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3로 금융재편 노린다…네이버·두나무, AI 핀테크 동맹 승부수
생성형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이 금융 산업의 설계를 다시 쓰는 국면에서 네이버와 두나무가 손을 맞잡았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네이버페이 운영사 네이버파이낸셜의 최대주주 자리를 두나무 송치형 회장에게 넘기는 대신, AI와 블록체인을 결합한 차세대 금융 인프라 구축에 승부를 걸었다. 글로벌 빅테크와 생성형 AI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 인터넷 1위 기업이 내수 시장 한계를 넘어 웹3 기반 글로벌 핀테크 플랫폼으로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를 한국 디지털 금융 패권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출발점은 네이버의 AI 경쟁력과 글로벌 사업에 대한 주주들의 의구심이었다. 네이버는 2023년 거대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하며 한국 소버린 AI 대표 기업으로 부상했지만, 오픈AI 챗GPT와 맞먹는 범용 서비스나 사용자 경험을 아직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미 패션 C2C 플랫폼 포시마크 인수도 기대했던 수준의 글로벌 확산을 만들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는 이해진 의장을 향해 주변에 네이버 AI를 쓰는 사람은 없고, 대부분 챗GPT를 쓴다고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이 의장은 주총 직후 전 세계가 1개 또는 2개의 검색엔진과 AI만 사용하는 상황은 슬픈 일이라고 말하며, AI 경쟁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다짐했다. 단순 LLM 경쟁만으로는 미국과 중국에 맞서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AI를 연결할 새로운 성장 축으로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 웹, 즉 웹3를 선택했다. 올 초부터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후배이자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를 이끄는 송치형 회장과의 논의가 본격화했고, 그 결과가 네이버파이낸셜 지배구조를 흔드는 수준의 지분 교환 카드로 이어졌다.
네이버와 두나무가 그리는 그림은 AI와 블록체인을 결합한 차세대 금융 인프라다. 네이버는 3400만명 이상의 간편결제 사용자를 기반으로 연간 80조원이 넘는 결제액을 처리하는 네이버페이를 핵심 거점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두나무의 디지털 자산 거래 기술, 블록체인 인프라, 커스터디, 실물자산 토큰화, NFT 역량을 입혀 지급 결제를 넘어 투자, 자산관리, 생활 서비스까지 통합하는 글로벌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사용자가 플랫폼 안에서 벌고, 쓰고, 불리는 모든 과정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웹2 시절의 단순 중개 모델을 웹3 기반 경제 인프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이번 결합에서 기술적 차별점으로 꼽히는 부분은 AI와 웹3의 결합이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를 통해 결제 사기 탐지, 대출 심사, 맞춤형 금융상품 추천, 리스크 관리 자동화 같은 영역에서 AI를 이미 실험해왔다. 여기에 두나무의 온체인 데이터와 자산 토큰화 기술이 더해지면, 거래 이력과 행태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개인별 신용도와 위험도를 정밀하게 산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층적인 금융 서비스를 설계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업계에서는 웹3 환경에서의 이런 AI 기반 리스크 분석과 토큰 이코노미 설계가 기존 은행 중심 금융 시스템과 차별화되는 핵심 기술로 부상할 것으로 본다.
두나무를 단순 암호화폐 거래소가 아닌 금융 인프라 파트너로 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두나무는 퍼블릭·프라이빗 블록체인 기술 스택과 디지털 자산 수탁, 실물자산 토큰화, NFT 발행 플랫폼 등 차세대 금융 인프라 구성 요소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토큰화된 증권, 부동산, 미술품, 지식재산권 등 실물자산을 디지털로 쪼개 거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네이버 플랫폼 안에서 소비와 투자, 저축, 자산관리의 경계가 흐려지는 새로운 금융 형태를 구현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하이퍼클로바X가 투자 정보 요약, 포트폴리오 분석, 위험 경고 같은 기능을 제공하면, 전통 금융 이용자에게도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
