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백신에 AI 접목 논의…검역본부, 민관학 협의체 가동 속도 붙는다
동물백신 연구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가축질병과 인수공통감염병을 사전에 예측하고 맞춤형 백신을 설계하기 위한 데이터 기반 플랫폼 구축이 핵심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공동 협의체를 통해 중장기 전략 수립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의가 국가 방역체계와 백신 산업 구조를 함께 바꾸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민간기업과 학계가 참여하는 동물백신 연구 협의체 2차 회의를 10일 경북 김천 검역본부에서 열었다고 14일 밝혔다. 협의체는 2025년 5월 출범했으며, 수의과대학 교수진과 국내 주요 백신 제조·연구 기업이 참여해 현장 수요에 맞는 동물백신 연구 방향과 협력 체계를 논의해 왔다.

이번 회의에서는 검역본부가 국내외 백신 연구 유관기관의 연구 동향과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동물백신 연구 방향을 제시했다. 이어 신테카바이오 이호영 부장이 동물백신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적용하는 방안을 발표했고, 이를 토대로 AI 기반 백신 연구 전략과 지원 방향을 놓고 심층 토론이 진행됐다.
AI 접목 논의의 배경에는 동물질병의 특성이 자리한다. 다양한 동물종에서 광범위한 병원체가 발생하고, 바이러스와 세균의 변이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전통적인 실험 중심 방식만으로는 신속한 백신 개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반면 축적된 유전체 정보와 역학 데이터, 백신 반응 기록 등 디지털 데이터는 방대해, 이를 활용한 AI 예측 모델이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AI 기술을 활용하면 병원체 유전체 서열과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백신 표적 후보를 자동으로 선별하고, 면역반응을 시뮬레이션해 유효성을 사전에 예측하는 방식의 연구가 가능해진다. 기존에는 동물실험과 세포실험을 단계별로 거치며 후보를 추려야 했지만, AI를 활용하면 후보물질 탐색 시간이 단축되고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협의체 참석자들은 특히 국가재난형 가축질병과 인수공통감염병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연구 체계 전환에 방점을 찍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와 아프리카돼지열병처럼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유발하는 질병의 경우, 발병 이전 단계에서 변이 양상과 전파 경로를 데이터로 추적하고 AI로 백신 설계 방향을 제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유됐다.
연구 인프라 확충도 핵심 논의 대상이었다. 참석자들은 생물안전3등급 수준의 연구시설을 민간에 보다 폭넓게 개방하고, 고성능 정밀분석장비를 확충해 임상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고위험 병원체를 다루는 동물실험과 백신 효능 검증 단계에서 이러한 시설과 장비는 필수 요소로, 민간 기업이 초기 연구부터 임상 단계까지 끊김 없이 진행하기 위한 기반으로 꼽힌다.
정보 교류와 인력 네트워크를 위한 장치도 제안됐다. 학술토론회와 주제별 토론을 정례화해 최신 백신 기술과 글로벌 동향을 공유하고, AI·유전체·수의학을 아우르는 융합 전문가 풀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AI를 적용한 연구과제 기획 단계에서부터 자문단을 구성해 알고리즘 선택, 데이터 품질 관리, 윤리·규제 이슈를 선제적으로 점검할 필요성이 강조됐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을 활용한 인간용 백신 개발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유전체 분석 기업과 제약사가 협력해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후보를 모델링하고, 임상시험 설계를 최적화하는 시도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국내 동물백신 분야에서도 유사한 플랫폼을 구축할 경우, 방역 주권 확보와 함께 글로벌 수출용 백신 개발에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데이터 활용과 규제 정비는 숙제로 남아 있다. 동물질병 관련 유전체와 임상 데이터는 방역정책과 직결되는 만큼 공공성과 보안성이 중요하다. 동시에 AI 학습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셋을 어떻게 비식별화해 제공하고, 알고리즘의 예측 결과를 어떤 기준으로 검증해 인가할지에 대한 제도적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정록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은 AI 시대에 차세대 동물백신 연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하며, 협의체를 중심으로 민간과 학계가 적극적인 소통과 역할 분담을 통해 AI 기반 동물백신 개발과 상용화에 나서 줄 것을 당부했다. 산업계는 향후 협의체 논의가 실제 투자와 규제 개선으로 이어져, AI 기반 동물백신이 현장 방역 체계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