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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산업 국가로드맵 만든다"…과기정통부, 중장기 전략 확정 착수

정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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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팅과 양자센서, 양자암호통신으로 대표되는 양자과학기술이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정부가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중장기 로드맵을 법정계획 형태로 마련한다. 연구개발과 인력양성은 물론 클러스터 조성과 산업 생태계 구축까지 아우르는 상위 계획이라, 국내 양자 기술 투자 방향과 기업 진입 전략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적으로 미국과 유럽, 중국이 대규모 양자 이니셔티브를 전개 중인 상황에서, 한국이 어떤 수준의 속도와 우선순위를 설정하느냐가 향후 기술 격차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제1차 양자종합계획과 양자 클러스터 기본계획 공청회를 11월 25일 대전, 26일 서울에서 각각 개최한다고 밝혔다. 두 계획은 국내 양자과학기술과 양자산업 육성을 위한 대한민국의 중장기 정책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최상위 법정계획으로, 향후 세부 사업과 예산 편성의 기준이 되는 상위 구조로 작동할 전망이다.

양자종합계획은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 전략과 인력, 인프라 방향을 총괄하는 기술 중심 계획이고, 양자 클러스터 기본계획은 지역 거점별 양자 특화단지 조성과 기업 집적, 시험평가와 실증 기반 구축 등을 담는 산업 입지 전략에 가깝다. 특히 이번 계획은 양자컴퓨팅 하드웨어와 양자알고리즘 소프트웨어, 양자통신 인프라, 양자센서 응용 등 이질적인 분야를 통합해 하나의 생태계 관점에서 설계하는 것이 특징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4월부터 양자과학기술과 산업 분야 산학연 전문가 50여 명으로 구성된 종합계획 수립위원회와 40여 명이 참여하는 기본계획 수립위원회를 꾸려 총 40여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여기에는 양자정보 이론과 양자소자, 소재공정 연구진뿐 아니라 양자암호통신 장비 기업, 시스템 반도체와 클라우드 사업자, 지역 혁신기관 관계자 등이 참여해 연구개발 과제와 상용화 과제, 규제 개선 과제를 나눠 발굴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자과학기술의 기술 구조는 고도의 기초 물리와 공정기술이 결합된 형태다. 양자컴퓨터는 양자를 정보 단위로 사용하는 큐비트를 통해 병렬 계산을 수행하는데, 초전도, 이온트랩, 중성원자 등 플랫폼별로 장단점이 다르다. 양자센서는 양자상태의 민감한 변화를 이용해 기존 센서보다 수십 배 이상 정밀한 측정을 목표로 하고, 양자암호통신은 양자중첩과 측정 교란 특성을 활용해 도청을 원천적으로 탐지하는 방식이다. 국내 계획이 플랫폼 선택을 특정하지 않고 기술 다변화를 유지할지, 선택과 집중으로 전환할지가 이번 종합계획의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시장 측면에서 양자산업은 아직 초창기이나, 글로벌 컨설팅 업계는 2030년 전후로 양자컴퓨팅 서비스와 양자보안, 양자센싱을 합친 시장 규모가 수십조 원 수준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국내에서는 통신망 보안 강화를 위한 양자암호통신 장비와 금융, 국방 분야의 시범 적용이 먼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제약과 신소재, 물류 최적화 등 고난도 계산이 필요한 영역에서 양자컴퓨팅 활용 수요가 본격화되면, 클라우드 기반 양자 접근 서비스 모델이 중요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공청회에서는 과기정통부가 마련한 종합계획 안과 기본계획 안에 대한 세부 설명이 진행되고, 산학연 대표 전문가가 참여하는 패널 토론과 방청객 의견 청취, 질의응답이 이어질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특히 양자 클러스터 지정 기준과 지원 방식, 민간 투자와의 매칭 구조, 시험인증 인프라 구축 시점 등이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양자 기술 특성상 장기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 정부 예산과 기업 투자 사이의 역할 분담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논의도 불가피해 보인다.

 

글로벌 경쟁 구도는 이미 치열하다. 미국은 국가양자이니셔티브를 통해 연구 네트워크와 산업 생태계 지원을 병행하고 있고, 유럽연합도 유럽양자플래그십을 중심으로 국가별 역할 분담과 공동 투자를 진행 중이다. 중국은 양자통신 위성과 장거리 양자암호망 구축 등에서 선제적인 실증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양자종합계획이 이러한 해외 사례와 비교해 어느 수준의 재정 규모와 인력 수급 목표를 제시할지에 따라, 기술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실질적 전략인지 여부가 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자기술은 안보와 데이터 주권, 사이버 보안과 직결되는 분야라 규제와 표준, 윤리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 양자암호통신이 상용망에 들어갈 경우 기존 암호 인프라와의 연동, 국가 간 상호운용 표준, 안전성 검증 체계 등이 필요하다. 또 양자컴퓨팅 상용화가 가시화되면 기존 암호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비해, 양자내성암호 도입 시점과 전환 전략도 국가 차원에서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공청회에서 제시된 의견을 반영해 제1차 양자종합계획 안과 양자 클러스터 기본계획 안을 수정 보완한 뒤, 12월 중 양자전략위원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 확정할 계획이다. 업계와 연구계에서는 이번 계획이 일회성 선언에 그치지 않고 예산과 제도, 인력 정책으로 이어지는 실행력을 얼마나 담보하느냐에 따라 국내 양자산업의 성장 궤적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기술 속도 경쟁 못지않게, 산업 구조와 제도 정비를 병행하는 균형 잡힌 전략이 새로운 성장의 조건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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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정통부#양자종합계획#양자클러스터기본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