배경에는 한국 인터넷 시장의 성장 한계와 글로벌 경쟁 심화가 자리한다는 분석이 많다. 네이버는 국내 검색과 커머스를 기반으로 지난해 연 매출 10조원을 돌파하며 인터넷 기업 최초 기록을 세웠지만, 중국발 커머스의 공습과 글로벌 플랫폼의 잠식으로 기존 성장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알리바바, 테무 등 중국 기업의 가격 공세, 구글과 유튜브의 검색 트래픽 흡수, 전 세계 빅테크의 생성형 AI 서비스 공세가 동시다발적으로 겹쳤다. 일본 메신저 라인과 C2C 플랫폼 인수를 통해 글로벌 무대를 넓히려 했지만 경영권 구조와 실적 개선 지연으로 성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웹3 시장은 아직 절대 강자가 뚜렷하지 않다. 미국과 유럽 주요 은행이 일부 자산 토큰화와 디지털 달러 연구에 나서고, 글로벌 IT 기업이 지갑과 토큰 서비스에 손을 대고 있지만, 검색이나 소셜미디어처럼 시장을 선점한 플랫폼은 등장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사용자 행위가 토큰과 직접 연결되는 웹3 구조에서는 인프라 제공자가 경제 생태계의 지배자가 된다고 본다. 네이버가 두나무와 함께 결제, 자산, 생활 서비스를 통합한 웹3 인프라를 선점한다면, 국내를 넘어 아시아 중심의 새로운 금융 질서에서 우위를 점할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관계 역시 친분보다 사업적 신뢰를 우선한 결합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이 의장과 송 회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선후배지만 학번 차이가 커 자연스러운 인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의장은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만난 지는 2년 남짓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송 회장을 천재 개발자 출신으로 평가하며 기술적 깊이와 호기심, 연구 의지를 높게 봤다고 설명했다. 단기간 논의만으로 조직과 지배구조를 흔드는 결정을 내린 것은, 두나무가 웹3 인프라 분야에서 드문 합작 파트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거래 구조를 보면 네이버의 결단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번 주식 교환이 완료되면 네이버파이낸셜 최대주주는 송치형 회장이 되고, 그동안 과반을 쥐고 있던 네이버의 지분율은 약 17퍼센트로 크게 낮아진다. 송 회장과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이 의결권을 네이버 측에 위임하기로 했지만, 법적 구조만 놓고 보면 사실상 경영권을 나누는 수준의 조정이다. 국내 대형 IT 기업이 핵심 핀테크 자회사의 최대주주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은 사례는 흔치 않다.
이 의장은 지분 희석에 대한 질문에 사업 성공이 우선이라는 철학을 재차 밝혔다. 그는 네이버가 성장 과정에서 여러 차례 투자 유치와 인수합병을 거쳤고, 그때마다 자신의 지분은 줄어들었다고 회상했다. 만약 지분 방어를 고집했다면 네이버는 지금과 같은 규모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고, 어쩌면 시장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회사를 지분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을 때 역할을 하고, 그렇지 않다면 더 능력 있는 후배가 이끄는 것이 맞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도 이번 동맹의 의미는 작지 않다. 미국에서는 코인베이스가 전통 금융사와 손잡고 자산 토큰화와 커스터디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JP모건과 같은 대형 은행들도 온체인 결제와 토큰화 프로젝트를 확대 중이다. 유럽에서는 대형 증권사가 디지털 채권 발행을 시험하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와 홍콩이 디지털 자산 허브를 표방하며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빅테크 가운데서는 애플, 구글, 메타 등이 결제와 지갑 서비스를 플랫폼 중심으로 확장하고 있지만, 아직 웹3 기반 통합 금융 인프라까지 나가지 않은 상태다. 국내에서는 카카오 계열의 클레이튼 생태계와 인터넷 전문은행, 빅테크 페이 서비스가 각자 영역을 넓히고 있어 네이버·두나무 연합과의 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규제 환경은 변수다.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이 금융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려면 자본시장법, 특정금융정보법, 전자금융거래법 등 국내 금융 관련 법제를 정교하게 해석하거나 손봐야 한다. 디지털 자산의 증권성 판단, 실물자산 토큰화에 대한 공시와 보호 장치, 개인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보 비대칭 해소 등 해결 과제가 많다. 해외에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디지털 자산을 증권으로 보느냐를 둘러싸고 간헐적으로 규제 공세를 펴고 있고, 유럽연합은 암호자산시장규제 법안을 마련해 체계화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자산 기본법 논의가 진행되는 만큼, 네이버·두나무 연합이 제도화된 틀 안에서 어떤 사업 모델을 택할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NA MU 동맹이 실제 상용 서비스로 이어질 경우, 국내 디지털 금융과 웹3 산업 전반에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AI를 앞세운 글로벌 빅테크가 사용자 접점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결제와 자산, 생활 서비스를 하나의 웹3 인프라 위에 올리려는 시도는 위험 부담이 크지만 성공 시 락인 효과도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용자가 네이버 안에서 벌고 쓰고 불리는 전 과정을 경험하게 되면, 글로벌 검색과 소셜 플랫폼도 쉽게 잠식하기 어려운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해진 의장이 지분보다 사업을 우선하는 철학을 다시 한 번 드러내며 던진 이번 승부수가 네이버 성장 곡선을 다시 끌어올릴 기폭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AI와 웹3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금융 인프라 모델을 실험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된 만큼, 산업계는 이 동맹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