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클래식이 흐른다”…덕수궁 석조전에서 만나는 황실의 추억
언젠가부터 밤이 깊어질수록 궁궐로 향하는 발걸음이 늘고 있다. 덕수궁의 석조전 앞, 밤공기는 고요하고, 클래식 선율과 어우러진 은은한 조명이 지나온 역사를 부드럽게 비춘다. 과거엔 자유롭게 드나들기 어려웠던 궁궐이 이제는 누구나 머물고 싶은 도심 속 휴식처가 됐다.
‘덕수궁 밤의 석조전’ 프로그램은 9월 10일부터 10월 26일까지 서울 중구 덕수궁에서 펼쳐진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야간 탐방을 따라가다 보면, 석조전 대하제국역사관 곳곳에 스며든 이야기가 한 발 한 발 가까워진다. 방문객들은 전시를 둘러보며 “역사라는 것이 이렇게 눈앞에 살아 숨 쉬는구나”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나눈다.

이런 흐름은 숫자로도 보인다. 지난해 같은 기간, 야간 개장 궁궐을 찾은 시민은 전년 대비 19% 가까이 늘었다는 덕수궁관리소 발표가 있었다. 클래식 음악에 귀 기울이며 잠시 일상을 내려놓는 체험, 커피와 디저트로 가을밤을 더하는 감각적 여유가 많은 이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관심의 흐름을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재충전의 공간”이라 읽는다. 역사문화콘텐츠 연구자 정회은 씨는 “궁궐의 밤은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조용히 역사를 음미하며 감정을 쌓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밤의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황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을 감상한 관람객들은 “예전엔 손에 잡히지 않았던 왕실 이야기가 내 삶에 들어온 느낌”이라 고백했다. 사진으로 남기는 순간마다, 각각의 방문객은 석조전 풍경과 함께 자신만의 추억을 조용히 더해갔다.
한동안 잊힌 공간이었던 덕수궁은 이제, 클래식과 뮤지컬, 그리고 섬세한 커피 내음이 어우러진 감각적인 밤의 문화명소로 다시 자리잡고 있다. 고즈넉한 석조전의 밤은 지나온 시간과 오늘의 마음을 잇는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