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투자 기업 불이익 막겠다”…정부, 대규모 출장 비자 개편 논의 착수
미국의 불법 체류자 대규모 단속 여파로 300명 넘는 한국인 근로자가 구금된 가운데, 정부와 주요 대미 투자기업 간의 긴급 간담회가 열리며 불거진 비자 제도 개선 문제가 정국의 새로운 갈등 축으로 떠올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등 정부 부처가 미국에 진출한 현대차그룹, LG에너지솔루션 등 핵심 기업들과 함께 현장 애로를 점검하며 대응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는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 주재로 한국경제인협회와 대미 투자기업 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회의에는 현대차그룹,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HD현대, 환화솔루션, LS 등 미국에 활발히 투자 중인 주요 기업들이 대거 참석했다. 산업부는 각 사의 현장 운영과 인력 운용 실태를 확인하는 한편, 미국 출장 및 주재 인력을 위한 비자 확보 문제에 대한 기업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박종원 차관보는 간담회 직후 "기업들의 상황을 잘 들었고, 정부 생각도 공유했다"며 "우리 기업들이 부당하게 불이익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관계부처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해결책과 대안을 관계부처인 외교부와 긴밀히 협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에 파견나가는 인력의 비자체계 전반을 점검·개선하는 것이 단발성 조치에 그쳐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의 갑작스러운 단속과 관련, "안정적 대미 투자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비자 발급 제도를 개선하는 데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청이 이어졌다. 한 투자기업 관계자는 "단기 파견 기업인력을 지원할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 신설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또한 "유사 사례 방지 차원에서 대미 프로젝트 출장자 비자체계 점검 및 개선 방안을 산업부와 함께 추진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단기 파견에 필요한 비자 도입이나 제도 유연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 진출 근로자들의 구금과 관련해 재계에서는 그간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나 회의·계약 목적의 B1 비자에 의존하는 출장 관행에 대한 자성과 함께, 양국 간 비자 협의가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실제로 외교부는 최대 1만 5천 명 한국인 전문인력에게 취업비자(E-4) 신설을 추진했으나, 한국 요구안은 미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비자 문제는 이민 영역이 포함돼 있어 의회 입법 등 미국 측 절차가 핵심"이라며 "통상 현안만으로 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단속 책임이 투자진흥을 위한 비자 제도 미비와 정부의 미흡한 대응에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한미 간 조율이 복잡하게 얽힌 사안인 만큼 실질적 진전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야 협력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주요 투자기업들의 요구사항을 수렴해 미국 측과 긴밀히 논의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