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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에 킥스테이지”…우주청, 화성 착륙 겨눈다 광복 100년 원정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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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술로 만든 발사체와 착륙선을 앞세운 장기 화성 탐사 전략이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는 광복 100주년인 2045년을 목표로 화성 표면에 태극기를 세우는 계획을 내놓고, 이를 위해 누리호와 차세대 발사체에 킥스테이지를 결합하는 심우주 탐사 체계를 추진한다. 단발성 방문이 아닌 거주와 경제 활동까지 염두에 둔 자원 활용, 우주의학, 식량 자급 기술까지 포함한 통합 로드맵으로, 업계에서는 한국 우주산업 구조 전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주항공청은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브라운백 미팅을 열고 대한민국 우주과학탐사 로드맵과 화성탐사 전략을 공개했다. 핵심 목표는 2035년 화성 궤도선 진입 기술 확보, 2045년 화성 무인 착륙선 운용이며, 이 과정에서 누리호를 심우주 탐사 플랫폼으로 재정의하겠다는 계획이다. 당초 심우주 임무는 더 강한 추력을 가진 차세대 발사체에 의존하는 구상이었지만, 일정 가속화를 위해 기존 누리호의 임무 성능을 확장해 화성 임무에 투입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했다.

기술적 전환점은 킥스테이지다. 킥스테이지는 발사체 최상단에 추가로 장착돼 우주 공간에서 다시 점화해 속도를 높이거나 궤도를 바꾸는 일종의 궤도 수송선이다. 현재 누리호는 지구 저궤도에는 화물을 실어 올릴 수 있지만, 달과 화성 같은 심우주로 직접 보내기에는 추진력이 부족하다. 달 전이궤도에는 약 100킬로그램만 운반 가능하고, 화성 전이궤도 투입 능력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우주항공청은 누리호에 킥스테이지를 결합하면 화성 궤도에서 약 40~50킬로그램 규모 탑재체 운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 저궤도 위성 발사용 발사체의 한계를 넘어서, 같은 플랫폼으로 심우주까지 접근하는 확장 구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킥스테이지가 고도로 정밀한 궤도 변경과 추가 가속을 담당하면, 발사체 본체는 저궤도 투입에만 집중하고 이후 심우주 전이 구간은 궤도 수송선이 이어가는 분업 구조가 가능해진다. 이는 발사체를 일종의 다목적 운반선으로 재활용해 발사 비용과 개발 기간을 줄이는 방식으로도 해석된다.

 

우주항공청은 누리호와 킥스테이지 조합을 활용해 2035년 화성 궤도선 실증 임무에 나선다는 목표를 세웠다. 나아가 2045년에는 우리 기술로 제작한 무인 화성 착륙선을 보내는 장기 비전을 제시했다. 아울러 당초 2030년 이후로 잡혀 있던 달 통신 궤도선 발사 시점을 2029년으로 1년 앞당기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차세대 발사체가 본격 가동되기 전까지 누리호 기반 심우주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구축해, 이후 대형 발사체가 투입될 때는 검증된 궤도 수송 체계와 심우주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위험을 낮추겠다는 계산이다.

 

독자 발사체 고도화와 병행해 해외 민간 발사체를 활용한 ‘선실증, 후자립’ 전략도 병행한다. 화성 발사 기회는 지구와 화성의 공전 궤도가 가까워지는 약 26개월 주기로만 찾아오기 때문에, 국내 발사체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면 실증 일정이 크게 늦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우주항공청은 미국 민간 우주기업이 개발 중인 초대형 발사체 스타십을 활용해 국내 연구진이 만든 화성 탐사 모듈을 먼저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강경인 우주항공청 우주과학탐사부문장은 스타십에 약 500킬로그램급 화성 탐사 모듈을 탑재해 화성 표면에 내려보내는 구상과 관련해, 발사 서비스 제공 가능성과 비용 구조를 두고 스페이스X 측과 소통 중이라고 밝혔다. 상용 발사체 대비 가격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국내에서 제작한 착륙체, 로버, 관측 장비를 2045년 독자 착륙선 발사 이전에 실제 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민간 발사체를 활용한 행성 탐사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이라, 한국도 초기부터 국제 협력 궤도에 올라타는 셈이다.

 

화성 착륙의 기술적 난관을 넘기 위한 세부 계획도 제시됐다. 화성 대기 진입·하강·착륙을 뜻하는 EDL 구간은 탐사선이 시속 2만킬로미터로 돌진하며 2천1백도 수준의 고열과 극심한 공력하중에 노출되는, 실패 확률이 높은 단계다. 우주항공청은 이 구간을 통과하기 위해 고온을 견디는 열 차폐판과 희박한 화성 대기에서도 제동력을 확보할 초음속 낙하산 기술을 2035년부터 본격 개발할 계획이다. 여기에 더해 대기 진입 후 약 7분 동안 형성되는 플라즈마에 의해 전파가 차단되는 블랙아웃 구간에서도 궤도를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GNC 시스템 개발에 나선다. GNC는 탐사선의 자세와 위치를 실시간 계산해 엔진 분사와 자세 제어를 수행하는 핵심 항법·유도·제어 기술로, 성공적인 착륙을 가르는 관건으로 꼽힌다.

