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헌법 책무 저버렸다"…내란특검, 추경호 불구속 기소 후 여야 정면 충돌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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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을 둘러싼 내란 의혹 수사가 정국의 또 다른 뇌관으로 떠올랐다. 계엄 선포 당시 여당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되면서, 국회 내 책임 공방과 정치적 충돌이 한층 거세지는 모습이다.

 

조은석 특별검사가 이끄는 내란 특별검사팀은 7일 추경호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박지영 특별검사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추 의원을 12·3 비상계엄 표결 방해와 관련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에 따르면 추 의원은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여당 원내대표로서 계엄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하는 방식으로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계엄 선포 이후 소집된 비상 의원총회 장소는 국회에서 당사, 다시 국회, 다시 당사로 세 차례 바뀌었다.

 

박 특별검사보는 "국회 운영에 대한 최고 책임을 가진 원내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유지 의사를 조기에 꺾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라며 "그럼에도 윤 전 대통령의 협조 요청을 받고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무장한 군인에 의해 국회가 짓밟히는 상황을 목도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검팀은 특히 추 의원이 본회의장 표결을 알고도 사실상 표결 참여를 가로막았다고 보고 있다. 박 특별검사보는 "본회의장에서 채 2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표결권 행사를 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본회의 개의를 알고도 의원총회 개최 의사 없이 의총 소집 장소를 당사로 변경해 국회에 들어가려던 의원들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본회의장에 있던 의원들에게는 밖으로 나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며 "윤 전 대통령이 군인과 경찰을 동원해 의원들을 본회의장에서 끌어내려는 행위와 같다고 평가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는 국민의힘 의원 108명 가운데 90명이 참여하지 않았다. 표결은 재석 190명, 찬성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특검팀은 다수 여당 의원의 불참 배경에 추 의원의 장소 변경과 지시가 있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특검팀은 또 윤석열 전 대통령과 추 의원의 통화 내용도 핵심 정황으로 제시했다. 박 특별검사보는 "윤 전 대통령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재판에서 추 의원과의 통화에서 '걱정하지 말아라. 빨리 끝낼 것이다'라고 했다고 증언했다"며 "추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해제해 달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고, 이는 본인도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와의 관계도 쟁점이다. 특검팀은 한 전 대표가 "계엄을 막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가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추 의원이 "중진 의원들이 당사로 올 테니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자"며 거부하고 소속 의원들에게 해당 요구를 전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국회에 도착한 이후에도 한 전 대표가 "어떻게든 본회의장으로 와 달라"고 재차 요구했지만, 추 의원은 "여러 상황을 정리하고 투표가 결정되면 올라가도 되지 않냐"고 말하며 본회의장에 있던 의원들의 이탈을 유도한 것으로 특검팀은 보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밤 11시 55분께 국회의원 전원에게 본회의 집결 지시를 내린 뒤에도, 추 의원이 의총 장소를 국회에서 당사로 다시 변경 공지했다는 것이 특검팀의 주장이다. 박 특별검사보는 "추 의원은 '임의 집결지'를 당사로 공지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의총을 할 생각이 있었는지는 모호하다"며 "기본적으로 안건이 배포되지도 않았고 당원 게시판 등에도 공지된 것이 없었다. 정작 본인도 당사로 나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사전에 계엄 선포를 공모했는지 여부에 관해 특검팀은 직접적인 공모 정황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박 특별검사보는 "담화문 내용 등을 비춰볼 때 두 사람이 당시 정국과 관련해 유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근거로 추 의원이 12월 1일 보좌진에게 "민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에 앞서 비상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지시했다는 점을 제시했다.

 

박 특별검사보는 "당시 여당의 사령탑인 피고인은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국회의원으로서 최소한의 헌법적 책무를 저버렸다"며 "국회의원의 특권은 그 헌법적 책무를 다함에서 비롯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추 의원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추 의원은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 직후 의원들에게 국회 본회의장 맞은편에 있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으로 집합하도록 공지했다며, 특검팀 주장이 모순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자정 이후 장소를 당사로 변경한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경찰에 의해 국회 출입이 재차단된 상황이어서 임시로 당사에 모여 총의를 모으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입장이다. 또 한 전 대표의 본회의장 집결 지시가 내려진 뒤 이를 거스르는 공지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특검팀도 한 전 대표와 추 의원의 메시지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부 의원들이 집결 장소를 스스로 선택한 측면이 있었다고 보고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특검팀은 지난달 3일 추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진행한 뒤 다음 날 새벽 "혐의 및 법리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추 의원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특검팀은 이날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내란선동과 특수공무집행 방해, 내란특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황 전 총리의 혐의 내용과 법적 쟁점 역시 향후 재판 과정에서 본격 다뤄질 전망이다.

 

내란특검 수사가 여권 핵심 인사들을 잇달아 재판대에 세우면서 정치권 파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법원이 추 의원과 황 전 총리에 대한 혐의 성립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책임 공방과 정국 구도도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국회와 정치권은 특검 수사와 재판 경과를 주시하며 계엄 사태의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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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조은석특별검사팀#황교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