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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성질환 된 비만”…한국릴리, 당뇨까지 겨냥한 치료전략 제시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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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과 2형당뇨병이 개인의 외모 관리 차원을 넘어 국가가 관리해야 할 사회적 질병으로 부각되고 있다. 국내 30세 이상 당뇨병 환자 두 명 중 한 명이 비만을 동반하고, 성인 비만 인구 5명 중 1명은 당뇨병 환자로 확인되면서다. 의료계는 비만이 200개가 넘는 합병증과 연결된 만성 진행성 대사 질환임에도 여전히 미용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며, 제도 개편과 치료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체중과 혈당을 동시에 관리하는 약제 전략이 강조되면서, 항비만·당뇨 신약을 둘러싼 글로벌 R&D 경쟁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한국릴리와 대한비만학회는 17일 사회적 건강 과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을 주제로 미디어 세션을 공동 개최했다. 이번 자리에서 학계와 업계는 비만과 2형당뇨병의 국내 유병 현황, 질병 인식, 치료 접근법을 공유하며 정책과 의료 현장의 미충족 수요를 짚었다.

대한비만학회 총무이사인 이재혁 명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비만의 질병성에 비해 제도 반영이 뒤처져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비만을 단순한 체중 증가 상태가 아니라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규정하면서도, 여전히 법정비급여 질환으로 분류돼 건강보험 혜택 밖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정책이 예방 캠페인 중심에 머물러 비만을 이미 발병한 만성질환으로 관리하는 시각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비만학회는 이에 대응해 비만법 제정을 통해 비만을 독립 질환으로 규정하고 의료체계 안으로 편입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동시에 비만을 전문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의사 양성을 위해 교육과 인증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의료계는 이 같은 제도 기반이 마련돼야 장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항비만 약제, 행동요법, 영양·운동 처방을 과학적으로 결합한 치료 패키지가 제공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 측면에서 비만의 무게는 비용으로도 드러난다. 존 비클 한국릴리 대표는 비만이 야기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약 16조원 규모로 추산하며 흡연이나 음주보다 더 큰 부담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비만이 심혈관질환, 당뇨, 관절질환, 암, 정신건강 문제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의료비, 생산성 감소, 조기 사망 등 복합 비용이 누적되는 구조다.

 

한국릴리는 비만을 만성적이고 복잡한 진행성 질환으로 규정하며, 사회적 낙인과 편견 해소를 병행한 치료 접근을 강조했다. 회사는 비만, 당뇨, 심혈관계 질환을 핵심 포트폴리오로 삼고 있으며 전체 연구개발 투자 중 약 40퍼센트를 이 영역에 배분하고 있다. 올해 기준 한국 시장에 약 45억 달러 수준의 투자를 진행 중이라고 밝히며, 지속적인 R&D를 통해 체중 감소뿐 아니라 혈당과 심혈관 위험을 함께 낮출 수 있는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시에 심미적 목적의 과잉·오남용을 줄이기 위한 사용 교육과 모니터링도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만과 2형당뇨병의 병태생리는 치료 전략을 같이 설계해야 하는 이유로 지목된다. 이용호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비만이 2형당뇨병을 유발하는 주요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성인 비만 인구는 비만이 아닌 인구에 비해 2형당뇨병 유병률이 약 두 배 높고, 특히 비만이 동반된 2형당뇨병 환자는 체질량지수 수치가 높을수록 혈당 조절이 어려워지며, 고혈압과 이상지질혈증 같은 합병증 위험과 의료비 부담이 동시에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약물 치료 측면에서 혈당 조절과 체중 감소를 동시에 겨냥하는 최신 당뇨병 약제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SGLT2 억제제 계열 약물은 신장을 통해 포도당 배출을 유도해 혈당을 낮추는 동시에 어느 정도 체중 감소 효과를 제공하고, GLP 1 및 GIP 호르몬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이중 작용제는 식욕을 감소시키고 인슐린 분비를 개선해 체중과 혈당을 함께 관리할 수 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이런 기전을 반영해 비만을 동반한 2형당뇨병 환자에게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된 약제 사용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을 이미 제시했다.

