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CDMO로 재편”…삼성바이오로직스, 변경상장 앞두고 가치 재평가 주목
CDMO 위탁개발생산 모델이 글로벌 바이오 생산 생태계의 중심축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하고 순수 CDMO 기업으로 전면에 나선다. 인적분할을 통해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떼어내고 생산·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그간 논란이 돼 온 이해상충 우려를 정리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업계에서는 변경상장을 계기로 수주 경쟁력과 영업 레버리지가 부각되며, 글로벌 CDMO 시장에서 기업 가치 재평가 흐름이 본격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4일 변경상장을 실시하며 순수 CDMO 체제로 전환한다. 회사는 지난 5월 투자와 자회사 관리 부문을 떼어내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신설하는 인적분할 계획을 발표한 뒤, 8월 증권신고서 제출, 9월 분할 효력 발생, 임시주주총회 결의와 11월 3일 분할보고 총회까지 필요한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변경상장은 이 분할 구조를 시장에 공식 반영하는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핵심은 사업 포트폴리오의 역할을 명확히 나눈 점이다. 기존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CDMO를 영위하는 동시에 바이오시밀러를 보유한 자회사에 투자하는 구조였다. 이번 분할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위탁생산과 위탁개발에만 집중하고, 삼성에피스홀딩스는 바이오시밀러와 향후 신약개발 등 파이프라인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수직 분리가 이뤄졌다. 생산과 자체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보유할 때 제기될 수 있는 특정 고객과의 경쟁 논란, 정보 비대칭 문제 등 이해상충 이슈를 정리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이번 구조 재편은 글로벌 빅파마 고객사 입장에서도 CDMO 파트너의 사업 범위를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빅파마는 자사와 경쟁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제조사보다는, 순수 위탁 생산에 집중하는 CDMO와 장기 계약을 맺는 경향이 강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적분할로 이런 고객 우려를 제거해 신뢰도를 높이고, 대형·장기 프로젝트 중심의 수주 파이프라인을 한층 확대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투자자 관점에서도 사업 구조 단순화 효과가 크다는 평가다. 이전에는 CDMO와 바이오시밀러라는 성격이 다른 사업에 동시에 노출된 지배구조 탓에, 매출 성장과 수익성, 전략 리스크를 구분해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변경상장 이후에는 각 사업의 성장성, 수익성, 밸류에이션 기준을 독립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 CDMO와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선호도에 따라 차별화된 투자 전략을 설계할 수 있게 된다. 회사는 그동안 사업 구조 특성상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CDMO 본연의 잠재 가치가 이번 분할을 계기로 시장에서 다시 평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증권가도 분할 완료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둘러싼 투자심리가 개선될 여지를 높게 보고 있다. 김승민, 조세은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DMO 가치를 기존 91조원에서 105조원으로 상향 제시했다. 이희영 대신증권 연구원 역시 분할 이후 멀티플 정상화를 전망하며, 삼성바이오로직스 단독 기업가치를 약 103조원 수준으로 산정했다. 인적분할이 오히려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줄이고 주주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 셈이다.
IBK투자증권 정이수 연구원은 CDMO와 바이오시밀러의 분리를 통해 이해상충 이슈가 해소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규 수주 확대 기회를, 삼성에피스홀딩스는 독자적인 신약개발 성과를 모색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적분할이 주주가치 희석 요인으로 지적되는 국내 사례들과 달리, 비즈니스 모델을 정교하게 나누면서 기업가치를 높이는 보기 드문 구조 재편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적 측면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DMO 비즈니스는 외형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3분기 별도 기준 매출은 1조2575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3분기 누적 매출은 3조2713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에 근접했다. 회사는 이 같은 성장세가 글로벌 빅파마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수주 계약, 1공장부터 4공장까지의 풀가동 효과, 그리고 신규 수주 기반의 5공장 램프업 성과가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수주 잔고 측면에서도 외형 확장이 뚜렷하다. 올해 들어 연이어 CMO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하며 3분기까지 누적 수주 금액 5조5959억원을 기록했다. 이로써 창사 이후 누적 수주 총액은 200억달러, 원화 기준 약 29조4340억원을 넘어섰다. 장기 공급 계약 비중이 높은 CDMO 특성상, 이미 확보한 수주 잔고만으로도 향후 몇 년간의 가동률과 매출 성장이 상당 부분 가시화돼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연간 매출 성장 가이던스 25에서 30퍼센트 달성을 자신하고 있다. 생산능력 확장, 포트폴리오 강화, 글로벌 거점 확장이라는 3대축 확장 전략을 통해 글로벌 CDMO 리더십을 굳힌다는 구상이다. 현재 5공장 램프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향후 추가 공장 건설과 지역별 생산 거점 확대 계획도 본격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랜드 전략 측면에서는 지난달 새로 공개한 CMO 브랜드 엑설런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엑설런스는 동등성과 속도를 핵심 가치로 삼은 생산 체계를 뜻하며, 구축된 글로벌 설비에서 동일한 품질 표준을 유지하면서도 공급 리드타임을 단축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바이오의약품 개발·상업화 사이클이 짧아지고, 변동성이 커지는 시장에서 생산 속도와 품질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포지셔닝이다.
글로벌 CDMO 시장에서는 이미 생산 규모뿐 아니라 규제 대응 역량, 공급망 안정성, ESG 기준 충족 여부 등이 발주사의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분할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내부 이해상충 요소를 제거해 규제와 고객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초대형 설비와 수주 포트폴리오를 앞세워 글로벌 톱티어 CDMO와의 경쟁을 이어가게 된다. 산업계는 순수 CDMO로 재편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향후 몇 년간 실제 시장에서 어느 수준의 수주 성과와 수익성을 입증해낼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