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소지 제로화하겠다”…민주당, 내란재판부법 손질·법왜곡죄는 내년으로
사법개혁 입법을 둘러싼 여야 충돌이 예고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조문을 대폭 손질해 연내 처리하고, 위헌 논란이 큰 법왜곡죄 신설법과 법원행정처 폐지법 등은 내년으로 넘기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여당에 합리적인 개혁입법을 주문한 이후 민주당이 내용과 속도를 동시에 조정하는 모습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10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최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논의를 소개하며 "대체로 이리 해야 문제가 없지 않겠냐는 데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당은 12월 임시국회에서 논란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법개혁 법안과 함께 조정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처리하되, 법왜곡죄 신설법과 법원행정처 폐지법 등은 내년 1월로 처리 시점을 미루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법왜곡죄는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에서 법관이나 검사가 고의로 법리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조작할 경우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에서도 사법독립을 훼손하고 재판과 수사에 대한 정치적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위헌 소지를 제기해 왔다. 민주당의 다른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들 법안을 언급하며 "이런 것들은 다 1월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반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이달 중순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위헌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핵심 조항을 대폭 수정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내란범의 사면 제한 규정을 삭제하고,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한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없애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다. 또 내란전담재판부 추천위원회 구성에서 법무부 장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추천권자에서 제외하고, 전담재판부는 2심에만 설치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당 관계자는 "기존 형사소송법, 사면법과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라며 "전체적으로 지도부 의견은 위헌 소지 최소화가 아니라 제로화해서 법안을 성안해 올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지금 논의된 내용이 확정된 건 아니다. 성안 작업을 더 해야 한다"고 말해 구체 조문 조정이 계속 진행 중임을 시사했다.
민주당의 전략 조정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도 깔려 있다. 이 대통령은 전날 정청래 대표, 김병기 원내대표를 만나 "개혁 입법은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합리적으로 처리되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안팎에서는 사법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위헌 논란을 해소하고 계엄 관련 재판 지연 우려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국민의힘이 민주당 주도의 사법개혁 법안을 악법으로 규정하며 전면적 필리버스터를 통해 저지하겠다고 예고한 점도 민주당의 계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필리버스터가 가동될 경우 연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는 안건 수가 제한되는 만큼 민주당이 사법개혁 가운데 우선순위를 조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민주당 측에서는 현실적으로 연내에 6개 정도의 법안만 처리 가능하다는 판단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일정을 감안해 11일부터 14일, 21일부터 24일까지 본회의를 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기간에 전날 필리버스터가 종료된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11일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하고, 대북 전단 등 살포 시 경찰관이 현장에서 직접 제지하거나 해산 조처를 할 수 있도록 한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도 함께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대북전단 살포금지법 부활이라고 비판하는 항공안전법 개정안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연내 처리를 강하게 추진하는 사안이다. 민주당은 북한을 향한 전단 살포가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며 입법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사법개혁과 관련해 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외에도 하급심 판결문 공개를 확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특례법안 등은 1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법관 증원, 법관평가제 도입,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의 다양화,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도 같은 회기 내에 처리할 우선 입법과제로 꼽힌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민생 법안과 개혁 법안을 섞어서 목록을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서 관련 논의를 계속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여야가 강하게 맞서는 쟁점 법안만 내세우기보다 물가·일자리 등 민생과 관련된 안건과 함께 패키지로 상정해 처리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다만 당내에서는 개혁법안 연내 처리가 무산될 경우 사법개혁 드라이브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1월 이후 국회가 내년 6월 지방선거 국면으로 빠르게 진입하면 정치적 갈등보다는 지역 민생과 경제 현안을 둘러싼 공약 경쟁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사법개혁 이슈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정치권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과 법왜곡죄 신설법 등을 둘러싼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은 위헌 소지를 제거한 사법개혁 입법으로 계엄 재판과 권위주의적 국가범죄의 책임을 분명히 하겠다는 입장이고, 국민의힘은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자 야당 탄압 도구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국회는 12월 임시국회 내 본회의를 통해 여야가 합의 가능한 법안부터 처리하고, 쟁점 법안은 내년 1월 이후 추가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