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청년 해외투자 정서적 공감”…이찬진, 국민연금 외환시장 영향에 구조적 논의 촉구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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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일, 한국(Republic of Korea)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청년층 해외투자 확대와 국민연금의 외환시장 영향력, 대출절벽 우려 등 국내 금융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번 발언은 고환율과 글로벌 자본 이동이 맞물린 상황에서 한국 금융정책의 방향성과 외환시장 안정 전략을 둘러싼 논의를 촉발하고 있다.

 

현지시각 기준 1일 오전, 이찬진 원장은 간담회에서 고환율 요인으로 지목되는 해외주식 개인투자 흐름과 관련해 “오죽하면 청년들이 해외투자를 하겠느냐 정서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한국은행(Bank of Korea) 이창용 총재가 젊은 층의 해외주식 투자 열풍을 두고 “쿨하다”면서도 우려를 표한 것과 맞물려, 정책 당국 내 인식 차이를 드러낸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원장은 청년층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나은 투자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 공감한다고 언급하면서, 단순한 경계론보다 구조적 요인 진단에 방점을 찍었다.

이찬진 "청년 해외투자 정서적 공감"…국민연금 외환시장 영향에 사회적 논의 촉구
이찬진 "청년 해외투자 정서적 공감"…국민연금 외환시장 영향에 사회적 논의 촉구

다만 금융감독원이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해외투자 상품 설명 의무와 투자자 보호 체계 점검에 대해서는 “해외주식 투자를 직접적으로 규제한다는 차원이 전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서학개미를 차별적으로 겨냥한 규제가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하고 있다며, 투자자 보호 목적으로 고위험 상품 설명과 리스크 인식 여부를 점검하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특히 “서학개미 인구집단을 보면 청년층 비중은 오히려 작고, 40·50대가 주류”라고 짚으며, 중장년층이 고위험 자산에 노출된 상황에서 소비자 보호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자산 중 약 1%를 해외주식에 투자하고 있다고 공개해, 해외투자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는다는 점도 부각했다.

 

최근 한국 금융시장에서는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매수,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투자, 수출 기업의 달러 수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일각에서는 개인투자자의 해외투자를 고환율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하며 각종 규제나 제약 방안을 거론하고 있지만, 자산 형성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반발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이 원장은 논의의 초점을 개인에서 거대 기관으로 옮기며, 국민연금의 외환시장 영향력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촉구했다.

 

이 원장은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국민연금의 역할과 책임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국민연금을 “외환시장에서 공룡이 된 존재”라고 표현하며, 대규모 해외투자와 환헤지 전략이 환율 흐름에 미치는 파급력을 우려했다. 이어 “원화 약세로 우리의 급여가 디스카운트되고 있다는 데 분노해야 하는데, 국민연금이 결과적으로 이 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초대형 연기금의 투자 전략이 외환시장과 실질소득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을 두고 사회적 논의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 발언은 글로벌 투자 환경에서 대형 연기금과 국부펀드가 통화와 자본 흐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해외 주요국 공적연금의 투자 전략과 외환시장 안정 사이의 균형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유럽(Europe)과 북미(North America)의 일부 국가는 연기금 투자분에 대한 환헤지 비율 관리, 장기적 자산배분 전략 조정 등으로 시장 충격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해왔다는 점에서, 한국 역시 유사한 논의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시그널로 읽힌다.

 

한편, 최근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간 정책·감독 영역을 둘러싼 갈등설에 대해서도 이찬진 원장은 입장을 밝혔다. 일부 증권사의 발행어음 인가 심사 중단 논란, 금융회사 영업정지 제재 과정에서의 표결 요구 등 사례가 ‘금융위와의 충돌’로 비춰진 데 대해 그는 “정책·감독 부분에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고, 그럴 때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으로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정책 부분은 당연히 금융위 중심으로 하는 것이고, 감독 부분은 금감원이 필드에 있는 모든 영역을 커버하고 있기 때문에 존중돼야 한다”고 언급해, 현장 감독기관으로서의 위상과 권한을 분명히 했다.

 

연말·연초를 앞두고 한국 은행권의 가계·기업 대출이 급격히 위축되는 이른바 대출절벽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언급됐다. 이 원장은 “대출 관련 충격이나 대출절벽이 발생할 정도의 상황은 없을 것”이라며 시장 불안을 차단하려 했다. 그는 여러 시중은행이 현재 대출 한도 가이드라인을 다소 넘어선 상태이며, 일부는 연말까지 한도 목표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내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금융위원회와 긴밀히 공조해 대출공급 급감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개혁 방향과 관련해 이 원장은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금융지주사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공공성이 요구되는 조직임에도 이사회가 균형 있게 구성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며, 특히 “회장의 연임 욕구가 과도하게 작동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장기 집권 구조가 거버넌스 건전성과 위험관리 기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다만 특정 금융그룹 경영에 개입하려는 의도는 아니라며,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를 출범해 외부 견제와 감시 장치를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취약 차주와 저신용자 지원 문제도 주요 의제로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저신용자 대출금리 인하 필요성을 제기한 데 대해, 이 원장은 “실질적인 서민금융 후생효과가 발생하도록 감독 당국으로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중소금융 영역에서 미션을 수행할 제도적 인프라와 환경이 조성되도록 챙기고 있다”고 덧붙이며, 저신용자 대상 금융 인프라 개선과 서민금융 채널 확충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이는 고금리와 경기 둔화 속에서 금융소외 계층의 부담을 덜고, 시스템 리스크를 완화하려는 정책 방향으로 해석된다.

 

실손의료보험 개편과 관련해 이 원장은 과잉 진료와 비급여 확대를 막기 위한 감독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불필요한 과잉 비급여가 양산되는 구조의 보험상품은 설계 단계부터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겠다”고 밝히며, 상품 인가 단계에서부터 소비자 부담이 급증할 소지가 있는 설계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는 의료·보험 비용 증가가 가계 재무건전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의 규제 강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 시행 시 콜센터 인력 외주화 비중이 높은 금융권에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서도 이 원장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소비자 보호라는 본질적 부분에 장애가 발생할 때는 감독 당국으로서 준비해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하며, 법·제도 변화로 영업환경이 달라지더라도 금융소비자 보호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드러난 금융감독원의 기조는 서학개미 해외투자와 국민연금의 외환시장 영향, 대출절벽 우려, 금융지주 지배구조, 서민·저신용자 금융, 실손보험, 노란봉투법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 시장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방향이다. 국제 자본 이동과 고환율 국면에서 연기금과 개인투자자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국내 금융시스템의 회복력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 테이블에 오른 만큼, 향후 한국 금융당국의 정책 조정과 사회적 합의 과정에 국내외 시장 참가자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투자전략과 외환시장 안정 간 균형을 둘러싼 논의가 한국뿐 아니라 다른 주요국에도 파급될 수 있다며, 공적연금 거버넌스와 글로벌 자본 흐름의 관계를 주시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 발언 이후 한국의 외환·연기금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조정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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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진#국민연금#서학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