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을 걷는 가을”…김제에서 만나는 고요한 시간의 힘
여행을 떠나기 가장 좋은 때, 김제의 하늘이 높아졌다. 예전엔 여기 풍경이 당연했고, 그저 논과 밭의 도시로만 여겨졌지만, 지금은 세밀하게 시간을 음미하고자 김제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드넓은 평야에 부는 바람, 사찰의 풍경, 오래된 지혜와 자연이 어우러진 농경도시는 이제 ‘고즈넉한 쉼’을 누리는 곳이 됐다.
요즘 SNS에는 김제 일대를 걷는 인증 사진들이 자주 오르내린다. “천천히 걷는 가을이 이렇게 특별할 줄 몰랐다”는 방문자들의 고백처럼, 맑게 개인 하늘 아래 22도를 넘나드는 온도와 시원한 바람이 완연한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모악산 금산사의 미륵전 앞, 쏟아지는 햇살 속 붉게 물들어가는 나뭇잎은 방문객들에게 ‘마음의 평온’을 선사하는 포인트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김제 벽골제를 찾은 방문객 수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전라북도의 통계에 따르면, 김제시 전체 관광객의 절반가량이 벽골제와 인근 축제 현장에 다녀간 경험이 있다고 집계됐다. ‘벽골제 지평선 축제’엔 가족 단위 관광객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옛 수리시설을 거닐며, 물과 논, 용의 전설을 주제로 한 체험을 즐기는 모습이 익숙해졌다.
김제 금산사에서 만난 한 여행자는 “사찰을 천천히 한 바퀴 도니,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 걸 느꼈다”고 표현했다. 휘게팜 농장을 찾은 부모는 “말 그대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분위기”라며 “아이들과 흙을 만지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순간만큼은 도시의 번잡함이 잊혔다”고 감상을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라이프 슬로우 라이프’라고 읽는다. 여행 컨설턴트 조아름 씨는 “현대인이 김제 같은 도시에 매력을 느끼는 건, 장소가 제공하는 느림의 질서 덕분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다시 채우고 싶을 때 이런 자연과 역사 공간이 깊은 울림을 준다”고 짚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사진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언젠가 그 넓은 들판을 꼭 걷고 싶다”는 이야기가 커뮤니티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한 주민은 “평소엔 평범해 보이던 우리 동네도 누군가의 여행지임을 실감한다”고 남겼다.
사소한 변화지만, 그 안엔 달라진 여행의 태도가 담겨 있다. 더 멀리 가거나, 더 유명한 장소가 아니어도 좋다. 도심 바깥에서 천년의 시간, 자연과 사람의 숨결을 느끼는 일. 김제 평야와 고찰, 농장에 내리쬐는 햇살은 단지 잠깐의 휴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리듬을 깨우는 기호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나답게 살아갈지, 잠시 멈추고 묻는 그 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