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러시아산 원유 수입 전면 중단”…인도 릴라이언스, EU 제재 선제 이행에 미·인도 갈등 변수로 부상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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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1월 20일, 인도(India) 서부에 정유시설을 둔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스(Reliance Industries·RIL)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인도 최대 민간 정유사이자 최대 연료 수출업체인 RIL의 조치는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원유제품 수입 제한을 앞둔 선제 대응으로, 러시아 에너지 수익 차단과 미·인도 무역 갈등 구도에 직접적인 변수를 던지고 있다.

 

RIL은 11월 21일 성명을 통해 20일 자로 러시아에서 들여오던 원유 수입을 모두 멈췄다고 밝혔다. 이어 12월 1일부터는 수출용 연료를 포함해 자사가 수출하는 모든 석유제품의 원료를 러시아 이외 지역에서만 조달하겠다고 천명했다. 현지 언론 인디언 익스프레스(Indian Express)는 인도 주요 정유사 가운데 EU 제재를 이유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공식 중단한 곳은 RIL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스’ 러시아산 원유 수입 전면 중단…EU 제재 선제 이행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스’ 러시아산 원유 수입 전면 중단…EU 제재 선제 이행

RIL은 이번 결정이 EU의 제재 일정과 맞물려 있다고 설명했다. EU는 내년 1월 21일부터 러시아산 원유로 생산된 제3국산 석유제품의 역내 수입을 금지하기로 지난 7월 결정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EU 시장에 석유제품을 판매하려는 기업은 해당 제품이 러시아산 원유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RIL은 이 조치가 발효되기 전에 제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 도입 전면 중단을 선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에 세계 최대 규모 정유시설을 보유한 RIL은 2개 정유공장 가운데 한 곳을 수출용 연료 전담 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EU는 RIL이 생산한 연료 제품을 대량 수입하는 핵심 시장으로, RIL의 수출 전략에서 비중이 크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RIL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은 인도 전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의 절반가량을 차지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조치는 주변국뿐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에 대한 EU의 제재는 우크라이나(Ukraine) 전쟁을 지속하는 러시아의 에너지 수익을 줄이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돼 왔다. EU는 이미 러시아산 원유 직수입을 제한해 왔으며, 이제 러시아산 원유를 재료로 한 제3국 석유제품까지 차단 범위를 넓히면서 러시아의 우회 수출 통로 봉쇄에 나선 상태다. 인도와 같은 제3국 정유 허브는 그동안 러시아산 원유를 저가로 도입해 정제 후 서방으로 수출하는 구조를 통해 이익을 누려 왔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번 RIL의 결정은 미국(USA)의 대러시아 제재 강화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22일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Rosneft)와 민간 석유기업 루코일(Lukoil)을 제재 명단에 올리고, 이들 기업과의 거래를 11월 21일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하도록 요구했다. 미국 재무부의 지침에 따라 11월 21일 이후 이들 기업과 연관된 거래는 전면 제재 대상에 포함된다. 국제 금융·보험 네트워크에 깊이 연결된 대형 정유사가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기 어렵다는 점도 RIL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과 인도(India) 간 무역 갈등도 변수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행정부는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문제를 문제 삼으며 지난 8월 말부터 인도산 수출품에 추가관세 25%를 포함한 총 50%의 상호관세를 부과해 왔다. 양국은 농산물 교역과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도입 문제 등을 둘러싸고 여러 현안을 안은 채 무역협상을 이어가는 중이다. 시장에서는 RIL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이 향후 미·인도 무역협상에서 인도의 협상 카드로 작용해 긴장 완화에 기여할지 주시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가 협상 타결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FP통신은 인도 측이 이 발언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 정부가 직접 정치적 메시지를 내지 않는 대신, 최대 정유사의 결정이라는 형태로 국제 제재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제 여론은 RIL의 선택을 러시아 에너지 공급망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의미 있는 분기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RIL이 인도 전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의 절반가량을 차지해 온 만큼, 이번 결정이 실제로 유지될 경우 러시아의 아시아 수출 전략 조정과 가격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인도 내 다른 정유사들이 EU와 미국의 제재를 어떻게 반영할지에 따라 인도의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조정 폭도 달라질 전망이다.

 

앞으로 EU의 제재가 본격 시행되고 미국의 대러 제재도 전면 가동되면, 러시아산 원유를 둘러싼 글로벌 무역 루트는 추가 재편이 불가피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인도 정유사들의 움직임이 러시아산 원유의 최종 수요지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RIL의 선제 조치가 미·인도 무역협상과 러시아 에너지 수익 구조 모두에 중장기적 파장을 낳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국제사회는 이번 발표가 실제 수입·수출 통계로 어떻게 이어질지, 제재 이행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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