 

임상 지표 측면에서도 체중·혈당 동시 관리의 효과는 수치로 나타난다. 이 교수는 당화혈색소를 1퍼센트만 낮추더라도 당뇨 관련 사망 위험을 20퍼센트 이상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비만과 당뇨를 함께 가진 환자가 체중을 5에서 15퍼센트 범위로 감량하면 혈압,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같은 다른 대사 지표도 안정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질환 초기부터 체중과 혈당을 동시에 관리하는 치료 전략을 설계하는 것이 합병증 예방과 비용 절감 차원에서 유리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글로벌 기준에서도 비만은 더 이상 생활습관 문제로 축소할 수 없는 단계로 평가된다. 김양형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세계보건기구가 최근 비만을 평생 관리가 필요한 재발성 질환으로 규정하고 항비만 치료제 사용에 대한 첫 권고안을 발표한 사실을 언급했다. WHO는 비만을 체중 감량 이후에도 신경호르몬과 에너지 대사 변화로 인해 쉽게 재발하는 질환으로 보고, 필요 시 장기 약물치료를 포함한 지속 관리 체계를 제안했다.

 

국내 유병률 추세도 WHO의 문제의식을 뒷받침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내 성인 비만 유병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2단계, 3단계 고도 비만 비율은 젊은 연령층에서 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향후 생산 가능 인구의 만성질환 부담과 노동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건강 문제를 넘어 경제 성장의 잠재적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는 진단이다.

 

비만을 개인 의지 부족으로만 보는 기존 인식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됐다. 김 교수는 체중 감량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우리 몸이 에너지 부족을 보완하려는 방향으로 호르몬과 신경 회로를 조정하는 생물학적 적응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렙틴, 그렐린 등 식욕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호르몬 변화와 기초대사량 감소가 동반되면서, 식사량을 늘리지 않아도 체중 유지와 추가 감량이 어렵게 되는 구조다. 결국 비만을 단순한 의지의 문제로 돌리기보다는 장기 치료와 재발 관리가 필요한 신경·내분비 질환으로 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비만을 방치했을 때의 질병 부담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김 교수는 적절한 치료 없이 비만 상태가 지속되면 심근경색과 뇌졸중을 포함한 심혈관계 질환, 여러 암 종, 우울과 불안 장애 등 심리적 질환까지 200개 이상의 합병증 위험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비만 치료의 목표는 단기 체중 감량이 아니라 합병증 발생을 줄이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개선해 기대 수명을 높이는 데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외에서는 이미 약물, 디지털 헬스, 수술 등 다양한 기술 조합을 활용한 비만 관리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GLP 1 계열 약물을 기반으로 한 비만 치료제들이 혈당 조절, 심혈관 위험 감소 데이터를 쌓으며 사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고, 디지털 앱을 활용한 식이·운동 모니터링 솔루션이 약물치료와 연동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비만이 건강보험 체계 안에 충분히 편입되지 못해 고가 약물 접근성이 제한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심혈관질환과 당뇨 합병증 감소에 따른 의료비 절감 효과를 감안해 급여 적용 범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다만 항비만 치료제의 급속한 확산을 둘러싼 윤리·안전 논쟁도 만만치 않다. 미용 목적의 과잉 처방, 장기 사용 시 안전성 데이터 축적, 약물 의존과 생활습관 개선의 균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한국릴리를 비롯한 제약사는 사용 적응증을 엄격히 관리하고, 학회와 함께 진료 가이드라인을 정교화해 의료 현장에서의 남용과 오인식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만과 2형당뇨병 관리의 패러다임 전환이 산업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예방 중심 캠페인과 단기 체중 감량 시장에서, 장기 약물치료와 데이터 기반 모니터링, 다학제 협진을 축으로 하는 만성질환 관리 시장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어서다. 제약사와 디지털 헬스 기업, 보험사, 의료기관 간 협력 구도에 따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의료계와 산업계는 결국 비만을 독립 질환으로 인정하는 법과 제도, 지속 가능한 보험 재정 설계, 환자 낙인을 줄이는 사회 인식 개선이 함께 추진돼야 비만·2형당뇨병 관리 전략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산업계는 이번 논의가 앞으로 비만을 단순한 미용 이슈가 아닌, 국가 차원의 만성질환 관리 과제로 재정립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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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릴리#대한비만학회#2형당뇨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