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전담재판부·재판소원 연내 처리"…더불어민주당, 사법부 정면 압박 속 신중론도 분출
사법개혁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정국 한복판으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원행정처 폐지, 재판소원제 도입 등 강도 높은 개혁 방안을 연내 처리 목표로 제시하자, 사법부와의 충돌 가능성과 함께 당내 신중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이해와 계엄·탄핵 재판에 대한 불신이 복합적으로 얽힌 형국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정 대표는 "조희대 사법부는 국민 신뢰를 회복할 길을 스스로 져버렸고, 자초한 사법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내란전담재판부를 포함해 대법관 증원 등을 담은 법원조직법, 재판소원 등의 사법개혁을 연내 처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다음 달 3일 계엄사태 발생 1년을 앞두고 계엄·탄핵 관련 재판과 이후 일련의 판결 과정에서 제기된 사법부 불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계엄 선포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관련 형사 재판이 이어지는 사이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다는 점에 주목한 셈이다. 당 안팎에서는 제도 개편을 밀어붙이면서 동시에 지지층 결집을 도모하려는 이중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미 사법행정 체계 전반에 손을 대는 구상을 공개하며 개혁 드라이브에 속도를 붙였다. 당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는 전날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비법관 중심의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 개혁안을 내놨다. 대법원장에 집중된 법관 인사, 사법행정, 예산 권한을 분산해 외부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동시에 법원 사건 배당 시스템에도 입법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지도부 차원에서 공식화하면서, 그동안 법원이 자체 규정에 따라 운영해온 전담 재판부 지정과 사건 배당에 정치권이 기준을 설정하는 구조를 상정하고 있다. 논의의 초점은 우선 1심이 아니라 항소심부터 내란 사건을 전담하게 할지 여부 등 도입 시기와 범위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더 나아가 민주당은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겨냥한 재판소원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재판소원제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기본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경우, 헌법재판소에 다시 심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사실상 4심제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로,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일부는 재판소원제 도입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법사위원장을 비롯해 박지원, 서영교, 김용민, 김기표, 이성윤 의원과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 무소속 최혁진 의원 등이 참여했다. 범여권 법사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제도 도입 명분 쌓기에 나선 셈이다.
여권 성향 방송에 출연한 민주당 인사들은 위헌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기류를 내비쳤다. 민주당 법사위원 장경태 의원은 YTN 라디오에서 "전담재판부 지정에 관한 절차만 입법 사항으로 준비하면 위헌성은 조각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조계에 민주당 성향의 인사가 많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아직 민주당은 소수라고 보고, 재판부 지정의 절차만 투명하게 공개하면 사법부를 충분히 존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공세 배경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혐의 사건을 비롯한 주요 사건 처리 지연에 대한 지지층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윤 전 대통령 내란 혐의 1심 선고가 지연되고, 관련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이 이어지면서 강경 지지층 사이에선 사법부가 정권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된 상태다.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윤 전 대통령 내란 혐의에 대한 지귀연 재판부의 결과가 실망스럽게 나오면 의원들에게 지지층 비난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점을 의식해 1심 선고 전인 지금부터 내란전담재판부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내란 사건을 담당하는 지귀연 재판부 선고에 앞서 제도 개편 카드로 압박 수위를 높여두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고강도 개혁안을 둘러싸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우려가 만만치 않다. 위헌 논란을 안은 채 사법체계를 급격히 바꾸는 과정에서 제도화는 지지부진한 반면 정치적 논란만 커질 경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역풍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 계산이 개입돼 있다. 사법부 독립 침해, 권력 분립 훼손 논쟁이 장기화되면 법원뿐 아니라 중도층 여론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재판소원제를 두고는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중론이 감지된다. 판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이 제도가 모든 나라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헌법소원 분야 역시 국가의 사법체계의 근간이기에 충분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소원제 도입이 헌법재판권과 대법원의 최종심 기능을 동시에 건드리는 사안인 만큼, 정파적 이해에 앞서 장기적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다.
법원행정처 폐지 방안도 사법행정 간소화 수준을 넘어 사법부 독립과 직결된 문제라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구상대로 사법행정위원회가 설치되면, 법원 외부 인사들이 위원회 다수를 차지한 채 법관 인사를 의결하도록 제도가 설계된다. 이에 대해 법원 안팎에서는 "법관 인사에 외부 입김이 작용하는 구조가 되면 사법권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관련해서도 도입 시점과 방식에 대한 이견이 존재한다. 특히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내란 사건 1심 판결 전에 별도 전담부 신설을 밀어붙이는 데 대해 실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당내에서 적지 않다. 제도 설계가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메시지에만 방점이 찍힐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원내 고위 관계자는 "내란전담재판부를 항소심 재판부부터 적용하려고 한다면 지금부터 이 얘길 꺼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행정처 폐지와 재판소원도 당론으로 신속히 추진하기 전에 신중한 숙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당 지도부가 연내 처리라는 속도전에 나서면서도, 실제 입법 절차에선 내부 이견 조율과 헌법적 쟁점 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사법개혁을 둘러싼 긴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내란전담재판부와 재판소원제 등 강경 구상을 당론으로 끌어올릴 경우, 사법부뿐 아니라 야권 전반과의 충돌이 격화할 수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련 법안 논의가 본궤도에 오를 경우, 위헌성 검증과 사법부 독립 보장 장치 마련을 둘러싼 공방도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계엄사태 1년을 계기로 촉발된 사법개혁 공방을 놓고 향후 정국 주도권 싸움을 이어갈 전망이다. 민주당은 사법개혁 입법을 통해 지지층 결집과 제도 개편을 동시에 꾀하겠다는 구상이고, 국회는 관련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에서 단계적으로 논의하며 정치적 파장과 헌법적 쟁점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