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의장 방패냐 책임 강환이냐”…쿠팡, 청문회 앞두고 대표 교체 초강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를 앞두고 쿠팡과 국회가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관합동조사단 조사와 경찰 압수수색이 이어지는 가운데, 창업자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의 청문회 출석 여부가 정치권 쟁점으로 떠올랐다.
쿠팡은 10일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책임을 지고 박대준 대표이사가 사임했다고 밝혔다. 후임으로는 모회사인 쿠팡Inc의 해롤드 로저스 최고관리책임자(CAO)가 한국법인 임시 대표를 맡게 됐다. 로저스 임시 대표 선임 시점이 국회 청문회를 일주일 앞둔 상황과 맞물리면서, 사태 수습과 대국회 대응을 동시에 겨냥한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두고 민관합동조사단 조사가 진행 중이며, 경찰도 강제수사에 착수해 이틀째 쿠팡 관련 시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오는 17일 예정된 국회 과방위 청문회에 쿠팡 경영진과 대관 임원들이 증인으로 대거 채택되면서 쿠팡 내부는 비상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앞서 국회 과방위는 청문회 증인으로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과 박대준 쿠팡 대표, 강한승 전 대표, 민병기 정책협력실 부사장, 조용우 국회·정부 담당 부사장 등 5명을 의결했다. 그런데 이날 로저스 임시 대표 선임 사실이 알려지자 과방위는 로저스를 증인으로 추가 채택했다. 기존 박 전 대표에 대한 증인 출석 요구도 유지되면서 증인은 모두 6명으로 늘어났다.
정치권 안팎의 관심은 김범석 의장의 실제 출석 여부에 쏠리고 있다. 김 의장의 국내 체류 계획은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로저스 임시 대표는 국회의 출석 요구가 있을 경우 청문회에 나가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로저스 대표는 현재 미국에 머무르고 있으나, 조만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안팎에서는 로저스 대표가 쿠팡Inc 핵심 이너서클에서 김 의장과 긴밀히 소통해온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쿠팡 내부에선 그가 김 의장의 복심으로 통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전 청문회나 현안 질의 때보다 모회사 의중을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답변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로저스 대표 선임이 김범석 의장의 청문회 출석 가능성을 오히려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회사가 한국 법인의 대표를 교체해 전면에 내세운 만큼, 김 의장이 직접 국회에 나서기보다 새 대표를 전면에 세워 방어막을 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쿠팡은 미국 법인이지만 한국에서 주로 영업 활동을 하며 대부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김범석 의장은 의결권 70%를 보유한 실질적 경영자다. 그럼에도 한국법인에서 벌어진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서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앞서 박대준 대표는 사태 초기 국회 등에서 이번 사건은 한국법인에서 발생한 일이며 자신의 책임하에 있다며 미국 모회사로 책임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확산하고 경찰 수사까지 진행되면서, 김 의장이 과거처럼 특별한 사유 제시 없이 청문회에 불출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국회 과방위가 최근 현안 질의에서 쿠팡의 대관 로비로 김 의장의 상임위 출석이 무산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만큼, 정치권에서는 이번에는 실질적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책임을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청문회 증인 명단에는 그동안 김 의장을 향한 방패 역할을 해온 대관 조직 핵심 인물들도 포함됐다. 정책협력 업무를 총괄하는 민병기 부사장과 국회·정부 채널을 담당하는 조용우 부사장이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두 사람이 김 의장의 출석을 대신해 국회 공세를 차단하기는 어려운 구도가 됐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모회사 핵심 인사인 로저스 대표를 또 다른 방패로 내세운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쿠팡의 대관 조직 확대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와 인사혁신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에 따르면 쿠팡과 계열사는 올해에만 18명의 퇴직 공무원을 영입했다. 국회, 경찰, 대통령비서실,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등 권력기관 출신이 다수를 차지해 대정부·대국회 영향력 확대를 노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퇴직 공직자 영입은 대표이사급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임한 박대준 대표는 LG전자 대외협력실과 네이버 정책실을 거친 대표적 대관 전문가 출신이다. 강한승 전 대표 역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판사 출신으로, 법조·정치 네트워크를 활용한 대관 역량이 주목받아왔다.
이처럼 대관 중심 구조가 비대해지면서, 쿠팡에 대한 시선은 갈수록 곱지 않게 변했다. 지난 2일 열린 국회 과방위 현안 질의에서는 쿠팡이 대관 로비를 통해 김범석 의장의 상임위 출석을 무산시켰다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이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또 다른 일각에선 쿠팡 대관 조직이 외부 간판도 없는 강남 소재 별도 사무실에서 근무했다며, 대관 활동의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쿠팡 관계자는 논란이 된 별도 사무실과 관련해 해당 공간은 잠실 본사 오피스의 공간 부족 문제로 올해 2월부터 임차해 사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퇴직금 미지급 사건이나 개인정보 유출 사안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회사 측은 대관 조직 확대가 법과 제도 범위 안에서 이뤄졌으며, 퇴직 공직자 채용 역시 관련 규정을 준수해 진행했다고 주장해왔다.
정치권은 다가오는 청문회에서 개인정보 유출 원인뿐 아니라 쿠팡의 지배구조, 책임 소재, 대관 관행 전반을 집중 추궁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김범석 의장의 국내 영업 구조와 지배력에 비해 책임 회피 논란이 반복됐다는 점을 놓고 여야 모두 날 선 질의를 예고하고 있다. 여당은 개인정보 보호와 법 준수 여부를, 야당은 플랫폼 기업 권력 집중과 책임 회피 구조를 문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쿠팡 측은 로저스 임시 대표 선임을 계기로 대국민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정비하는 한편, 수사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김범석 의장의 청문회 출석 여부, 책임 범위, 모회사 차원의 관리·감독 시스템 등이 어떻게 규정되느냐에 따라 향후 입법·정책 논의와 기업 규제 방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회 과방위는 예정된 청문회에서 개인정보 유출 경위와 대응, 지배구조 문제를 두루 점검한 뒤 후속 입법 논의에 착수할 계획이다. 정치권은 쿠팡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 기업 책임성과 대관 관행을 둘러싼 공방을 이어가며 정면 충돌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