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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패권경쟁 심화 속 NEXT 전략기술…정부, 최초·최고 도전 선언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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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술패권경쟁이 인공지능을 넘어 과학기술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한국 정부가 국가전략기술 중심의 초격차 전략을 공식화했다. 인공지능, 반도체 등에서 이미 축적한 기술력과 제조역량을 발판으로 세계 최초·최고 수준의 기술을 선점해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이번 구상이 연구개발 패러다임을 ‘위험 회피형’에서 ‘고위험·고성과형’으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국가전략기술 서밋 기조연설에서 글로벌 기술패권경쟁 심화에 대응한 정부의 국가전략기술 비전과 실행 계획을 공개했다. 배 부총리는 산학연 전문가들을 향해 더 도전적인 연구개발을 주문하며 정부 차원의 과감한 지원을 약속했다.

국가전략기술 서밋은 지난 4월 출범한 민관 협업 플랫폼 국가전략기술 미래대화에서 다져온 논의를 바탕으로, 국가전략기술 육성 액션플랜과 이행방안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국가전략기술로 여는 새로운 시대, NEXT One Korea’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국가전략기술을 통해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국가 미래혁신 전략과 민관 협력 방안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배 부총리는 이날 행사에서 산학연관 합동 비전인 ‘NEXT 전략기술로 과학기술강국 대도약’을 선포하고, NEXT 국가전략기술 및 미래혁신 전략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그는 글로벌 기술패권경쟁이 인공지능을 넘어 과학기술 전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는 동시에, 국내 경제성장률 둔화와 잠재성장률 하락이 구조적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배 부총리는 이러한 흐름을 반전시킬 해법으로 기술혁신을 제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세계 최초·최고 기술 확보를 목표로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집중적이고 전략적인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2026년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연구개발 생태계 혁신과 국가 인공지능 컴퓨팅센터 구축,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통한 범부처 신속 대응 체계를 마련해 기술주도성장 기반을 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제시한 NEXT 전략기술 확보 미션은 세 가지 축으로 정리된다. 인공지능 전환선도, 기술 통상·안보 주도권 확보, 미래혁신 가속이다. 인공지능 전환선도는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개발 전 과정과 산업 전반에 깊이 결합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의미한다. 통상·안보 주도권 확보는 반도체, 양자, 우주, 배터리 등 전략기술 분야에서 공급망과 표준, 규범을 선도해 외부 충격을 줄이고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방향이다. 미래혁신은 신산업과 신시장 창출로 이어질 파괴적 기술에 장기 투자를 확대해 성장동력을 다변화하는 목표를 담고 있다.

 

배 부총리는 이러한 미션을 뒷받침하기 위해 범부처 혁신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각 부처별 전략기술 관리체계와 기술 분야별 육성 법령, 다양한 정책수단을 국가임무 중심으로 재정렬해 기획, 연구개발, 사업화, 글로벌 확산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지원 체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부처별로 분절돼 있던 전략기술 지원 정책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고, 기술 패권 경쟁 국면에서 정책 대응 속도와 효율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특히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위한 인공지능 혁신 생태계 구축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국내에서 고성능 인공지능 모델 개발과 실증, 상용화가 가능하도록 국가 인공지능 컴퓨팅 자원을 확충하고, 민간의 대규모 인공지능 연구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인프라를 단계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더불어 인공지능 기반 전략기술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해, 주요국의 기술 확보 동향과 특허, 투자 데이터를 실시간에 가깝게 분석함으로써 한국이 기술패권경쟁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연구개발 투자 방식도 도전적 방향으로 조정된다. 국가전략기술 임무 달성을 위한 핵심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민간 매칭 비율을 최대 50퍼센트 수준까지 완화해 초기 부담을 줄이고, 고위험·고성과 연구에 뛰어들 수 있도록 유도한다. 국가 현안에 대한 신속대응 연구개발 자금을 신설해 공급망 교란, 감염병, 기후위기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기술적으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하는 한편, 정부 연구개발 사업의 행정절차도 대폭 간소화할 계획이다.

 

기술 상용화를 촉진하기 위한 후속 지원도 강화된다. 공공조달과 지역특화산업과의 연계를 확대해 전략기술 관련 성과물을 공공과 지역 시장에서 우선 활용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민간 기업이 초기 시장을 확보해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위험·고성과 기술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조세와 법제도 연계 전략기술 중심으로 재구성한다. 정부는 국가전략기술 육성법상 국가전략기술 분야와 조세특례제한법상 세제 혜택 대상 간 연계를 단계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전략기술로 지정된 분야에 대한 세액공제, 감면 등 세제 인센티브를 보다 정밀하게 연결함으로써 민간 투자를 장려하고, 정책·법제도·재정이 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배 부총리는 한국이 인공지능과 반도체 분야에서 이미 상당한 기술력과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인공지능 전환 선도국으로서의 저력을 기반으로 차세대 성장동력인 넥스트 원 확보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패권경쟁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범부처와 민간이 긴밀히 협업하고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해야만 기술주도 성장을 실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전략기술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체감 성과를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해 세계 최초·최고 기술을 통해 초격차 대한민국을 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내년 초까지 국가전략기술 체계 고도화를 마무리하고, 기술혁신과 기술확보 정책, 생태계 조성 방안을 포괄하는 국가전략기술 혁신 로드맵을 수립할 계획이다. 이 로드맵은 범부처와 민간이 함께 이행하는 공동 실행 계획 성격을 가지며, 전략기술 선정, 투자 우선순위, 인력 양성, 국제협력 방향 등을 포괄할 전망이다.

 

또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전략기술뿐 아니라 탄소중립 기술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정부는 기술 선도국과의 연구개발 협력 확대를 위한 글로벌 탄소중립 연구개발 전략지도를 마련하고, 연구자들의 전략적 국제협력과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한 웹 플랫폼 공식 운영을 시작했다. 이 플랫폼은 국가별 기술 수준, 기술 유형에 따른 협력 전략 등을 사용자 맞춤형 분석 형태로 제시해 연구자와 기업이 국가별로 최적의 협력 파트너와 전략을 설계하도록 돕는다. 관련 유관 플랫폼과의 연계를 통해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산업계와 연구계에서는 이번 국가전략기술 서밋을 계기로 인공지능와 반도체, 탄소중립 등 핵심 분야에서 민관 공동의 투자와 협력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연구개발 규제 개선, 성과 확산 구조 개편 등 과제가 적지 않은 만큼, 기술혁신 속도와 함께 제도와 산업 구조 전환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과 산업, 정책이 맞물려 돌아갈 수 있는 생태계 구축 여부가 한국의 기술패권 경쟁력 향방을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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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훈#국가전략기술서밋#과학기술정보통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