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스스로 의사결정 위반 첫 사례"...패스트트랙 충돌 국힘 26명 1심 벌금형
패스트트랙 정국의 상징이었던 국회 물리적 충돌을 두고 사법부 판단이 정치권을 다시 흔들고 있다. 자유한국당 시절 패스트트랙 저지에 나섰던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 26명에게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면서, 국회 내 물리력 동원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는 모습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는 20일 오후 특수공무집행방해, 국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 자유한국당 관계자 26명에게 모두 벌금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선출직을 상실시키는 수준의 형량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의원에게 벌금 총 2천400만원, 당 대표였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게 벌금 총 1천900만원을 선고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벌금 총 1천150만원을 선고받았다.
현직 국회의원인 이만희 의원은 벌금 850만원, 김정재 의원은 벌금 1천150만원, 윤한홍 의원은 벌금 750만원, 이철규 의원은 벌금 55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장우 대전광역시장과 김태흠 충청남도지사는 벌금 750만원과 150만원의 형을 받았다.
재판부는 국회법 위반 사건의 성격을 강하게 지적했다. 재판부는 선고문에서 "이번 사건은 국회가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신뢰를 회복하고자 마련한 국회의 의사결정 방침을 그 구성원인 의원들이 스스로 위반한 첫 사례"라고 규정했다.
이어 재판부는 "분쟁의 발단이 된 쟁점 법안의 당부를 떠나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며 "특히 헌법과 법률을 누구보다 엄격히 준수해야 할 의원들이 불법 수단을 동원해 동료 의원의 활동을 저지했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패스트트랙 충돌을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나 저항권 행사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회 내에서 벌어진 행위라 하더라도 폭력과 물리적 봉쇄가 수반된 경우 헌법상 특권의 보호 범위를 벗어난다는 취지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정치적 동기를 참작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이 사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당성을 공론화하려는 정치적 동기로 범행에 나아갔다"며 "사건 발생 이래 여러 차례의 총선과 지선을 거치며 피고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1심 판결이 대법원까지 유지되더라도 나경원 의원 등은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는다. 일반 형사 사건에서는 금고 이상의 형이, 국회법 위반 사건에서는 벌금 500만원 이상이 선고돼야 의원직이 박탈된다. 이날 선고에서 국회법 위반 혐의 관련 가장 무거운 벌금은 나경원 의원과 황교안 전 총리에게 내려진 400만원이었다.
검찰은 앞서 나경원 의원에게 징역 2년, 황교안 전 총리에게 징역 1년 6개월, 송언석 의원에게 징역 10개월과 벌금 200만원을 구형한 바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모두 벌금형으로 정리했다. 고 장제원 전 의원에 대해서는 지난 4월 사망으로 인한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선고 직후 피고인들은 각기 다른 메시지를 남겼다. 나경원 의원은 법정 밖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적인 사건을 6년간 사법 재판으로 갖고 온 것에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며 "무죄 선고가 나오지 않은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법원은 명백하게 우리 정치적 항거의 명분을 인정했다"며 "더불어민주당의 독재를 막을 최소한의 저지선을 인정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오늘 판결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항소 여부에 대해서는 "조금 더 판단해보겠다"고만 밝혔다.
황교안 전 총리는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졌다"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하고 법정을 떠났다. 향후 국민의힘 내부에서 판결 수용 여부와 항소 전략을 둘러싼 추가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검찰 역시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한 뒤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사건의 출발점은 2019년 4월 여야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법안을 패스트트랙,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문제를 두고 극한 대치를 벌였던 시기였다. 당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채이배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을 의원실에 머물게 하며 표결 참여를 막으려 했고, 국회 의안과 사무실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했다는 혐의로 2020년 1월 재판에 넘겨졌다.
해당 사건은 기록만 6테라바이트에 이르는 대형 사건으로 장기 재판으로 이어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26명에 이르고 검찰 제출 증거가 2천여개, 증인이 50여명, 제출된 영상 파일이 방대해 기소부터 선고까지 5년 10개월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같은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1심 선고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2부는 오는 28일 공동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박주민 의원 등 10명에 대한 변론을 종결하고 심리를 마무리하는 결심 공판을 열 예정이다. 늦어도 내년 초에는 1심 선고가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국회 내 물리력 행사에 대한 법원의 잇단 판단은 향후 여야의 대치 국면에서 정치적 수단의 한계를 재설정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은 패스트트랙 충돌 재판의 최종 결론을 지켜보며 향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제도, 선거제도 개편 논의의 정당성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다음 회기에서 국회법 준수와 물리력 충돌 방지 대책을 둘러싸고 다시 한 번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