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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위 우주, 한반도 모양 강”…나주 가을 여행은 풍경과 맛 사이를 걷는다

송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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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고를 때 기준이 달라졌다. 거대한 관광지보다 조용한 풍경, 화려한 맛집보다 나만의 취향이 담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전남 나주는 그런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볼 때 비로소 얼굴을 드러내는 도시다.

 

요즘 나주를 찾는 이들은 영산강을 따라 이어지는 풍경과 혁신도시의 새 길을 한 번에 누리는 동선을 그린다. 먼저 나주시 다도면의 우주드림은 그 여정의 시작점처럼 자리 잡았다. 어둑한 전시실에 들어서면 사방을 채운 빛과 사운드가 광활한 우주를 눈앞에 펼친다. 손에 닿을 듯 떠다니는 별빛과 움직이는 영상은 마치 작은 로켓을 타고 오른 듯한 기분을 선물한다.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은 물론, 혼자 찾은 성인 관람객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며 휴대전화 카메라에 장면을 담느라 분주해진다.

느러지전망관람대 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느러지전망관람대 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이 특별한 실내 경험은 곧바로 나주호의 고요한 수면으로 이어진다. 전시관을 나와 호수를 마주하면, 방금 전까지 쏟아지던 인공의 빛이 자연의 잔잔한 물결로 바뀐다. 영감을 자극하던 우주의 장면이 호수 위 반사된 하늘로 옮겨오는 순간, 여행자는 도시에서 가져온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

 

낮 동안 풍경을 충분히 눈에 담았다면, 나주시 빛가람동으로 발길이 향한다. 정동 나주혁신점은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는 프리미엄 돈카츠 식당이다. 워터에이징과 습식 숙성을 거친 돼지고기를 바삭하게 튀겨 내고, 마지막에 숯불 위에서 한 번 더 훈연해 향을 입힌다. 테이블에 놓인 접시에서는 두꺼운 고기 단면과 고운 튀김옷, 은은하게 번지는 숯 향이 동시에 눈과 코를 자극한다. 한입 베어 물면 기름진 맛보다는 부드러운 식감과 담백한 육향이 먼저 느껴져 “생각보다 가볍다”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빼놓지 않는 메뉴는 넓적 우동면이다. 넓게 펼쳐진 면발이 국물 위에 살포시 떠 있는 모습은 보는 재미를 더하고, 새콤하고 칼칼한 국물이 돈카츠의 여운을 말끔하게 정리해 준다. 넉넉한 좌석과 세련된 인테리어 덕분에 점심시간의 소란 속에서도 비교적 여유로운 식사가 가능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맛과 공간 모두에서 ‘한 끼의 만족’을 중시하는 요즘 취향과 맞닿은 지점이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다시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싶어진다. 나주시 서내동 금남길의 카페 다올은 그런 마음을 품고 찾기 좋은 곳이다. 전통 한옥의 기둥과 서까래, 마당이 그대로 살아 있는 이 카페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공기부터 달라진다. 오래된 나무 냄새와 볶은 원두 향이 뒤섞인 실내에서 창가 자리를 잡으면, 낮게 난 창틀 너머로 골목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잔잔한 음악과 차분한 조명 아래에서 마주하는 커피 한 잔, 정갈한 디저트 한 조각은 여행의 속도를 한 번 더 늦춘다. 손님들은 책을 펼치거나,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는 “카페에 왔다기보다, 잠시 다른 시대에 들른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공간 자체가 주는 온기가 크다.

 

여행의 마지막은 다시 영산강으로 향한다. 나주시 동강면의 느러지전망관람대에 오르면, 강물이 크게 굽이치며 빚어 놓은 한반도 모양의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이면 주변 들판과 산이 황금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어,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한 장의 지도로 변한다. 탁 트인 관람대에서 강줄기를 따라 눈을 옮기다 보면, 우리나라 지도를 펼쳤을 때와 닮은 윤곽이 선명해져 묘한 감정이 일기도 한다.

 

전망대 주변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걸으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함께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산책을 마치고 난 뒤에는 “멀리 온 것도 아닌데, 마음은 훨씬 멀리 다녀온 기분”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는 이들이 많다. 댓글과 후기에는 “가족과 함께 보기 좋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 또 가고 싶다”는 소감이 자연스럽게 쌓여 간다.

 

나주는 화려하게 꾸민 관광도시라기보다, 풍경과 맛, 공간이 느슨하게 연결된 하나의 여정에 가깝다. 우주를 향한 상상을 자극하는 전시관, 숯불 향이 배인 한 끼 식사, 한옥의 고요한 오후, 한반도 모양 강을 내려다보는 전망까지. 크고 작은 장면들이 이어지며 여행자의 하루를 채운다.

 

가을의 끝자락,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복잡한 준비가 부담스럽다면 나주 같은 도시가 답이 될 수 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선택일지라도, 호흡을 조절하듯 천천히 걷다 보면 마음속 리듬도 조금씩 달라진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송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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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우주드림#느러지전망관람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