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선수사 후조치 원칙 지켜보겠다"…민주당, 통일교 금품 의혹 속 개혁동력 약화 우려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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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을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정면 충돌했다. 통일교와 여야 정치권의 연결고리가 연이어 불거지면서 내년 지방선거와 이재명 정부 국정 운영 구도에 미묘한 파장이 예견되고 있다.

 

11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은 특검 수사 과정에서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과 임종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교와 국민의힘 관계를 둘러싼 정교유착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권 유력 인사 실명까지 거론되며 파문이 커지는 양상이다.

당사자들은 즉각 의혹을 부인했다. 전재수 장관은 이날 "불법 금품수수가 없었다"며 장관직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3선 현역 의원이자 당내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인사로, 내년 부산시장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돼온 만큼 파장이 더해진 모양새다.

 

임종성 전 의원도 연합뉴스에 "윤영호 전 본부장을 단독으로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언론 보도로 제기된 의혹과 관련해 "금품 수수 보도는 허위"라고 밝혔고,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역시 "2022년 접촉 후 어떠한 교류도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공식적으로는 수사 절차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신중한 대응 기조를 택했다.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재수 장관의 사의 표명과 관련해 "대통령이 엄정 수사를 지시했고, 특검도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기에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수사를 통해 진실이 드러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MBC 라디오에서 "설만 나온 상황에서 본인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논평하기 이르다"며 "윤리감찰단 조사 지시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이른바 선수사 후조치 원칙을 앞세워 성급한 정치적 판단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여권 내 유력 인사들 이름이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과 함께 거론되면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전재수 장관이 부산의 유일한 민주당 현역 의원이자 차기 부산시장 잠룡으로 분류돼온 점, 임종성 전 의원이 한때 이재명 대통령 측근 그룹인 이른바 7인회 소속으로 불렸던 점이 맞물리며 여파가 커지는 분위기다.

 

당 일각에서는 친명계 인사가 연루됐다는 의혹만으로도 이재명 정부의 국정 장악력과 개혁 과제 추진 동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통일교와 국민의힘 간 정교유착 논란은 그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사태 문제와 함께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압박하는 주요 소재로 활용돼 왔다. 그런데 통일교 사건에 여권 인사들까지 묶이는 구도가 형성되면서 국민의힘에 역공의 빌미를 제공하고, 국정 주도권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 상황이다.

 

수사 절차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특검이 여권 인사 연루 의혹 부분을 직접 수사하지 않고 경찰에 이첩한 것을 두고, 수사 공정성과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의 조짐이 감지된다. 민주당이 특검 수사와 내란 청산 프레임을 앞세워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온 만큼, 자칫 역풍 속에 개혁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교차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통일교 금품거래 의혹 대상자 명단에 친명계 인사들이 포함됐다는 점을 부각하며 이재명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파장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부산시장 선거를 포함한 영남권 선거 지형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부산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과거에도 부산시장 선거에서 흐름을 빼앗기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며 "영남권이 통째로 어려워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토로했다. 전재수 장관이 부산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돼온 만큼, 의혹이 장기화할 경우 민주당의 영남권 전략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통일교 의혹을 포함한 당 안팎 현안을 논의했지만, 별다른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한 당 관계자는 "수사 결과가 나와야 논란이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뚜렷한 정치적 돌파구를 찾기보다는, 수사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역력하다.

 

다만 지도부 일각에서는 이번 의혹이 이재명 정부 출범 이전에 제기된 사안인 만큼, 정권 차원의 책임 문제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관련 의혹은) 지금 정권 때의 일이 아니고, 이미 이재명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강조했다.

 

수사 방식에 대한 대응 전략을 놓고도 당내 의견이 엇갈린다. 국민의힘이 2차 특검을 요구하는 가운데, 민주당 내부에서 특검 검토 가능성을 열어두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친명계 핵심인 김영진 의원은 SBS 라디오에서 "국가수사본부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필요성 여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특검을 검토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라며 "정치적 공격의 도구로 삼지 말고 객관적 사실을 밝혀내는 차원에서 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취재진에게 "2차 특검에 대해선 좀 더 논의해보자고 비공개 최고위에서 얘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특검 수용 여부가 향후 여야 공방의 새로운 분수령이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국회와 정치권은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의 수사 경과에 따라 내란 청산 논의, 정교유착 프레임, 지방선거 공천 구도까지 복합적인 재편을 맞이할 수 있다. 민주당은 당분간 경찰 수사와 특검 논의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 수위를 조절할 계획이며, 국민의힘도 통일교 의혹을 고리로 여권 압박을 강화할 전망이다.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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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통일교#전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