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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팔 단 내시경"…엔도로보틱스, 피지컬 AI로 ESD 표준화 노린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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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장 내시경 시술에 피지컬 AI가 도입되면서 치료 내시경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기존에는 내시경 화면 속 종양을 찾아 표시해 주는 영상 인공지능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실제 로봇팔이 내시경 끝에서 병변을 들어 올리고 절제와 봉합까지 돕는 단계로 확장되는 중이다. 국내 스타트업과 대학병원이 손잡고 개발한 이 로봇 내시경 시스템은 난도가 높은 내시경 점막하절제술을 보다 안전하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업계에서는 내시경 수술로봇이 의료 AI의 ‘몸체’ 역할을 하며 최소침습 치료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소화기내과와 로봇 메디컬 스타트업 엔도로보틱스는 기존 진단용 내시경에 탈부착할 수 있는 초소형 로봇팔 시스템을 개발해 위·대장 내시경 점막하절제술에 적용하고 있다. 내시경 끝단에 장착된 이 로봇 그리퍼는 병변 주변 조직을 잡아당겨 시야를 확보하고, 절제 방향과 깊이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시술자는 기존과 동일한 내시경 통로를 사용하되, 로봇팔이 병변 견인과 시야 확보를 맡으면서 종양 절제와 박리 평면 유지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핵심 장치는 엔도로보틱스가 내놓은 로보페라 트랙클로저로, 내시경 끝에서 병변을 견인하는 기능과 절제 후 점막 결손을 봉합하는 기능을 연속적으로 수행하는 일체형 로봇팔이다. 기존에는 클립과 올가미 같은 수동 기구를 이용해 보조자가 각도를 맞추며 견인해야 해 시야가 불안정하고 시술자의 피로도가 높았다. 로보페라 트랙클로저는 로봇 제어를 통해 견인 방향과 힘을 정밀하게 조절해 박리 평면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출혈이나 천공 같은 합병증 발생 가능성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설계를 채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연구팀은 로봇 보조 장치를 적용한 내시경 점막하절제술이 기존 수기 방식 대비 절제 속도를 높이고 전체 시술 시간을 줄이는 경향을 확인하고 있다. 특히 위 상부 굴곡부처럼 시야 확보가 어려운 부위나 내시경 각도가 잘 나오지 않는 위치에서 난도가 크게 낮아지는 효과가 관찰되고 있다. 로봇팔이 병변 주변 점막을 들어 올려 절제 층이 또렷이 보이도록 하고, 시술자는 종양 경계와 박리 깊이만 세밀하게 조절하면 되기 때문에, 숙련 의사조차 부담을 느끼던 케이스를 보다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엔도로보틱스는 고려대 안암병원 임상의들의 아이디어와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상용 내시경과 호환 가능한 내시경 수술 로봇 포트폴리오를 확장 중이다. 핵심 전략은 기존 병원 내시경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초소형 로봇팔, 봉합 장치, 자동 삽입 장치 등을 추가해 치료 내시경의 정밀도와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다. 내시경 수술로봇 로보페라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으로부터 로봇 제어 수술시스템에 부여되는 의료기기 허가코드를 국내 기업 최초로 획득했다. 이를 통해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내시경 시장 진입을 위한 규제 관문의 첫 단계를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피지컬 AI 관점에서 보면 내시경 수술로봇은 의료 영상 AI의 ‘두뇌’와 실제 시술 행위를 담당하는 ‘팔과 손’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에 가깝다. 지금까지의 의료 AI는 내시경 영상에서 용종이나 선종을 표시하고, 조기 위암 가능성을 예측하는 등 진단 보조 기능에 집중돼 있었다. 반면 로봇 내시경은 AI가 제안한 절제 범위와 위험 신호를 실제 절제, 박리, 봉합 행위로 옮기는 역할을 수행한다. 두 기술이 결합할 경우 고난도 시술의 결과를 개별 시술자의 손기술에 덜 의존하게 만들고, 시술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의료계는 보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와 엔도로보틱스 연구팀은 영상 AI와 로봇 시스템을 연동한 차세대 피지컬 AI 내시경을 구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병변의 경계와 절제 범위를 실시간으로 제안하고, 내시경 화면에서 출혈이나 천공 가능성을 조기에 감지해 시술자에게 경고하는 기능을 개발 중이다. 여기에 시술 기록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해 절제 경로, 도구 사용 패턴, 합병증 발생 여부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용 피드백 콘텐츠를 생성하는 기능까지 포함하는 방향이 연구되고 있다. 향후에는 환자별 해부학적 구조와 병변 위치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느 부위를 먼저 잡아당기고 어떤 방향으로 절제할지까지 추천하는 지능형 피지컬 AI 내시경으로 진화시키는 것이 목표로 제시된다.  

 

시장 측면에서 피지컬 AI 내시경은 최소침습 치료 수요 증가와 맞물려 성장 여지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암과 대장암 조기 발견이 늘면서 내시경 점막하절제술으로 치료 가능한 환자군이 확대되고 있지만, 실제로 고난도 ESD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숙련 의사는 제한적이다. 로봇 보조 시스템이 도입되면 개복 수술이나 복강경 수술 대신 내시경 기반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환자가 늘어나고, 흉터와 입원 기간, 마취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생긴다. 병원 입장에서는 시술 시간을 단축하고 합병증 관리 부담을 완화해, 내시경실 회전율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수술 로봇이 다양한 진료과에서 사용되고 있으나, 내시경 전용 수술 로봇과 피지컬 AI 내시경은 아직 초기 단계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다관절 내시경 로봇과 연성 로봇 플랫폼을 활용한 복강 내 수술 시도가 이뤄지고 있고, 일본에서는 위·대장 내시경용 보조 로봇 연구가 진행 중이다. 국내 기업이 상용 내시경과 호환되는 초소형 로봇팔과 봉합 시스템으로 미국 FDA 허가코드를 확보한 사례는 드물어, 엔도로보틱스의 행보가 향후 글로벌 경쟁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규제 측면에서는 로봇 내시경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와 하드웨어 수술 로봇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심사 기준 정교화가 요구된다. 미국 FDA는 수술 로봇 시스템에 대해 안전성, 유효성, 사용성 평가를 복합적으로 검토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고, 유럽 역시 의료기기 규정 강화에 따라 데이터 기반 성능 입증을 요구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로봇 수술기기와 인공지능 의료기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잇달아 제시하면서 임상시험 설계와 사후 모니터링 기준을 구체화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특히 AI가 절제 범위를 추천하거나 자동 제어에 관여하는 수준이 높아질수록,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책임 소재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피지컬 AI 내시경이 의료 인력 격차와 지역 간 의료 접근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소수 대형 병원에 집중돼 있던 고난도 ESD 기술을 표준화된 로봇 보조 프로토콜과 교육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기관으로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술자의 역할이 단순히 기계를 조작하는 수준을 넘어, AI와 로봇이 제안하는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언제 개입을 조정할지 판단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역량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의료계와 산업계는 내시경 수술로봇과 피지컬 AI 기술이 실제 임상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할지 주목하고 있다. 기술적 진보에 맞춰 규제와 보험 제도가 정비되고, 교육과 인증 체계가 뒤따라야 산업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과 의료 윤리, 산업과 제도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피지컬 AI 수술 시대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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