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서브컬처로 간다”…K게임사, 내년 글로벌 재도전
국내 대형 게임사들이 내년 콘솔과 서브컬처 장르 대작을 일제히 내놓으며 글로벌 시장 재도전에 나선다. 모바일과 MMORPG에 편중됐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플랫폼 리스크를 줄이고, 콘솔과 서브컬처 특유의 탄탄한 팬덤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내년 출시작 성적이 한국 게임 산업의 중장기 성장 축이 모바일을 넘어설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펄어비스는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붉은사막 출시일을 내년 3월 20일로 확정했다. 수차례 연기 끝에 공개된 일정인 만큼 완성도에 공을 들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붉은사막은 개발 초기부터 글로벌 콘솔 시장을 겨냥해 설계된 타이틀로, 한국 게임으로서는 보기 드문 대형 콘솔 중심 프로젝트다. 업계에서는 붉은사막의 성과가 국산 콘솔 중심 대작의 흥행 가능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붉은사막은 파이웰 대륙을 배경으로 한 오픈월드 구조와 실시간 액션 전투를 앞세운다. 펄어비스가 자체 개발한 차세대 엔진 블랙스페이스가 적용돼 대규모 필드와 캐릭터, 환경 효과를 고해상도로 구현한 점이 특징이다. 올해 도쿄게임쇼 등에서 실제 플레이 시연을 진행하며 프레임 드롭과 버그 우려 등을 상당 부분 덜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콘솔 특성상 안정적인 프레임과 조작감, 연출 완성도가 구매 결정에 직결되는 만큼 엔진 내재화와 장기 개발이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넷마블은 인기 만화 일곱 개의 대죄 지식재산권을 활용한 오픈월드 액션 RPG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을 내년 1월 28일 PC와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에 동시 출시한다. 글로벌 누적 판매 5500만 부를 기록한 원작 IP 인지도에 오픈월드 탐색과 액션성을 결합해 콘솔 시장에 세 번째로 도전하는 구도다. 기존 모바일 수집형 RPG 중심 공식을 벗어나 패키지 콘솔 시장 공략을 강화해, 매출 구조를 다층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넷마블은 여기에 몬길 스타 다이브, 나 혼자만 레벨업 카르마, SOL 인챈트, 이블베인 등 서브컬처와 MMORPG를 넘나드는 신작 라인업을 내년 중 선보일 계획이다. 만화, 애니메이션, 웹소설 등 다양한 IP를 활용해 글로벌 유저층이 선호하는 캐릭터 수집과 빠른 전투 템포를 결합한 것이 공통점이다. 특히 서브컬처 특유의 굿즈, 2차 창작 등 파생 수익 구조까지 감안하면, 단일 게임 흥행을 넘어 IP 사업 확장에도 유리한 장르로 평가된다.
엔씨소프트는 내년 자사의 첫 오픈월드 슈팅게임 신더시티와 타임 서바이벌 슈터 타임 테이커즈를 PC와 콘솔 버전으로 동시에 내놓을 예정이다. 그동안 리니지 계열 MMORPG에 집중해 온 엔씨가 콘솔과 슈팅 장르에 본격 진입하는 셈이다. 신더시티는 자회사 빅파이어 게임즈가 자체 개발 중인 AAA급 멀티 플레이 타이틀로, 스토리 중심 내러티브와 온라인 협동 플레이를 결합한 구성을 앞세운다. 타임 테이커즈는 미스틸게임즈가 개발하고 엔씨가 퍼블리싱하며, 시간 에너지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독특한 규칙이 차별점으로 거론된다.
엔씨는 서브컬처 장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빅게임스튜디오가 개발하고 엔씨가 퍼블리싱하는 애니메이션 액션 RPG 리밋 제로 브레이커스를 내년 출시 목표로 개발 중이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연출과 캐릭터성, 빠른 템포의 전투를 특징으로 내세운다. 전체 게임 수익에서 소수 MMORPG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콘솔과 서브컬처 기반의 신규 매출 축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넥슨 계열 넥슨게임즈는 서브컬처 흥행작 블루 아카이브의 핵심 개발진을 다시 모아 프로젝트 RX를 준비 중이다. 넥슨게임즈는 IO본부를 신설해 서브컬처 장르를 전담하게 했고, 글로벌 이용자 성향을 반영한 캐릭터 디자인과 라이브 서비스 운영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과 북미를 중심으로 서브컬처 팬덤이 커지고 있는 만큼, 후속작이 블루 아카이브를 잇는 글로벌 흥행작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국내 게임사들이 콘솔과 서브컬처에 동시에 베팅하는 배경에는 기존 모바일과 MMORPG 중심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이 있다. 이용자 당 결제액 경쟁이 심해지고 마케팅 비용도 상승하는 가운데, 콘솔과 서브컬처는 상대적으로 충성도 높은 팬층을 기반으로 중장기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캐릭터 IP 가치가 높을수록 굿즈, 애니메이션, 콜라보레이션 등 2차 사업 확장도 수월해지는 구조다.
글로벌 게임 시장 조사 기관 뉴즈에 따르면 콘솔 게임 매출 점유율은 28퍼센트로, 49퍼센트를 차지한 모바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보이고 있다. 콘솔 시장 매출 전망치도 25퍼센트에서 28퍼센트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돼, 모바일 다음으로 중요한 수익원으로 평가된다. 마니아층 중심 패키지 시장에서 라이브 서비스형 콘솔 게임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점도 국내 게임사에게는 기회 요인으로 언급된다.
서브컬처 게임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미래에셋증권 리포트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전체 게임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5.2퍼센트에 그쳤지만 동일 기간 서브컬처 게임 시장은 연 16.7퍼센트 성장했다. 캐릭터와 스토리 중심 소비 성향이 강화되면서, 한 번 유입된 이용자들이 여러 작품과 굿즈로 소비를 확장하는 패턴이 자리 잡은 결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서브컬처가 모바일과 콘솔, PC를 가로지르는 ‘장르형 메가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콘솔과 서브컬처 시장 모두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일본과 미국, 유럽에는 이미 다수의 콘솔 대작과 서브컬처 명작들이 포진해 있어, 신규 진입작이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기술 완성도뿐 아니라 로컬라이제이션, 커뮤니티 운영, IP 확장 전략까지 종합적인 역량이 요구된다. 자본과 개발 인력이 집중되는 만큼, 흥행 성패에 따른 실적 변동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내년 출시되는 붉은사막을 비롯한 주요 콘솔·서브컬처 신작들이 성과를 거둘 경우 한국 게임 산업의 성장 축이 모바일에서 멀티 플랫폼으로 재편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대로 대작 중심 전략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투자 위축과 인력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산업계는 콘솔과 서브컬처 신작들이 글로벌 시장에 안착해, K게임 성장 공식을 한 단계 확장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