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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불법촬영, 플랫폼 책임논쟁…미국 배달앱 사건이 던진 경고음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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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공유 플랫폼과 배달 애플리케이션 확산이 일상의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성범죄와 개인정보 침해를 양산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 업스테이트 지역에서 여성 배달원이 술에 취해 반나체로 쓰러져 있던 남성 고객을 촬영해 틱톡에 게시한 사건은, 개인의 일상 공간을 매개로 한 플랫폼 기반 감시와 불법촬영 문제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이번 사례는 불법 촬영물 유포에 대한 형사 책임뿐 아니라 배달앱과 SNS 사업자의 관리 의무, 데이터 윤리 기준 설정이 어디까지 요구되는지에 대한 논쟁을 예고하는 신호로 읽힌다.

 

뉴욕포스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배달원 올리비아 헨더슨은 지난달 틱톡 계정에 남성 고객의 바지와 속옷이 발목까지 내려간 모습이 포함된 영상을 여러 차례 게시해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일으켰다. 그는 영상과 게시글을 통해 “배달 중 성폭력 상황을 마주했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피해를 호소했다. 그러나 경찰이 현관 초인종 카메라와 주변 정황 영상을 확보해 수사한 결과, 남성은 과도한 음주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헨더슨이 스스로 집 안으로 들어가 촬영한 정황이 드러났다.

수사당국은 남성이 배달원을 유인하거나 노출 장면 촬영을 유도한 정황이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오히려 배달원이 의식이 없는 상태의 고객을 촬영해 SNS에 무단 공개했고, 이후 이를 성폭력 피해 사례로 포장해 여론전을 벌였다고 보고 있다. 미국 여러 주에서 불법 촬영과 관련한 형사 처벌 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헨더슨은 2급 불법 촬영과 1급 불법 촬영물 유포 등 중범죄 2건으로 기소됐다. 현지 형법 체계상 유죄가 확정될 경우 최대 8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사안으로 분류된다.

 

이번 사건은 플랫폼 노동과 데이터 유통 구조가 맞물리며 발생하는 새로운 디지털 리스크를 보여준다. 배달원이 고객의 집 안 구조와 생활환경을 직접 목격하는 상황에서, 스마트폰 카메라와 SNS는 사실상 상시 기록 장비이자 유포 채널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틱톡과 같은 숏폼 동영상 플랫폼은 알고리즘 기반 추천 구조를 통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만큼, 사적 공간에서 촬영된 영상이 동의 없이 공개될 경우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

 

배달 플랫폼 도어대시는 사건이 논란이 된 직후 헨더슨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헨더슨은 자신의 계정이 “아무 이유 없이 정지됐다”고 반발했지만, 회사 측은 고객의 집 내부와 신원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한 행위가 명백한 정책 위반이라고 밝혔다. 도어대시는 조사 기간 동안 배달원과 고객 계정을 모두 비활성화한다고 설명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개별 배달원이 수행하는 오프라인 행위를 실시간으로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계정 정지와 재발 방지 지침 강화를 통해 관리 책임을 강조하는 양상이다.

 

해외 빅테크 기업들은 자사 서비스가 디지털 성범죄나 사생활 침해에 사용되지 않도록 콘텐츠 검열과 신고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틱톡은 인공지능 기반 자동 감지 시스템과 이용자 신고를 결합해 성적 노출 영상과 비동의 촬영물을 차단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게시 이후 빠르게 확산된 뒤 삭제되는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에 한계가 반복되고 있다. 메타, 유튜브 역시 유사한 자동 검열 기술과 내부 심사 인력을 운영 중이지만, 숏폼 중심의 소비 구조에서 모든 위반 콘텐츠를 선제적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윤리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플랫폼 기업이 약관과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에 명시한 추상적 원칙을 실제 운영 단계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고객의 집 내부는 고도의 사적 공간이지만, 배달 서비스와 스마트홈 기기가 결합된 환경에서는 초인종 카메라, 실내 CCTV, 배달원의 스마트폰 촬영이 얽히며 다층적 데이터가 생성된다. 데이터가 생성되는 지점마다 동의의 범위와 활용 한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국가별 법제와 기업 정책 간 경계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불법촬영과 허위 성폭력 주장 사례가 늘어날 경우, 미국뿐 아니라 각국에서 관련 법률 정비 논의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본다. 일부 국가는 디지털 성범죄에 특화된 별도 처벌 규정을 마련하고 플랫폼 사업자에게 삭제 의무와 신고 대응 시간 제한을 부과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디지털서비스법을 통해 불법 콘텐츠 확산을 막기 위한 플랫폼 의무를 구체화했고, 한국 역시 디지털 성범죄 정보에 대한 신속 삭제와 차단, 사업자 책임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히는 추세다.

 

반면 플랫폼 노동자 인권 측면에서는 과도한 처벌과 일방적인 계정 정지가 노동자 보호 장치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배달원, 택시 기사, 가사 노동자 등 플랫폼 기반 종사자들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범죄 상황이나 안전 위협에 노출될 수 있어, 현장을 기록하고 신고할 권리 역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불법촬영과 정당한 증거 확보 행위를 명확히 구분하는 가이드라인과 교육 프로그램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헨더슨은 체포 뒤 일시 석방된 상태이며, 다음 재판은 12월 4일로 예정돼 있다. 수사당국은 영상 속 남성이 현재 경찰과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한 일상의 기록과 공유가 보편화되면서, 어디까지가 공익 제보이고 어디부터가 사생활 침해와 디지털 성범죄인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SNS와 배달앱을 포함한 모든 플랫폼 서비스가 데이터 윤리와 개인정보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 서비스 설계로 전환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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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도어대시#올리비아헨더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