단계별 기술 개발 로드맵을 공유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첨단 항공엔진 기술은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소수 국가만이 확보한 대표적 전략기술이다. 핵심 설계 기술과 고온 고압을 견디는 소재, 정밀 가공·조립 공정이 국제 통제체제 아래 엄격히 제한되고 있어 사실상 수입이나 단순 기술이전으로는 확보가 쉽지 않다. 정부가 범부처 협의체라는 형태로 접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위사업청은 올해 1월 첨단기술사업관리위원회를 통해 첨단 항공엔진 개발 기본계획을 마련했고, 이를 토대로 개발 인력 양성, 시험 인프라 구축, 소재·부품 산업 생태계 조성까지 전 주기에 걸친 국가 역량을 모으는 작업을 이어왔다.  

 

항공엔진은 차세대 전투기의 추력, 연비, 항속거리, 기동성을 결정하는 핵심 동력원이다. 국산 기술로 엔진을 확보할 경우 그동안 해외기업에 지급해 온 막대한 유지·정비 비용을 국내로 돌릴 수 있다. 동시에 국산 전투기에 국산 엔진을 탑재해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어 국방 예산 효율화와 항공 수출 산업 성장이라는 두 가지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디지털 설계, 열·유동 해석 등 고급 엔지니어링 역량이 축적되면, 향후 민간 항공엔진이나 우주발사체 추진체 개발로의 확장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이번 협의체 구성을 통해 우주항공청, 방위사업청, 산업통상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는 첨단 항공엔진 개발을 위한 협력체계 구축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각 부처는 앞으로 협의체를 활용해 기술 성숙도 단계별로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조정하고, 시험·인증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 지원정책을 연계할 방침이다. 이는 개별 부처 단위의 단기 사업을 넘어, 10년 이상을 내다본 장기적인 국산 항공엔진 로드맵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  

 

소재와 부품 측면에서는 산업통상부가 역할을 맡는다. 이선혜 산업통상부 첨단민군혁신지원과장은 산업통상부가 그간 축적한 핵심 소재·부품 기술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첨단 항공엔진 기술 자립화와 안정적 공급망 확보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항공엔진 제조 생태계를 구축해 민군 겸용 첨단 소재, 정밀 가공, 열처리, 코팅 기술 등 관련 산업 전반의 고도화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반도체나 배터리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 해외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기업 참여를 확대하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인증과 상용화 단계에서는 국토교통부가 중심에 선다. 최승욱 국토교통부 항공기술과장은 첨단 항공엔진 개발 성공을 위해서는 군용·민수용을 아우르는 인증 체계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국토교통부가 축적한 항공기 인증 수행 경험과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활용해 군수용 인증을 지원하고 동시에 민수용 인증도 병행해 상용화와 해외수출의 기회로 연결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초기에는 군용 전투기용으로 개발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민간 항공엔진 시장까지 진입하는 이중 트랙 전략으로 해석된다.  

 

방위사업청은 첨단 항공엔진을 군용을 넘어 민간에도 파급효과가 큰 전략기술로 규정했다. 정재준 방위사업청 첨단기술사업단장 직무대리는 각 부처와 긴밀히 협력해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향후 민수 엔진 개발로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범부처 협의체를 통해 부처별 추진 현황을 공유하고 협조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성공적인 항공엔진 개발 국가가 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는 방산 중심의 기술개발을 민간 항공산업 성장과 연결하겠다는 전략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우주항공청은 민간 항공엔진과 민군협력의 주무부처로서 역할을 자임했다. 이광병 우주항공청 항공혁신임무설계프로그램장은 첨단 항공엔진 개발을 국가 항공역량 강화를 위한 핵심 사업으로 규정하며, 관계 부처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민수 항공엔진 분야까지 확장해 항공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우주항공청의 참여는 향후 우주발사체용 엔진, 고고도 무인기 등 차세대 항공우주 플랫폼과의 연계 가능성도 시사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첨단 항공엔진과 관련한 기술 경쟁과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차세대 고효율 엔진 개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국내는 그간 완제품 수입과 정비 중심의 구조에 머물러 왔다. 이번 범부처 협의체 출범은 이러한 구조를 탈피해 설계부터 제조, 시험, 인증, 수출까지 전주기를 아우르는 독자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다만 고난도 기술 특성상 장기 투자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예산 일관성 확보와 민간 기업 참여 유도, 국제 협력 전략 등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정책·산업계 안팎에서는 첨단 항공엔진을 둘러싼 기술 경쟁이 향후 국방력과 항공산업 격차를 가르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이번 협의체를 통해 부처 간 중복과 비효율을 줄이고, 민군 겸용 산업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키워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산업계는 범부처 협의체가 보여준 방향성이 실제 프로젝트와 시장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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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청#방위사업청#첨단항공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