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C이중항체로 고형암 정조준"…에이비엘바이오, 미국 1상 도전
항체약물접합체와 이중항체를 결합한 차세대 항암 기술이 미국 임상에 도전한다. 고형암 환자를 겨냥한 국내 기술 기반 후보물질이 미국 식품의약국 심사를 통과할 경우, 국내 바이오 기업의 항체 신약 개발 전략에도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이비엘바이오가 개발한 이중항체 ADC 후보물질 ABL206을 미국에서 1상에 올리면서, 미국 법인 네옥바이오를 전면에 내세운 글로벌 개발 체계도 본격 가동되는 분위기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ADC 후보물질 ABL206에 대한 임상 1상 임상시험계획서를 19일 미국 식품의약국에 제출했다고 22일 밝혔다. ABL206은 회사가 자체 개발한 ROR1 및 B7H3 표적 이중항체에 항암 작용을 일으키는 토포이소머레이스 I 억제제를 결합한 구조의 약물이다. 비임상 단계에서 기존 단일항체 기반 ADC 대비 항종양 효능과 안전성 지표를 동시에 개선한 데이터를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이중항체는 서로 다른 두 표적을 동시에 인식하는 항체로,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거나 종양 미세환경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항체 플랫폼으로 꼽힌다. 여기에 세포독성 약물을 항체에 붙여 필요한 부위에만 고용량을 전달하는 항체약물접합체 기술을 더한 것이 이중항체 ADC다. 종양 표적에 결합한 뒤 세포 내부로 유입되면, 연결 고리에서 토포이소머레이스 I 억제제가 방출돼 DNA 복제 과정을 차단하고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메커니즘이다.
ABL206은 두 개의 종양 관련 표적 ROR1와 B7H3를 동시에 겨냥해, 단일 표적 ADC에서 한계로 지적된 표적 발현 이질성과 내성 문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비임상 실험에서 동일 약물을 단일항체에만 결합한 ADC 대비 종양 축소 효과를 끌어올리면서도, 비표적 조직 손상 지표를 낮추는 결과를 확인했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향후 1상에서는 안전성, 내약성, 초기 약동학과 함께 다양한 고형암에서의 약효 신호를 탐색하는 전략이 예상된다.
개발 구조도 분업 체계를 택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ABL206의 비임상 연구와 미국 임상시험계획서 제출까지 전 과정을 주도해 왔다.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1상부터는 미국에 설립한 이중항체 ADC 전문 회사 네옥바이오가 전반적인 임상 개발과 글로벌 전략 수립을 맡는다. 네옥바이오는 ABL206과 또 다른 이중항체 ADC 후보 ABL209의 전 세계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보유하고 있어, 미국 현지에서의 임상 운영과 파트너십 논의도 이 회사가 중심이 되는 구조다.
두 번째 파이프라인인 ABL209는 내년 초 미국 임상 1상 임상시험계획서 제출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네옥바이오는 내년 중 ABL206과 ABL209 두 파이프라인 모두에서 초기 인체 투여 임상을 개시하고, 안전성과 첫 약효 신호를 담은 초기 임상 데이터를 2027년에 공개한다는 시간표를 제시했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ADC와 이중항체를 핵심 항암 무기로 삼으며 대형 기술 이전과 인수합병을 잇달아 추진하는 상황에서, 초기 임상 결과는 기술 제휴와 공동개발 협상에도 직결될 수 있는 지점이다.
회사 측은 이중항체 ADC 기술을 시작점으로 차세대 ADC 플랫폼 확장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ABL206 임상 1상 임상시험계획서 제출을 계기로 에이비엘바이오와 네옥바이오의 이중항체 ADC 개발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이중항체 ADC뿐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약물을 하나의 항체에 실어 표적과 종양 환경을 입체적으로 공략하는 듀얼 페이로드 ADC 등 다양한 플랫폼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ADC와 이중항체 모두에서 기술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여러 단일항체 기반 ADC가 승인을 받아 고형암 치료에 사용되고 있으며, 이중항체 역시 혈액암을 중심으로 허가 제품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중항체와 ADC를 결합한 플랫폼은 아직 상용 제품이 많지 않은 초기 단계여서, 임상 결과에 따라 기술적 우위와 라이선스 아웃 협상력이 크게 갈릴 수 있는 영역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에이비엘바이오와 네옥바이오의 이번 임상 진입이 국내 항체 신약 개발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 전략에도 참고 사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현지 법인을 중심으로 임상과 사업화를 추진하고, 국내에서는 플랫폼 고도화와 새로운 후보물질 발굴에 집중하는 역할 분담 모델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항암 ADC 특성상 독성 관리와 용량 설정이 까다롭고, 2상과 3상에서 대규모 환자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 만큼 장기적인 자본 조달과 파트너십 전략이 병행돼야 할 과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에이비엘바이오와 네옥바이오의 첫 이중항체 ADC 임상 프로그램이 어떤 초기 데이터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국내 기술 기반 항체 신약의 글로벌 신뢰도와 후속 투자 흐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