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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AI 행정망까지 확장…정부, 공통 기반으로 업무 효율 높인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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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주도해 온 인공지능 기술이 정부 행정망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범정부 AI 공통 기반 서비스를 열면서, 그동안 보안 문제를 이유로 인터넷망에만 제한적으로 쓰이던 민간 대규모 언어 모델과 GPU 인프라가 내부 행정망과 연동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공공 부문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디지털 전환 시도가 본격 궤도에 오르는 셈이다.

 

두 부처는 24일 범정부 AI 공통 기반 서비스를 공식 발표하고, 이달 말부터 내년 2월 말까지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 플랫폼은 민간이 개발한 AI 모델과 학습 데이터, 연산을 담당하는 GPU 자원을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쓸 수 있도록 설계된 공용 인프라다. 각 부처와 지자체가 따로 AI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인프라를 중복 투자하지 않고도, 공통 플랫폼 위에서 행정 업무에 AI 기능을 얹을 수 있도록 한 구조다.

핵심은 외부 상용 AI를 행정망 안으로 끌어들이면서도, 민감한 내부 데이터를 외부로 내보내지 않는 보안 아키텍처다. 현재 민간 AI 서비스는 대부분 인터넷망에서만 접근이 가능해, 내부 행정 시스템과 분리된 상태로 존재해 왔다. 때문에 공무원이 실제 문서나 민원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도움을 받기가 어렵고, 입력된 행정 정보가 외부 AI 사업자의 서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정부는 이번 공통 기반에 망 분리, 데이터 비식별화와 같은 안전장치를 결합해, 행정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 범위에서 AI 추론을 활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인프라는 단순 API 연계가 아닌 통합 업무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점이 특징이다. 정부는 범정부 AI 공통 기반 위에서 지능형 업무관리 플랫폼 시범 서비스를 함께 추진한다. 문서 초안 자동 작성과 보고서 요약, 맞춤형 편집과 교정 같은 기능을 통해 반복적 행정 문서 작업을 AI가 먼저 수행하고, 공무원은 정책 기획과 현장 대응 등 창의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이에 더해 인수인계 과정에서 업무 히스토리와 관련 문서를 AI가 체계적으로 정리해 제시하는 기능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국민 서비스 측면의 변화도 예고돼 있다. 정부는 공통 기반을 활용해 다음 달 정부24 플러스 지능 검색 서비스를 도입한다. 복잡한 제도 용어나 행정 절차를 정확히 알지 못해도, 주민이 자연어로 질문을 입력하면 관련 혜택과 서비스를 찾아주는 검색형 상담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단순 키워드 검색을 넘어, 문맥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는 민원 창구와 신청 절차를 안내하는 방향으로 고도화할 수 있어, 민원인의 행정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공공 영역에서의 AI 실사용을 넓히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본다. 이미 민간 기업들은 문서 자동화와 고객 상담 챗봇, 코드 생성 등 사내 업무에 대형 언어 모델을 적극 도입하며 생산성 개선 효과를 내고 있다. 반면 공공 부문은 망 분리와 개인정보 보호 규제에 막혀 상용 AI 도입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범정부 AI 공통 기반은 이러한 제약을 완화하면서도, 통합 보안·통제 체계를 갖춘 공용 플랫폼으로 구축해 위험을 통제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해외에서도 공공 행정에 AI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유럽은 EU 차원에서 공공기관의 AI 활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고, 미국과 싱가포르는 행정 문서 처리와 민원 응대를 위한 대화형 AI 도입을 시험하고 있다. 다만 각국 모두 개인정보 보호와 알고리즘 투명성, 책임 소재를 둘러싼 규범을 병행 정비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행정 AI가 잘못된 답변을 제공했을 때의 책임 귀속, 차별적 편향이 포함될 가능성 등도 공통된 고민거리다.

 

국내에서도 행정 데이터의 민감성과 공공 서비스의 특수성을 고려한 별도의 가이드라인 정비가 불가피해 보인다. 행정망에 연결되는 AI 서비스는 민간 서비스와 달리, 정보보호 인증과 안전성 검증을 보다 강화된 기준으로 거쳐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정부가 내년 2월까지 시범 운용 기간을 두고 AI 서비스 기능과 품질을 검증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실제 행정 업무에 배치되기 전에, 거짓 정보 생성 빈도와 보안 취약점을 면밀히 점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범정부 AI 공통 기반이 공공 부문 디지털 전환의 기반 인프라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제도와 조직 문화 변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성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공무원의 AI 활용 역량 교육, 데이터 표준화와 품질 관리, AI가 도입된 이후의 업무 재설계 등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번 서비스를 통해 공공 부문의 일하는 방식 혁신과 정부 운영 효율성 제고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범정부 AI 공통 기반이 실제 행정 현장과 대국민 서비스에 얼마나 빠르고 안전하게 안착할지, 그리고 이를 계기로 공공 AI 사업과 데이터 인프라 시장이 어느 정도까지 확장될지를 주목하고 있다. 기술과 보안, 효율성과 책임 사이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공공 AI 도입의 성패를 가를 핵심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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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정부ai공통기반#행정안전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