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매달 700만원의 꿈”…연금복권 720 290회 결과가 던진 숫자의 설렘과 현실

오태희 기자
입력

요즘 목요일 저녁마다 TV 앞에 앉아 숫자를 세어 보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그저 운 좋은 사람만의 이야기라 여겨졌지만, 지금은 한 달 생활비와 노후를 함께 꿈꾸는 일상의 의식이 됐다. 사소한 번호 선택 뒤에는 각자의 사정과 바람이 조용히 겹쳐진다.

 

11월 20일 동행복권이 발표한 연금복권 720 290회 추첨에서는 1등 당첨번호로 5조 200115번이 뽑렸다. 매달 700만원씩 20년간 받는 연금 형식의 1등은 이번 회차에서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다. 세금을 제외하면 월 546만원을 20년 동안 받게 되는 자리라서인지, 빈칸으로 남은 1등 자리는 더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연금복권 720 290회 당첨결과
연금복권 720 290회 당첨결과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목요일 저녁이 인생의 방향을 조금 바꾸는 시간으로 남았다. 2등은 1등과 조만 다르고 6자리 숫자가 같은 각조 200115번에서 1명이 나왔다. 2등 당첨금은 월 100만원을 10년간 받는 구조다. 세금 22%를 제하면 실수령액은 월 78만원 정도. 누군가에게는 전세 대출 이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모님 용돈, 혹은 아이 학원비가 되는 숫자다.

 

보너스 번호는 각조 694748번으로, 마찬가지로 월 100만원씩 10년간 지급된다. 세후 실수령액은 2등과 같은 월 78만원이며, 이번 회차 보너스 당첨자는 9명이다. 화면을 보며 “숫자 하나 차이였다”고 속으로 되뇌는 이들이 많겠지만, 당첨자에게는 10년치 최소 생활비가 새로 열린 셈이다.

 

당장 목돈이 손에 쥐어지는 구간도 있다. 3등 당첨번호는 1등 번호 기준 뒷 5자리 00115번으로, 35명이 당첨됐다. 1인당 100만원이 일시금으로 지급된다. 한 달 생활비를 조금 숨 돌리게 해주는 정도의 여유다. 4등은 뒷 4자리 0115번으로 591명이 당첨됐고, 당첨금은 10만원이다. 지갑 속 카드값을 한 번쯤 낮춰 줄 수 있는 크기다.

 

5등은 115번으로 5만717명이 당첨됐다. 당첨금은 5만원이다. 저녁 식사 한 번을 넉넉하게 하거나, 밀어두었던 소소한 지출을 허용해 주는 금액이라서인지 “소확행”에 가깝다. 6등 1만 원대 구간인 15번에는 5000원의 당첨금이, 가장 끝자리만 맞추는 7등 5번에는 1000원이 걸려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무심코 긁은 복권에서 작은 숫자가 맞아떨어질 때의 안도감은 여전히 크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연금복권 720의 1등 번호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조 단위에서는 4조가 65회로 가장 많이 뽑혔고, 이어 1조 63회, 5조 57회, 3조 56회, 2조 49회 순이다. 이번 회차 1등 조 번호인 5조는 지금까지 57회 당첨됐다. 화면 속 조 번호를 유심히 보는 사람들이 조합을 기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각 자리수별로도 선호와 통계가 겹친다. 십만 단위에서는 4가 37회, 8이 36회로 가장 많이 등장했고, 1과 5는 각각 32회, 9는 30회다. 이번 회차 2가 들어간 십만 단위는 지금까지 26회 등장했다. 만 단위에서는 4가 38회, 3이 37회로 강세를 보였고, 0은 31회였다. 290회 1등 번호의 만 단위인 0도 그렇게 31번이나 사람들의 기대를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천 단위에서는 9가 33회로 가장 많았고, 7이 32회, 2와 6이 각각 31회를 기록했다. 0과 3은 26회, 1은 23회였다. 백 단위는 0과 2가 각각 34회로 공동 1위를 차지하고, 3이 33회 뒤를 이었다. 1과 5는 31회씩 등장했다. 십 단위에서는 5가 35회로 가장 많고, 7이 34회, 3이 33회다. 이 자리에서 1은 29회 등장했다. 일 단위는 6이 37회, 8이 36회, 3과 7이 33회로 높은 빈도를 보이며, 5와 2는 각각 29회 이름을 올렸다.