 

표면 탐사를 위한 이동 수단도 다변화한다. 화성은 암석과 협곡이 많은 험지인 데다, 지구의 1퍼센트 수준에 불과한 대기 밀도로 인해 비행체 설계가 까다롭다. 우주항공청은 기존 바퀴형 로버와 더불어 고정익 드론 개발을 추진해 가파른 지형이나 먼 거리의 탐사지점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미 항공우주국이 인제뉴어티 드론으로 시험한 ‘화성 항공정찰’ 개념을 한국 방식으로 확장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극한 환경에서의 전력 공급 문제도 중요한 과제다. 영하 140도까지 떨어지는 밤 기온과 잦은 모래폭풍은 태양광 발전 효율을 떨어뜨린다. 우주항공청은 2030년부터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100와트급 원자력 전지와 열원 모듈 개발에 들어간다. 이런 RTG와 RHU 기술은 장기간 유지보수가 어려운 심우주 탐사에서 사실상 표준 전원으로 사용되고 있어, 한국이 독자 기술을 확보할 경우 향후 국제 공동 탐사에서도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단기 탐사 임무를 넘어 화성에서 머물며 경제 활동을 하는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둔 기술 확보에 나선다. 핵심은 ISRU, 즉 현지자원활용 기술이다. 모든 자원을 지구에서 실어 나를 수 없는 만큼, 화성의 토양과 대기에서 물, 산소, 메탄 연료를 뽑아내고 이를 기반으로 에너지와 생필품을 자급하는 체계를 짜겠다는 것이다. 우주항공청은 단계적으로 자원 추출 플랜트를 개발하고, 화성 토양인 레골리스를 원료로 한 3D 프린팅 건설 기술을 2035년부터 연구한다. 이를 통해 도로, 발사장, 거주 구조물 등 필수 인프라를 현지에서 제작하는 ‘우주 건설’ 생태계를 모색한다.

 

우주 환경에서의 인체 반응과 건강 관리 역시 필수 연구 분야로 꼽힌다. 방사선 노출, 미세중력, 고립 환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고 이를 완화할 치료·관리 솔루션이 필요해서다. 우주항공청은 우주인의 생체신호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웨어러블 기기와 현장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 실험용 인공 장기인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우주 방사선과 중력 변화에 최적화된 치료제를 탐색할 계획이다. 여기에 더해 식량 자급을 위해 방사선 차폐와 식물 재배 기능을 결합한 스마트팜 시스템 구축도 추진한다. 폐쇄된 화성 거주지에서 안정적 수분·영양 공급과 생태 순환을 유지하는 기술은 지상 환경에서도 고부가 가치 헬스케어와 농업 솔루션으로 확장될 여지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의 화성 탐사 전략은 미국, 유럽, 중국이 이미 진입한 경쟁 구도 속에서 후발주자로서의 위치를 정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은 로버와 궤도선, 시료 반환 임무까지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고, 중국도 착륙과 궤도 임무를 수행하며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예산과 경험을 가진 만큼, 소형·경량 탑재체와 민간 발사체 활용, ISRU와 우주 바이오 같은 특화 분야에서 틈새 전략을 찾는 모습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스타십급 초대형 발사체와 상용 심우주 운반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국가 주도의 독점 구조에서 다중 플레이어 경쟁 체제로 전환되는 흐름도 뚜렷해지고 있다.

 

다만 기술 개발 속도와 별개로 예산, 법제, 국제 협력 규범 등 제도 환경이 미흡할 경우 로드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화성 탐사에 활용되는 방사성 전지와 ISRU 설비는 안전성 검증과 환경 영향 평가, 우주 조약과의 정합성 등 복잡한 규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민간 기업과 연구기관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인센티브 구조와 지식재산권 체계, 데이터 공유 원칙을 정비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미국과 유럽이 민간 위탁과 고정가·성과형 계약을 결합해 우주 산업 생태계를 키운 것처럼, 한국도 장기 수요를 명시한 공공 조달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경인 부문장은 2045년 화성 착륙 목표가 시기상조라는 시각에 대해, 지금 준비를 시작하지 않으면 목표 시점이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성 탐사 기획 연구를 바탕으로 한 보다 구체적인 국가 전략을 조만간 공개하겠다고 예고하면서, 연구개발과 산업 생태계, 제도 정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장기 로드맵이 현실에 안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계는 한국형 화성 탐사 전략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임무로 이어질 수 있을지, 향후 예산 편성과 민관 협력 구조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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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청#누리호#화성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