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JMS 성범죄 녹음 유출 수사, 위법해 무효”…법원, 변호사 공소 기각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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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총재의 여신도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 녹취파일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변호사에 대해 법원이 “수사절차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며 공소를 기각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대전지법 형사3단독 김정훈 판사는 이달 2일 변호사 A씨에 대한 업무상비밀누설 등 혐의 선고공판에서 “검찰의 이 사건 수사절차는 위법해 무효”라며 공소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공소기각은 재판을 이어갈 수 있는 전제인 적법한 공소제기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사건은 지난해 정 총재에 대한 항소심(2심) 재판 과정에서 비롯됐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 측 변호인단에 피해자 진술이 담긴 녹음파일의 등사(복사)를 허가했다. 검찰과 피해자 측은 “유출 우려가 크다”고 반대했으나, 재판부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복사를 허용했다.

 

해당 파일에는 정명석의 음성 등 범행 당시 정황이 그대로 수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복사된 파일 일부가 외부로 퍼지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자, 검찰은 “복사한 파일이 벌써 유출되고 있어 즉각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응에 나섰다.

 

검찰은 정 총재에 대한 2심 판결이 선고된 뒤인 지난해 10월, 피해자 측 고발 등을 근거로 녹취파일 유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후 A씨를 업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법정에 선 변호사 A씨는 “해당 파일이 업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고, 행위 자체도 위법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아울러 “검찰의 수사 개시 자체가 현행법상 허용 범위를 벗어났다”며 수사 절차의 위법성을 집중적으로 다퉜다.

 

재판부는 수사권 조정 이후 개정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등을 검토한 끝에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김 판사는 “이 사건 수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법이 정한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를 넘어 이뤄진 것으로, 수사절차에 문제가 있으므로 무효”라고 판시했다.

 

현행 제도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 유형을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이른바 ‘중요범죄’와 경찰이 처리하기 어려운 범죄가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정 총재 성범죄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경우라면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지만, 이 사건은 그러한 주요 범죄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심 판단에 따르면 두 사건은 피해자가 같다는 점 외에는 객관적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두 사건 피해자가 같더라도 검찰이 수사할 만한 객관적 관련성을 연관 지을 수 없다”며 “법원이 이 사건 관련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사실만으로 검찰 수사 개시가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로 피해자 녹취파일의 유출 경위를 둘러싼 형사 책임 판단은 사실상 중단됐다. 다만 법원의 공소기각 결정은 A씨의 행위 자체가 문제없다고 단정하기보다, 수사 착수 단계의 적법성에 초점을 맞춰 이뤄진 것이다. 향후 검찰이 항고 또는 항소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둘러싼 법리 다툼이 이어질 수 있다.

 

한편 JMS 정명석 사건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과 방송사 탐사프로그램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정명석은 2018년 2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충남 금산 수련원에서 홍콩·호주 국적 여신도와 한국인 여신도를 상대로 총 23차례 성폭행·추행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2023년 11월 1심에서 징역 30년을 구형했고, 같은 해 12월 법원은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검찰과 피고인 측 모두 항소해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도 검찰은 징역 30년을 구형했지만, 2심 재판부는 10월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2부는 지난 1월 9일 준강간, 준유사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정명석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 형량을 확정했다.

 

1945년생으로 올해 만 79세인 정명석은 앞서 여신도 성폭행 혐의로 징역 10년을 복역한 뒤 2018년 2월 출소한 전력도 있다. 징역 17년형이 확정되면서 상당 기간 수감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정명석은 별도로 JMS 수련원 약수터 물이 병을 고치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홍보해 ‘월명수’라는 이름으로 판매, 약 20억 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다. 종교단체 내 권력 구조와 신도 보호 장치의 미비, 수사·재판 과정에서의 2차 피해 방지 대책 등 제도적 보완 논의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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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정명석#나는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