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희토류·칩 없으면 생산 불가”…인도, 中 의존 줄이고 공급망 주도권 노린다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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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28일, 인도(New Delhi, India) 정부가 전략 광물인 희토류 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희토류 공급의 약 90%를 장악한 중국(China)의 수출 제한 조치 이후 공급망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인도가 자체 생산능력 확대와 중국 의존 축소를 동시에 추진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이번 결정은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방위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 구도 속에서 인도의 전략적 위상 변화를 예고한다.

 

현지시각 기준 28일 오전 인도 정부는 각료회의를 열고 향후 7년에 걸쳐 총 728억루피, 약 1조2천억원 규모의 희토류 산업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이 가운데 645억루피(약 1조1천억원)를 희토류 관련 제품 판매 인센티브로 배정하고, 75억루피(약 1천200억원)를 생산시설 설립 보조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인도 정부는 이번 프로그램이 국가 차원에서 처음 도입되는 희토류 산업 전용 지원책이라고 강조하면서, 연간 6천t 수준의 희토류 자석 생산체제 구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인도, 희토류 생산능력 확대에 1조2천억원 인센티브…연 6천t 자석 생산 목표
인도, 희토류 생산능력 확대에 1조2천억원 인센티브…연 6천t 자석 생산 목표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 풍력발전기, 스마트폰, 정밀무기 등 첨단 제조업 전반에 필수적인 소재로, 공급 안정성이 곧 산업경쟁력과 직결되는 자원으로 꼽힌다. 인도 정부는 당초 약 2억9천만달러(약 4천300억원) 규모의 인센티브 도입을 검토해왔으나, 중국발 공급 리스크가 본격화한 이후 지원 규모를 3배 가까이 늘린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통해 탐사·정제·자석 제조로 이어지는 밸류 체인 전반에 민간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조치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정책 변화와 맞물려 있다.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약 90%를 차지하는 중국은 미국(USA)과의 무역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지난 4월 일부 희토류 품목에 대한 수출을 제한했다. 특히 전기차와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주요국의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나온 조정이라, 글로벌 자동차 업계와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공급 차질과 가격 변동성 확대에 대한 우려를 키워왔다. 인도는 현재 국내 희토류 수요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수요가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자국 정부 추산을 AFP통신이 전했다.

 

아슈위니 바이슈노 인도 정보통신부 장관은 정부 회의 후 이번 프로그램이 국가 전략 차원의 산업정책 전환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은 인도를 위한 하나의 큰 전략적 승리가 될 것”이라며 “희토류와 반도체 칩이 없으면 어떤 제품이든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희토류를 반도체와 동급의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며, 생산국이 곧 공급망 주도국이 되는 구조를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결정에 대해 인도 산업계도 환영 입장을 내놓았다. 인도자동차부품제조업협회(ACMA)는 AFP에 보낸 입장문에서 해당 프로그램이 인도 자동차 부품 공급망의 장기적인 회복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비크람파티 싱하니아 ACMA 회장은 성명을 통해 “이 프로그램으로 첨단 재료에 대한 투자가 장려되고, 전기차 및 재생에너지를 위한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인도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 제조업계는 이번 지원을 계기로 전기차 구동계와 고성능 모터, 풍력발전 설비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 대한 국내 투자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인도의 행보는 탈세계화와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 등장한 새로운 변수로 받아들여진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미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반도체와 배터리, 희토류 분야에서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 정책을 추진해왔다. 중국의 수출 제한 이후 호주(Australia), 캐나다(Canada), 일본(Japan) 등이 희토류 개발과 정제 능력 강화에 나선 가운데, 인도까지 대규모 인센티브를 발표하면서 공급망 다변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주요 외신들은 인도가 풍부한 광물 잠재력과 성장하는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새로운 희토류 가공 및 자석 제조 허브로 부상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의 이번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생산능력 확대로 이어질 경우, 중국 주도의 희토류 시장 구조에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탐사에서 정제, 환경 규제 준수, 고순도 자석 제조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에는 높은 기술 장벽과 초기 투자 비용이 필요해, 단기간 내 중국의 우위를 흔들기는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도 지적된다. 그럼에도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방산 수요가 동시다발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인도와 같은 대형 신흥국이 생산 거점으로 나서면 가격 안정과 공급 리스크 완화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인도 정부가 희토류 산업과 반도체, 배터리 등 다른 전략 분야를 어떻게 연계해 나갈지에 따라 인도의 글로벌 공급망 내 위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국제사회는 인도가 발표한 인센티브의 구체적 집행 과정과 민간 투자 속도, 그리고 실제 생산 확대 성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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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정부#중국#희토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