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출입은 유엔사 고유 권한"…유엔군사령부, DMZ법 추진에 공식 반대 성명
DMZ 출입 통제 권한을 둘러싸고 유엔군사령부와 한국 정부 사이 충돌이 본격화했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확대하자는 국회 입법 움직임에 대해 유엔군사령부가 정전협정을 앞세워 공개적으로 반대 성명을 내면서 법안 논의가 정치·외교 현안으로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유엔군사령부는 17일 홈페이지에 군사정전위원회 명의 성명을 게재하고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 구역 출입 통제 권한이 정전협정에 따라 전적으로 유엔군사령부에 있다고 재차 주장했다. 성명은 군사분계선 남쪽 DMZ 구역의 민사 행정 및 구제사업도 유엔군사령관 책임에 속한다고 못박았다.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 1조 9항을 근거로 제시했다. 성명에서 유엔군사령부는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 집행에 관계되는 인원과 군사정전위의 특정한 허가를 얻은 인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도 DMZ에 출입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군과 민간을 막론하고 DMZ 출입에는 유엔군사령부 승인 절차가 필수라는 해석이다.
또한 유엔군사령부는 "군사정전위는 DMZ 내 이동이 도발적으로 인식되거나 인원 및 방문객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도록, 확립된 절차에 따라 출입 요청을 면밀히 검토하고 승인 또는 거부 결정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안전과 긴장 관리 차원의 판단 권한이 군사정전위원회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부각한 대목이다.
유엔군사령부는 "유엔사는 궁극적으로 항구적인 평화조약이 체결되기를 기대하며 한반도의 정전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정전협정 준수와 현행 체제 유지를 평화 정착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셈이다.
유엔군사령부가 국내 입법 동향에 대해 성명까지 내며 제도권 논의에 직접 대응한 것은 이례적 행보다. 최근 법제처장을 상대로 한 면담에서 DMZ 출입 통제 권한이 출입 목적과 관계없이 정전협정상 유엔군사령부에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데 이어, 같은 취지를 문서로 재확인한 것이다.
쟁점의 중심에는 국회에 계류된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률이 놓여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강 의원과 한정애 의원은 비군사적이고 평화적인 목적에 한해 DMZ 출입 권한을 한국 정부가 행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DMZ법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관광, 연구, 환경 보전 등 민간 활동을 정부 승인 아래 허용하자는 방향이다.
현재 DMZ 출입은 정전협정을 근거로 유엔군사령부가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강 의원 등은 정전협정 서문이 협정을 "순전히 군사적인 성질에 속한다"고 규정한 점을 들어 민간의 비군사적 출입까지 유엔군사령부가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비군사 영역에서의 출입과 이용은 한국 정부의 주권적 권한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통일부도 국회 움직임에 힘을 실었다. 통일부는 DMZ법의 입법 취지에 동의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고 찬성 기조를 분명히 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최근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의 DMZ 출입 신청이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불허된 사실을 공개하며 논란에 불을 붙였다.
정동영 장관은 해당 사례를 언급하면서 이를 영토 주권 문제와 직접 연결했다. 그는 DMZ 출입 승인 권한을 둘러싼 현 체제를 문제 삼으며 DMZ법 추진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행정부 수장이 유엔군사령부의 출입 통제 관행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이에 맞서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 해석을 앞세워 DMZ법에 거듭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한국 정부와 국회가 비군사적 목적을 내세워 출입 권한을 행사할 경우 정전협정 체계와 상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배경으로 읽힌다. DMZ 내 군사적 긴장 관리와 안전 문제를 이유로 통제 권한의 분산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DMZ 출입 주도권을 둘러싼 논쟁은 향후 국방부와 외교부, 통일부를 아우르는 범정부 차원의 조율 과제로 번질 전망이다. 정전협정 체계 안에서 유엔군사령부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또 남북관계와 영토 주권을 고려한 한국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회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여야와 정부, 유엔군사령부 사이 정면 충돌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DMZ 평화 이용 확대를 내세운 입법이 남북관계, 한미동맹, 정전협정 관리 체계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에 대한 추가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국회는 향후 관련 상임위를 중심으로 DMZ법의 필요성과 정전협정과의 정합성을 놓고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유엔군사령부도 정전협정 유지라는 명분 아래 한국 정부와의 협의 채널을 가동하며 입장 조율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정치권은 DMZ 출입 통제 권한을 둘러싼 논쟁을 계기로 정전협정 체제와 영토 주권의 경계를 재점검하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