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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도 루팡 된 쿠팡"…국회 과방위, 개인정보 유출 부실 대응 질타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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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을 둘러싸고 국회와 쿠팡이 정면으로 맞섰다. 여야는 쿠팡의 늑장·부실 대응을 한목소리로 질타하면서도, 사고 원인을 둘러싼 책임 소재와 중국인 직원 개입 의혹을 두고는 날 선 공방을 이어갔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2일 전체회의를 열고 쿠팡 박대준 대표이사와 브랫 매티스 최고보안책임자 등 경영진을 출석시켜 개인정보 유출 관련 현안 질의를 진행했다. 쿠팡에서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수개월간 인지되지 못했고, 사고 통지 과정에서도 표현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데 따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한민수 의원은 쿠팡의 성장 규모를 언급하며 책임론을 집중 제기했다. 그는 2025년을 매출 40조원 이상, 국내 전자상거래 1위 기업 쿠팡의 민낯이 드러난 해라고 규정하면서 "역대급 개인정보가 털려놓고도 5개월 동안 인지를 못 했다"고 지적했다. 쿠팡의 보안 관리 체계 전반에 근본적인 허점이 드러났다는 취지다.

 

같은 당 황정아 의원은 쿠팡이 지난해와 올해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근거로 사이버 보안 취약 지점에 자사 직원 유출 가능성을 직접 언급해 왔다고 짚었다. 그는 "알면서도 내버려 두고 있었다면 최소한 미필적 고의 아니냐"고 비판하며 내부 통제 의무 위반 소지를 거론했다.

 

국민의힘에서도 강경한 발언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이상휘 의원은 "배달의민족은 독일의민족이 된 지 오래고 쿠팡은 괴도 루팡이 된 지 오래"라고 말하며 "이리해서 대한민국에서 돈 벌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직격했다. 플랫폼 대기업이 국내에서 이익을 얻으면서도 안전한 정보 보호 의무에는 소홀했다는 인식이 반영된 발언이다.

 

쿠팡이 이용자 통지에서 '유출'이 아닌 '노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이훈기 의원은 "나중에 과징금 등을 생각해 이런 표현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노종면 의원도 법령상 처벌 규정이 유출에 한정돼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법적으로 유출에 대해서만 처벌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노출'이라는 말을 썼다"고 주장했다.

 

해외 플랫폼에서의 계정 거래 정황도 지적됐다. 국민의힘 김장겸 의원은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에서 쿠팡 계정이 5천∼4만원에 판매되고 있다며 로그인 정보 유출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브랫 매티스 최고보안책임자는 "다크웹에서 이커머스 계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탈취해 위조 계정을 파는 경우가 있다"며 "이 사건과 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쿠팡Inc 이사회 의장인 김범석 창업자를 둘러싼 책임론도 부각됐다. 한민수 의원은 김 의장이 과로사 논란, 물류센터 노동환경 논란, 입점업체 수수료 논란 등 굵직한 문제마다 국정감사에 불출석해 왔다고 상기시키며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을 어떻게 보고 있길래 미국에서 이런 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장이 국내 소비자와 국회에 책임 있게 응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여야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기업 책임을 강화하는 입법 논의 필요성에도 공감대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의원은 "10년 동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운용하는 동안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수도 없이 일어났지만 단 1건의 인정 사례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형별로 기업의 고의 또는 중과실을 인정·추정할 수 있는 요건을 법 규정에 명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민의힘 최수진 의원은 개인정보보호법상 최대 매출액 3%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을 언급하면서 실제 부과 수준을 문제 삼았다. 그는 그동안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부담한 과징금과 과태료가 합산해도 16억원 수준이라고 소개하며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꼬집었다. 법률상 상한과 현실 적용 사이 괴리를 줄이는 방향의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 셈이다.

 

한편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가 중국 국적 전직 직원의 내부 유출에서 비롯됐다는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박충권 의원은 "(개인정보) 유출자가 중국 국적자인 전직 직원이라고 한다"며 "쿠팡의 정보를 관리하는 사람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국민이 그 정보를 제공했겠느냐"고 말했다. 이상휘 의원도 "돈은 대한민국에서 벌고 채용은 중국인, 자선 기부금 이익은 미국이 가져간다"고 비판하면서 이번 사건을 "정보 내란"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문제 제기가 반중 정서를 자극해 정책 논의를 흐리고 있다고 맞받았다. 조인철 의원은 쿠팡이 중국인 퇴직 직원 개입을 강조하고 '유출이 아닌 노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며 "논점 흐리기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굉장히 안일한 대처들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며, 국적과 무관하게 기업의 구조적 보안 관리 책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대형 플랫폼 기업의 사후 통지 의무, 징벌적 손해배상 기준, 과징금 실효성 등 제도 전반을 점검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국회는 향후 정기 국회와 상임위 논의를 통해 개인정보보호법과 관련 제도 손질에 나설 계획이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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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국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김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