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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 경영전략 본격화”…HLB, 컨트롤타워 재편으로 글로벌 도전

송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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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B그룹이 바이오 사업 재도약을 위해 지배구조와 리더십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국내 항암제 개발사 가운데 글로벌 상용화를 노리는 대표 기업 중 하나인 만큼, 이번 인사는 PIPE 투자 유치와 파이프라인 글로벌 라이선스 아웃, 임상 전략 조정 등 장기 과제에 힘을 싣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그룹 회장이 현업 경영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 역할에 집중하는 구조가, 최근 바이오 시장 변동성과 규제 환경 변화 속에서 전략과 실행을 분리하려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보고 있다.

 

HLB그룹은 2일 2026년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진양곤 회장이 HLB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그룹 이사회 의장 역할에 전념한다고 밝혔다. 그룹은 이번 인사의 핵심 키워드를 전략적 집중과 신규 성장 기반 구축으로 제시하며, 사실상 그룹 컨트롤타워 재편과 세대교체를 동시에 선언했다.

진 의장은 앞으로 그룹 차원의 중장기 성장 로드맵 설계와 글로벌 전략 실행을 직접 총괄한다. 핵심 파이프라인의 임상 개발 경로, 파트너링과 기술수출 구조, 미국과 유럽 중심의 상업화 전략까지 이사회 차원에서 조율하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회사 측은 진 의장이 미래 성장동력 확보, 계열사 간 시너지 극대화,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에 경영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진 의장이 2017년부터 이어온 주주 간담회 방식의 소통도 그룹 전반으로 확대된다. 상장 계열사 주주와의 직접 소통 채널을 그룹 의장 직속으로 통합해, 연구개발 진행 상황과 규제 이슈, 자금 조달 전략 등을 보다 일관된 메시지로 시장에 전달하겠다는 의도다. 바이오 기업의 경우 임상 데이터와 규제 리스크에 따른 주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소통에 나서는 구조가 신뢰도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진 의장 직속 기구인 현장지원본부도 전략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됐다. 사실상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온 이 조직에서 기획인사부문을 전략기획부문으로 확대하고, 산하에 미래전략팀을 신설했다. 파이프라인 포트폴리오 재조정, 신규 적응증 탐색, 기술 도입과 인수합병 검토 등 중장기 성장 전략을 사전에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바이오 산업 특성상 임상 단계별 의사결정과 자금 배분이 수년 단위로 이어지는 만큼, 전략 전담 조직의 위상 강화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주목된다.

 

경영 일선에서는 단독 대표 체제를 통해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뤄졌다. HLB 대표이사 사장에는 김홍철 HLB이노베이션 대표이사가 선임돼, HLB는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된다. 김홍철 대표는 2023년 인수한 HLB이노베이션의 초대 대표로, 인수 이후 통합 작업과 연구개발 파이프라인 정비를 주도해 왔다. 그룹은 핵심 계열사 대표에 인수합병과 신사업 경험을 가진 인물을 배치해, 전략기획부문과의 연계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HLB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사장에는 윤종선 HLB사이언스 대표이사가 새로 선임됐다. 연구개발 중심 자회사에 임상과 사업 개발 양쪽을 이해하는 인사를 투입해, 후보물질 발굴부터 상업화 전 단계까지 수직 계열화 구조를 정교하게 다듬으려는 행보로 읽힌다. HLB사이언스는 그룹 내에서 초기 연구와 후보물질 검증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점에서, 양사 간 시너지를 강화할 여지가 크다는 관측도 있다.

 

HLB생명과학의 변화도 눈에 띈다. HLB생명과학 대표이사이자 그룹 수석부회장인 남상우 부회장은 고문으로 위촉돼, 조직의 세대교체와 역할 재정립 방향을 분명히 했다. 그룹은 상징성을 가진 기존 경영진을 자문 역할로 전환하면서, 현장의 의사결정은 젊은 리더들에게 일임하는 이원 구조를 택했다.

 

HLB생명과학의 신규 대표이사에는 백윤기 HLB 대표이사가 선임돼 단독 대표 체제가 구축됐다. 그룹 핵심사 대표가 또 다른 주력 계열사를 맡게 되면서, 연구개발과 사업화 전략을 통합 관리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특히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 등 주요 파이프라인에 대한 임상 우선순위 설정과 자금 배분이 신속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회사는 의사결정 속도와 성과 중심 책임경영 강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세부 계열사에서도 세대교체와 책임 범위 확대가 동시에 진행됐다. HLB생명과학 자회사 HLB셀은 그룹 현장지원본부 바이오링크팀 이지환 이사가 상무로 승진하며 대표이사로 발탁됐다. 그룹은 이 인사를 세대교체를 통한 조직 활력 제고와 미래 성장 기반 강화를 위한 전략적 조치로 설명했다. HLB셀은 세포치료 등 고난도 바이오 기술을 다루는 만큼, 본부 실무를 경험한 인사가 대표를 맡으면서 현장과 전략의 간극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또한 김도연 HLB제넥스 대표이사는 자회사 HLB뉴로토브 대표이사를 겸직하게 됐고, 장인근 HLB파나진 대표이사는 자회사 바이오스퀘어 대표이사를 함께 맡는다. 계열사 대표가 자회사까지 아우르는 겸직 구조는 초기 단계 파이프라인의 사업성 검증과 자원 배분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편으로는 특정 인물에 권한과 책임이 집중되는 만큼, 리스크 관리와 견제 장치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는 과제도 남는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이번 HLB그룹 인사가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전반적인 지배구조 변화 흐름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임상 실패와 자금 조달 어려움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기업이 늘고, 동시에 해외 기술수출과 공동개발을 확대하는 가운데, 지배구조와 전략 기능을 분리해 장기 방향성을 잡는 시도가 뚜렷해지고 있어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와 최고재무책임자, 최고의료책임자 등 전문 경영진 체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어, HLB의 선택도 이 같은 추세에 대응한 조정으로 볼 여지가 있다.

 

향후 관건은 새 리더십 구조가 실제 임상 개발 속도와 글로벌 파트너십 체결 등 가시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여부다. 기술 가치 평가와 규제 대응, 자금 조달이 서로 엮여 있는 바이오 산업 특성상, 전략과 실행의 정렬 여부가 기업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이번 HLB그룹의 컨트롤타워 재편이 국내 바이오 시장 전반의 지배구조 재정비 흐름을 촉발할지, 그리고 글로벌 무대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송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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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b#진양곤#hlb생명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