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반헌법적 계엄 사죄·尹과 단절"…국민의힘 초재선 25명 집단 반성문

신채원 기자
입력

12·3 계엄 사태 1년을 맞아 국민의힘 내부에서 반성과 단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당시 집권 여당 소속이었던 의원들이 집단 사과에 나서면서, 비상계엄과 탄핵을 둘러싼 정치권 논쟁도 다시 고조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초선·재선 의원 25명은 3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12·3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공식 인정했다. 사과문 낭독은 재선 이성권 의원과 초선 김용태 의원이 각각 맡았다.

이성권 의원과 김용태 의원은 사과문에서 12·3 비상계엄을 강하게 규정했다. 두 의원은 비상계엄을 두고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성취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짓밟은 반헌법적·반민주적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당시 집권 여당 일원으로서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은 헌법재판소 판단을 수용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사과문에는 "비상계엄을 위헌·위법한 것으로 판결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헌법재판소가 비상계엄을 위헌·위법으로 판단한 뒤 1년이 흐른 시점에 맞춰, 여당 전·현직 세력의 책임을 인정하는 메시지를 내놓은 셈이다.

 

정치적 단절을 선언하는 대목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비상계엄을 주도한 세력과 정치적으로 단절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특정 정치 세력과의 선 긋기를 통해 보수 정당의 재정립을 시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사과문은 향후 진로와 혁신 방향도 언급했다. 이들은 "이제 저희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용기 있는 단절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뼈를 깎는 변화와 혁신으로 국민께 다시 희망을 드릴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대국민 사과에는 국민의힘 내 소장파로 분류되는 공부 모임 대안과 책임 소속 의원과 친한계로 불리는 인사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4선 안철수 의원과 3선 김성원·송석준·신성범 의원이 참여했고, 재선 권영진·김형동·박정하·배준영·서범수·엄태영·이성권·조은희·최형두 의원도 동참했다.

 

초선급에서는 김용태·김재섭·박정훈·안상훈·우재준·이상휘·정연욱 의원에 더해 비례대표 초선 고동진·김건·김소희·유용원·진종오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대안과 책임 소속 의원들은 사전에 입장문을 마련한 뒤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7명 전원에게 동의 여부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날 사과문에 동참한 의원은 25명에 그쳤다.

 

당 지도부도 같은 날 잇따라 메시지를 내며 12·3 계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언급했다. 장동혁 대표는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계엄에 이은 탄핵은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민의힘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적어, 지도부 차원의 부담감을 드러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상 공식 사과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계엄의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사과 표현은 자제했지만, 국회의원 전반의 책임을 언급하며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비상계엄 사태 1년을 계기로 당 차원의 명확한 사과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정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대안과 책임 의원들의 집단 반성문과 장동혁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의 메시지는 이런 요구에 일정 부분 호응한 행보로 평가된다.

 

그러나 당 전체가 하나의 목소리로 수습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25명의 동참에 그친 사과문, 그리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에 대한 당내 이견 등이 향후 계파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둘러싼 책임 공방은 보수 진영의 정체성 논쟁과 맞물리며 당내 역학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의 집단 사과가 향후 정계 개편과 선거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에 대한 평가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민심의 중요한 기준이 돼 왔기 때문이다. 한편 국회는 계엄 사태 후속 입법과 헌정질서 수호 장치 강화를 주제로 관련 논의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은 계엄 사태 1년을 계기로 지도부와 초·재선 의원들이 잇따라 반성과 단절을 언급한 만큼, 향후 전국위원회와 의원총회 등 공식 회의를 통해 당 쇄신 방향과 대외 메시지를 정리할 계획이다.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제도 개선과 정치적 책임론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신채원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국민의힘#윤석열전대통령#장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