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찰 300명으로 국회 봉쇄는 코미디"…윤석열, 계엄 국회 통제 의도 부인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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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혐의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거세졌다. 비상계엄 하 국회의원 출입 통제와 정치인 체포조 운영 의혹을 놓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군·경 지휘부 핵심 인사들이 서로 다른 기억과 해석을 내놓으며 재판정이 긴장감에 휩싸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27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속행 공판을 열고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과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김봉식 전 청장은 작년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에 배치된 경찰이 국회의원 출입을 막았던 경위와 관련해 "당시 포고령을 따라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논란이 있었고, 경찰은 위에서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오면 우선 따르는 것이 조직의 일상화된 업무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그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못 들어오게 된 부분은 굉장히 후회되고 전적으로 제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에 대해 윤 전 대통령 측이 거듭 묻자 "포고령에 근거했다고 생각한다"며 "더 이상 답변을 드리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민들과 제가 오래 몸담았던 조직에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라며 "계엄이란 상황이 초유의 급박한 상황이다 보니 좀 더 사려 깊이 판단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많이 후회되고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현장에 투입된 경찰관들을 언급하면서는 "현장 출동한 직원들은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그런 직원들에게 법적인 제재가 가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윤 전 대통령은 직접 반대 신문에 나서 국회 봉쇄 의도는 없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많은 숫자의 군이 투입되는 계엄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어렵다"고 전제한 뒤 "그 경찰 인력으로 국회를 봉쇄한다는 건 코미디 같은 이야기 아니냐"고 했다. 경찰 300명 규모로 국회를 봉쇄할 수 없다는 논리로, 스스로 주장한 이른바 경고성 계엄 구상이 강제력 행사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또 김 전 청장에게 "김용현이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이 의원들 출입하는 건 막지 말라'고 말했는데 알고 있느냐"고 질의했으나, 김 전 청장은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국회 출입 통제가 청와대나 국방부의 명시적 지시와 무관한 현장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보다 앞서 진행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 대한 증인신문에서는 계엄 상황에서의 체포조 운영과 체포 대상자 명단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여 전 사령관은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당시 자신에게 제기된 정치인 체포조 운영 의혹과 관련해 "군인들은 체포, 검거, 공격해, 쳐부숴 같은 말은 입에 배어 있다"며 "저도 모르게 한 말이 있고, 저도 나중에 보니까 '이때 이런 말을 왜 썼지' 싶은 말도 있다"고 진술했다. 표현 습관 차원의 발언일 뿐 조직적인 체포조 운용 계획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이른바 체포 대상자 명단 관련 논쟁도 반복됐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여 전 사령관과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의 메모에 적힌 인물 이름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 사람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온 거면 명단이 같아야 하는데 여기저기 흘러 다니는 것을 종합하다 보니 다른 것 아니냐"고 물었다. 여 전 사령관은 "(명단은) 장관한테 들었다. 끄적끄적 썼고 김대우한테 불러줬고 김대우는 돌아가서 화이트보드에 적어놨다"고 설명했다.

 

위치 추적 지시 여부를 두고도 양측은 설전을 이어갔다. 특검은 앞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이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위치 추적은 영장 없이 안 된다. 대통령은 검찰총장까지 지낸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걸 시키고 여 전 사령관은 이런 걸 부탁한다는 게 연결이 안 되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영상 자료를 법정에 제시했다. 이날 재주신문에서 특검은 여 전 사령관에게 "지시 없이 이런 일을 했느냐"고 따져 물었고, 여 전 사령관은 "전 지시 받는 입장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답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오히려 체포 대상자에 대한 위치 파악 요청이 추적과는 다른 차원이라고 반박했다.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과 관련해 "위치 추적보다는 어디 있는지를 확인해달라고 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추적은 트래킹이라 불가능하고 정확히 '확인'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며 "이 사람들 어디 있을까를 물어봤다가 가장 자연스러운 말"이라고 말했다.

 

여 전 사령관은 계엄 선포 전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의 대화 정황도 털어놨다. 그는 작년 11월 9일 김 전 장관으로부터 몇몇 이름을 듣고 메모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냥 적고 끝난 것이다. 그게 제 마음속에 있었으면 왜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계엄 선포 이틀 전 상황을 언급하며 "김 전 장관이 비상계엄, 대권 등을 언급해 식탁 유리를 꽝 치면서까지 계엄은 불가능하다고 명백히 말씀드렸다"고 진술했다.

 

합동수사본부 인력 요청 논란에 대해서도 여 전 사령관은 해명에 나섰다. 그는 당시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인력 100명씩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엄청나게 당황해서 실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군인들은 연말쯤 되면 한해 훈련을 종합해서 작전계획을 새로 만드는데 내부적으로 합동수사본부를 만들려면 경찰 100명, 조사본부 100명 생각을 했었다"며 "막상 비상계엄이 걸리니 당황하고 혼란스러워서 생각도 못 하고 머릿속 말을 실수로 했다"고 부연했다.

 

여 전 사령관은 자신의 진술 태도를 의심하는 시선을 의식한 듯 "이 마당에 대통령님 편을 들 것 같나. 특검 편을 들 것 같나"라며 "천만에. 나는 첫째, 하나님 편이고 둘째, 국민들 편이고 셋째, 사랑하는 전우들 편"이라고 항변했다. 특정 정치 세력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법정 안팎의 긴장도 언급됐다. 지귀연 부장판사는 공판 시작에 앞서 지난 기일 법정 내 무단 촬영 사진을 둘러싼 방청객 간 시비를 언급하며 "탄원서를 제출한 분께 법정 질서를 유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이 "저 때문에 오신 분들한테 당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지 부장판사는 "피고인께서 그런 말씀 하시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제지했다.

 

재판부는 전날 공판준비기일에서 윤 전 대통령 사건을 다음 달 29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사건과 병합해 심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내년 1월 초 변론을 종결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계엄 선포와 국회 통제, 정치인 체포조 논란을 둘러싼 핵심 피고인·증인들의 법정 진술이 한꺼번에 교차 검증될 전망이다. 정치권은 향후 선고 결과에 따라 책임 소재 공방과 재발 방지 논의를 둘러싸고 다시 한 번 격렬한 충돌을 벌일 가능성이 크며, 국회는 관련 제도 정비 방안을 다음 회기에서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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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김봉식#여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