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도암 HER2 판독 표준화 나선 AI…루닛, 병리의사와 83퍼센트 일치
의료 인공지능 기술이 희귀암 진단의 편차를 줄이며 정밀의료 전환을 재촉하고 있다. 국내 의료 AI 기업 루닛이 디지털 병리 기반 AI 바이오마커 플랫폼을 활용해 진행성 담도암 환자의 HER2 상태를 분석한 결과, 병리의사 합의 판독과 80퍼센트 이상 일치하는 성능을 입증했다. HER2 표적치료제의 임상 연구가 확대되는 가운데, 환자 선별 정확도를 높여 희귀암 치료 전략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를 AI 기반 디지털 병리 솔루션이 희귀암 정밀진단 시장에 본격 진입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루닛은 AI 바이오마커 플랫폼 루닛 스코프를 활용한 진행성 담도암 환자 HER2 진단 연구 결과가 미국캐나다 병리학회 공식 학술지 래버러토리 인베스티게이션에 게재됐다고 23일 밝혔다. 연구는 분당차병원, 일산차병원 연구진과의 공동 프로젝트로 수행됐다. HER2는 인간 표피성장인자 수용체 2형으로, 과발현 여부에 따라 특정 표적치료제의 반응성이 달라지는 대표적인 바이오마커다.

담도암은 발생 빈도가 낮고 진단 시점에 진행된 경우가 많아 예후가 좋지 않은 희귀암으로 분류된다. 최근 엔허투와 지헤라 등 HER2 표적치료제의 임상 연구가 담도암 영역까지 확장되면서, HER2 상태를 정확히 판별해 투여 대상을 가려내는 진단의 중요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HER2 평가의 표준 검사법인 면역조직화학 검사는 염색 강도와 양상 해석이 병리의사 육안 판독에 의존해 판독자 간 결과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연구진은 진행성 담도암 환자의 HER2 IHC 평가 과정에서 실제로 어느 정도의 판독 편차가 존재하는지 정량화하고, AI 모델이 병리의사 집단의 합의 결과와 어느 수준으로 부합하는지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분당차병원에서 전신 항암치료를 받은 진행성 담도암 환자 291명의 HER2 IHC 염색 슬라이드 309개였다.
슬라이드는 3명의 병리의사가 광학현미경 방식과 디지털 병리 방식으로 각각 독립 판독을 수행했고, 이후 루닛 스코프 HER2의 분석 결과와 비교됐다. 디지털 병리는 슬라이드를 전자 이미지로 변환해 모니터에서 판독하는 방식으로, AI 알고리즘과의 연동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최근 암 진단 현장에서 도입이 늘고 있는 영역이다.
연구 결과, 3명의 병리의사가 동일한 HER2 판독 결과를 제시한 비율은 광학현미경에서 62.1퍼센트, 디지털 병리에서 63.4퍼센트에 그쳤다. 같은 샘플을 두고도 판독자에 따라 3분의 1가량은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정량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반면 루닛 스코프는 병리의사 합의 결과와 83.5퍼센트 수준으로 일치해, 사람 전문가 집단이 도출한 기준과 높은 수준의 정합성을 보였다. 특히 광학현미경보다 디지털 병리 환경에서 AI와 병리의사 간 일치도가 더 높게 나타나, 디지털 전환과 AI 도입이 병리 진단의 표준화에 동시 기여할 수 있다는 해석을 뒷받침했다.
루닛 스코프 HER2는 디지털 병리 영상에서 종양 영역을 자동 분할한 뒤, 세포 단위로 염색 강도와 양을 정량 분석하는 방식으로 HER2 발현을 평가한다. 사람 병리의사가 슬라이드 전체를 육안으로 훑으며 점수화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AI는 수십만 개의 세포를 일관된 기준으로 계산해 재현성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AI 판독이 병리의사 간 합의 결과에 수렴하는 동시에, 애매한 경계값 구간에서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정량화 결과는 담도암 환자에서 HER2 상태를 보다 안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HER2 표적치료는 과발현 환자에게서 치료효과가 크지만, 저발현군에서도 약효 가능성이 제기되며 바이오마커 컷오프 설정이 임상 전략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AI 기반 디지털 병리 시스템이 슬라이드 간, 병원 간, 판독자 간 편차를 줄일 수 있다면 다기관 임상시험에서 HER2 기준을 맞추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치료 적합 환자군을 더 정교하게 골라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유방암, 위암 등을 중심으로 HER2 평가 자동화 솔루션과 디지털 병리 AI가 이미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디지털 병리 인프라 구축과 함께 AI 병리 소프트웨어의 규제 승인 사례가 늘고 있으며, 학회와 규제 당국 차원에서 HER2 등 주요 바이오마커의 정량 평가 표준을 논의하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루닛의 담도암 연구는 상대적으로 데이터가 적은 희귀암 영역에서 AI가 재현성과 일관성을 수치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꾀하는 시도로 평가된다.
루닛은 이번 결과를 기반으로 HER2 저발현 등 더욱 세분화된 발현 스펙트럼까지 분석 대상을 넓히고, 다기관 공동연구를 진행해 디지털 병리 기반 AI 솔루션의 적용 범위를 암종과 병원 규모를 불문하고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희귀암과 같이 환자 수가 적은 질환에서는 개별 병원이 확보하기 어려운 데이터 편차를 AI가 보완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계는 기술과 임상 근거가 얼마나 빠르게 축적될지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HER2 진단 특성상 병리의사 간 편차가 불가피한 구조를 지적하며, AI가 진단 객관성과 재현성을 높일 수 있음을 임상 데이터로 제시했다는 데 이번 연구의 의미를 뒀다. 그는 담도암을 포함한 다양한 암종에서 HER2 진단 표준화를 이끌어 환자 치료 기회 확대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AI 병리 솔루션이 실제 보험과 규제 틀 안으로 얼마나 빠르게 편입될지, 그리고 HER2를 넘어 다른 바이오마커와 복합지표로 확장될 수 있을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