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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편집 항암제 국제일반명 추진…알지노믹스, 글로벌 개발 속도전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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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 기반 유전자 치료제와 정밀의학 흐름이 항암제 개발 패러다임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국내 바이오벤처가 자체 RNA 편집 플랫폼을 앞세워 퍼스트 인 클래스 후보물질을 국제 표준 성분명 체계에 올리려는 시도를 본격화했다. 글로벌 규제당국의 희귀의약품과 패스트트랙 지위를 먼저 확보한 뒤 세계보건기구 국제일반명까지 연계해, 상업화 단계에서의 파이프라인 가치와 라이선스 아웃 협상력을 키우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업계는 이 같은 행보를 RNA 유전자치료제 영역에서 국산 플랫폼의 존재감을 가늠할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알지노믹스는 자사가 개발 중인 항암제 후보물질 RZ-001에 대해 세계보건기구에 국제일반명 등재를 신청했다고 25일 밝혔다.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RZ-001에 부여될 예정인 명칭은 퍼스트 인 클래스, 즉 기전과 화학적 구성에서 계열 내 최초 약물로 평가받는 후보물질의 특성을 반영한 이름으로 설계돼 WHO에 제출됐다. 국제일반명은 승인을 거칠 경우 의약품 성분에 대한 글로벌 표준명으로 기능해 이후 허가와 유통, 논문 보고, 학회 발표 등에서 동일한 이름으로 후보물질이 인용된다.

세계보건기구 국제일반명 제도는 하나의 활성 성분에 대해 국가와 제조사를 막론하고 단일한 명칭을 부여하는 글로벌 규범이다. 동일한 약효 성분이 서로 다른 상품명으로 판매되더라도 의료진과 규제기관, 연구자가 같은 국제일반명 기준으로 약을 식별할 수 있어 안전한 처방과 약물감시 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 특히 항암제와 같이 병용요법과 약물 상호작용 관리가 중요한 영역에서 성분명 통일은 임상 데이터 축적과 메타분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알지노믹스는 국제일반명 신청을 계기로 RZ-001의 글로벌 개발과 상업화를 한층 가속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반적으로 신약 개발사는 1상 혹은 2상 임상으로 진입하는 시점부터 WHO INN 절차를 밟는 경우가 많다. 성분명이 조기에 표준화될수록 이후 다국가 임상과 기술이전, 공동개발 계약에서 파이프라인 인지도를 높일 수 있고, 허가 이후 제네릭 진입 단계에서도 명확한 성분 구분이 가능해 시장 관리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서다.

 

RZ-001은 알지노믹스가 자체 개발한 RNA 편집 플랫폼 RNA 치환효소를 기반으로 도출된 항암제 후보물질이다. RNA 치환효소 기술은 DNA의 염기서열 자체를 바꾸지 않고 전사 이후 단계에서 메신저RNA의 특정 염기를 선택적으로 교체하거나 조절하는 접근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방식은 영구적인 유전체 변형을 유도하는 DNA 편집 기술 대비 안전성 측면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동시에 암세포에서만 비정상적으로 발현되는 특정 RNA 서열을 정밀 타깃으로 삼을 수 있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RZ-001은 현재 교모세포종과 간세포암을 적응증으로 임상 단계에 올라 있는 상태다. 알지노믹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미국 식품의약국으로부터 각각 임상시험계획승인을 획득해 두 암종을 대상으로 별도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교모세포종은 뇌종양 가운데 가장 공격적인 형태로 표준치료 후에도 재발률이 높고 생존기간이 제한적인 난치성 질환이며, 간세포암 역시 진행성 단계에서 선택 가능한 치료옵션이 제한된 대표적 고위험 암으로 꼽힌다.

 

두 적응증 모두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희귀의약품과 패스트트랙 지위를 부여받은 점도 눈에 띈다. 희귀의약품 지정은 개발사가 허가 이후 일정 기간 독점권, 세액공제, 심사수수료 감면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제도이며, 패스트트랙은 심각한 질환 치료에 의미 있는 개선을 가져올 수 있거나 미충족 의료수요를 충족할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될 때 심사·소통을 신속하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RZ-001이 두 프로그램 모두에 포함됐다는 것은 후보물질의 기전과 초기 비임상·임상 데이터가 규제당국에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평가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RNA 간섭, mRNA 백신,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등 다양한 RNA 기반 치료제가 허가와 상용화 단계에 진입해 있다. 그러나 특정 RNA 서열의 선택적 치환을 전면에 내세운 RNA 편집 항암제 플랫폼은 아직 개발 경쟁 초기 단계로 분류된다. 미국과 유럽의 일부 바이오텍이 간질환과 유전질환을 중심으로 RNA 편집 후보물질을 내세우는 가운데, 알지노믹스는 난치성 고형암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RNA 편집 플랫폼을 바탕으로 미국 식품의약국의 희귀의약품과 패스트트랙 지정을 동시에 확보한 항암제 파이프라인이 많지 않다. 여기에 세계보건기구 국제일반명 등재까지 이어질 경우, 알지노믹스는 임상후보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파트너십 협상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특히 항암제 분야에서는 개발 후반부에 대형 제약사와 공동개발 혹은 라이선스 아웃을 추진하는 사례가 빈번해, 국제일반명 확보 여부가 계약 구조와 가치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국제일반명 등재는 상업화 보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WHO 위원회는 성분명 구조와 약리학적 계열, 기존 명칭 체계와의 충돌 여부를 중심으로 심사하고, 엄격한 임상 유효성과 안전성은 각 국가 규제기관의 허가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알지노믹스 역시 향후 임상 2상 이상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효능과 안전성 데이터를 축적해야만 신속심사 프로그램과 희귀의약품 인센티브를 실제 허가와 시장 진입으로 연결할 수 있다.

 

국내 규제 환경 측면에서는 RNA 기반 유전자 치료제가 첨단바이오의약품 범주 안에서 관리되고 있어, 장기추적조사와 추가 안전성 모니터링 요구가 뒤따를 가능성도 있다. 데이터 축적 과정에서 국내 병원 네트워크와의 협력, 해외 임상기관과의 다국가시험 설계가 병행돼야 글로벌 허가 전략이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교모세포종과 간세포암과 같은 고위험 암종은 환자 수 자체가 제한적이어서 다국적 시험 설계가 경쟁사의 약물과 비교했을 때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성욱 알지노믹스 대표이사는 이번 국제일반명 신청을 계기로 RZ-001의 개발과 사업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업계에서는 RNA 치환효소 플랫폼 자체가 추가 파이프라인 확장과 공동연구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실제 상용화 단계까지는 임상 실패 리스크와 자금조달 변수도 적지 않다고 본다. 산업계는 알지노믹스의 RZ-001이 국제일반명 등재와 후속 임상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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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노믹스#rz-001#국제일반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