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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통신선으로 후발주자 탈피"…우주청, 2032년 무인착륙선 도전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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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 탐사가 정보통신 인프라 산업과 결합하며 새로운 전략 산업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우주항공청이 달 통신 전용 궤도선과 무인 착륙선 일정을 제시하면서, 뒤늦게 뛰어든 한국이 달 탐사에서 어떤 기술 포지션을 택할지가 관심사로 떠오른다. 단순 상징성 대신 달 뒷면까지 연결하는 통신 허브 기술 확보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구상이어서, 향후 우주 인터넷과 우주 데이터 서비스 시장에서의 역할 변화도 예상된다. 업계에선 이번 계획을 한국형 심우주 탐사 인프라 구축 경쟁의 분기점으로 본다.

 

우주항공청은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부 업무보고에서 2029년 달 통신선 역할의 신 궤도선과 2032년 한국 기술 기반 무인 달 착륙선 발사 계획을 공개했다.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신 궤도선의 성격을 재차 물은 데 대해 2029년 달 궤도선은 달 통신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기술 확보 목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다누리 탐사선이 달 표면 영상 촬영과 과학 관측에 집중했다면, 차기 궤도선은 통신 릴레이 기능을 전면에 내세운 설계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핵심은 달 뒷면까지 끊기지 않는 통신망을 여는 중계 기술이다. 달은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가 거의 같아 지구에서 항상 같은 면만 보인다. 이 때문에 달 뒷면에선 지구 기지국과 직접 교신이 불가능하다. 윤 청장은 달 통신선이 궤도를 돌며 중계 역할을 수행하면, 향후 달 착륙선이 표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통신이 훨씬 용이해진다고 설명했다. 이는 달 표면 탐사뿐 아니라 향후 달 극지 자원 탐사, 장기 기지 건설 같은 미션에서 필수적인 우주 통신 인프라로 평가된다.

 

우주 통신선 개념은 단순 중계기를 넘어 고신뢰 우주 네트워크의 전초기지로 확장될 수 있다. 고정밀 안테나와 우주 환경에 강한 고효율 송수신 모듈을 달 궤도에 배치하면, 지상국 몇 곳에 의존하던 기존 구조를 넘어선 분산형 통신망 구축이 가능하다. 향후 레이저 통신 같은 고속 우주 광통신 기술이 탑재될 경우, 달 착륙선과 지구 연구진 사이의 데이터 전송량과 속도가 대폭 개선될 여지도 있다. 국내 위성통신, 반도체, 전자광학 산업에 파급효과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보고 과정에서 2032년 무인 달 착륙선 일정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이미 유인 왕복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윤 청장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인정하면서도 2030년대를 목표로 완전한 우리 기술로 무인 착륙선을 구현하겠다고 강조했다. 해외 업체의 플랫폼을 빌리는 방식이 아니라 발사체, 탐사선, 항법, 착륙 제어, 통신까지를 자립하는 것을 전제로 한 일정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달 착륙선 기술은 단순 하강이 아니라 정밀 감속, 지형 인식, 실시간 자세 제어가 결합된 종합 시스템 역량을 요구한다. 최근 미국과 일본이 시도한 정밀 착륙 임무에서 드러났듯 수 미터 단위 착지 오차를 줄이고 연료 소모를 최적화하는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 승부처다. 한국이 목표 시점을 2032년으로 잡은 배경에도 고난도 제어 소프트웨어와 센서 융합 기술을 자체 확보하겠다는 전략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시장 관점에서 달 통신선과 착륙선은 우주 탐사 그 자체보다 향후 데이터 비즈니스의 기반 인프라에 가깝다. 달 뒷면과 극지, 동굴 등 지금까지 관측이 제한적이었던 영역을 지속적으로 연결하면, 고해상도 지형 자료와 방사선 환경 데이터, 자원 탐사 정보가 대량으로 축적된다. 통신선이 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지구로 내려보내는 라우터 역할을 하게 되면, 위성 데이터 분석, 우주 보험, 우주 건설 시뮬레이션 같은 신산업이 파생될 수 있다. 국내 ICT 기업에게는 우주 공간을 대상 시장으로 편입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글로벌 경쟁 구도는 이미 한 발 앞서 전개 중이다. 미국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통해 달 궤도 정거장과 표면 기지 건설을 병행하면서,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상업용 달 착륙선 프로그램도 가동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통신 중계와 네비게이션을 포함한 달 궤도 인프라 구상에 속도를 내고 있고, 중국은 달 뒷면 착륙과 시료 귀환을 경험하며 통신 릴레이 위성을 이미 운영했다. 한국은 다누리로 탐사선 진입 경험을 확보한 단계에서, 통신선과 착륙선을 통해 인프라 영역까지 범위를 넓히는 셈이다.

 

정책 측면에서 우주 탐사 투자는 장기 예산과 위험 관리 체계가 핵심이다. 달 통신선과 착륙선 모두 수년 단위 개발과 수 차례 시험 발사가 필요한 사업이어서, 단기 정권 교체나 경기 변동에 좌우되지 않는 예산 구조 설계가 관건으로 떠오른다. 우주항공청 출범으로 거버넌스는 정비된 만큼, 향후 과학기술 부처, 방산 분야, 통신 사업자 등이 참여하는 다층 협력 모델이 요구된다. 국내 법제도 상 우주 활동 책임과 보험, 데이터 소유권 규율도 보완 과제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우주청의 계획이 기술 로드맵으로는 보수적인 편에 속하지만, 통신 인프라부터 단계적으로 쌓겠다는 방향성 자체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한다. 세계 시장에서 달 탐사 미션 자체는 이미 포화에 가깝지만, 달 궤도를 중심으로 한 우주 통신망과 데이터 서비스는 아직 주도 기업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동 가능한 국제 표준을 선점하고, 심우주 통신 장비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키울 경우 후발 주자에서도 특정 틈새 영역 강자로 전환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내 우주 산업계는 앞으로의 변수로 민간 참여 범위와 기술 이전 속도를 꼽는다. 달 통신선 개발 과정에서 안테나, 송수신 모듈, 탑재 컴퓨터 같은 핵심 부품과 운영 소프트웨어를 민간 기업이 맡게 되면, 통신 위성과 지상 네트워크 산업으로의 파급효과가 커질 수 있다. 반대로 공공 주도의 일회성 프로젝트에 머문다면, 달 탐사 경험이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할 위험도 존재한다. 

 

우주항공청의 2029년 달 궤도선과 2032년 무인 착륙선 계획이 구체적인 탐사 시나리오와 산업 연계 전략으로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어질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 로드맵이 실제 달 궤도와 표면에서의 상용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리고 한국이 우주 인프라 공급국으로 올라설 수 있을지를 주시하고 있다.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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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청#달궤도선#달착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