 

사람들은 이런 숫자를 보며 나름의 공식을 만든다. 어떤 이는 “4와 5가 많이 나온다”고 느끼고, 또 다른 이는 “끝자리는 6이나 8이 강세”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매 회차가 독립적인 확률 게임이라는 걸 알면서도, 반복되는 숫자 속에서 작은 패턴을 찾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순간의 행운을 넘어, 일상의 피로를 덜어 줄 ‘근거 있는 기대’가 필요해진 시대다.

 

연금복권 720의 당첨 구조는 이런 마음에 현실적인 기준을 더한다. 당첨금 지급 기한은 개시일로부터 1년이다. 그만큼 번호를 확인하는 행위 자체가 생활관리의 일부가 됐다. 등수별 중복 당첨금도 모두 수령할 수 있어, 일부러 여러 조합을 나눠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5만원 이하는 가까운 복권 판매점에서, 5만원을 넘기는 금액은 농협은행 전국 지점에서 받을 수 있다. 연금식 당첨금은 동행복권의 당첨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당첨확률이다. 연금복권 720 플러스의 1등 당첨확률은 1/5000000으로, 로또 6/45의 1/8145060과 비교하면 약 1.6배 높다. 기대와 현실 사이를 저울질하는 사람들에게 이 숫자는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언젠가 한 번쯤은 나에게도 차례가 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 정도의 여유가 허락되는 확률인 셈이다.

 

놓쳐버린 당첨금의 행방도 누군가의 삶과 이어져 있다. 지급기한을 넘긴 당첨금은 복권기금으로 돌아가 사회 곳곳의 지원 재원으로 쓰인다. 당첨자가 찾지 못한 행운이 다른 누군가의 안전망이 되는 구조다. 그렇게 보면, 번호를 맞추지 못한 날의 아쉬움도 아주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연금복권 720 플러스는 가까운 인쇄복권 판매점에서 종이로 사거나, 동행복권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으로 바로 구매하거나 예약 구매를 할 수 있다.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5분, 지상파 생방송으로 공개되는 추첨 장면은 어느새 많은 이들의 저녁 풍경 속에 자리 잡았다. 누군가는 장을 보고 돌아와 TV를 켜고, 누군가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로 번호를 확인한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또 한 자리 차이였다”는 탄식과 “5등이라도 나와서 치킨은 해결했다”는 소소한 기쁨이 뒤섞인다. 숫자 몇 개에 웃고 아쉬워하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형편과 바람을 조금씩 드러낸다. 누군가는 “현실이 팍팍할수록 이런 작은 기대라도 있어야 버틴다”고 고백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생활형 복권 소비’라고 부른다. 단숨에 인생을 뒤집는 대박보다, 안정적인 월 단위 수령에 대한 선호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 앞에서 사람들은 이제 한 번의 폭죽보다 오래 타는 촛불을 선택한다. 매달 들어올 수 있는 일정 금액은 단지 돈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시간까지 함께 가져다준다.

 

그래서 연금복권은 누군가에겐 단지 숫자놀이가 아니게 됐다. 아이 교육비를 떠올리며 번호를 고르고, 부모님의 노후를 생각하며 조합을 적어 내려간다. 당첨이 되지 않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원하는 삶의 모양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어쩌면 복권은 돈이 아니라 ‘다른 삶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사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290회 결과가 전한 숫자들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마음지도다. 팍팍한 월급명세서 사이로 작은 연금을 꿈꾸고, 불안한 노후 계획 틈에서 몇 자리 숫자에 기대를 걸어 본다. 오늘도 누군가는 다음 회차를 위해 새로운 번호를 적는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오태희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연금복권720#동행복권#로또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