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자는 태도 안 된다"…국회, 해롤드 로저스 청문회 태도 놓고 정면 충돌
쿠팡 사태를 둘러싼 갈등과 국회의 청문 공세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의 발언과 태도를 두고 여야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위증 혐의 고발과 국정조사 추진 논의가 급속히 가열되고 있다.
31일 국회에서 이틀째로 열린 쿠팡 사태 2차 연석 청문회에서는 시작부터 로저스 대표의 전날 답변 태도가 도마에 올랐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로저스 대표가 한국 국회와 국민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연이어 사과를 요구했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질의 과정에서 로저스 대표가 책상을 치며 언성을 높인 장면을 거론했다. 정 의원은 어제 상황을 상기하며 "제가 질의할 때 큰소리로 흥분해 책상까지 쳤다"며 "너무나 황당하다. 안하무인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나오지 않아 할 수 없이 로저스 대표를 상대로 하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답변하고 한국 국회, 정부, 국민을 무시할 것이라면 한국에서 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로저스 대표의 발언 태도를 문제 삼았다. 그는 로저스 대표가 전날 정 의원에게 영어로 "그만합시다"라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증인으로서 해선 안 될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싸우자는 태도로 일관했기에 반드시 사과받고 시작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전날 청문회에서 로저스 대표는 영문 사과문에 쓰인 거짓을 뜻하는 표현에 대한 질문에 강한 어조로 맞섰다. 그는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성실하게 협력하고 있다"며 "현재 저희가 정부에 협력하지 않고 있다는 허위정보가 있다. 저희가 자의적으로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발언 도중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모습도 포착돼 논란이 커졌다. 이에 질의자였던 정 의원이 "됐다. 그만하라"며 답변을 끊자, 로저스 대표는 불쾌감을 드러내며 영어로 "그만합시다"라고 맞받았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로저스 대표의 위증 여부를 둘러싼 공방도 거세게 이어졌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범 킴을 지키고 미국만 신경 쓰겠다는 저 오만방자한 외국인을 즉시 위증 혐의로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민국 공권력을 능멸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며 국회 모욕 혐의 추가도 요구했다.
쟁점은 로저스 대표가 전날 개인정보 유출 용의자와의 접촉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그는 한국 정부, 특히 국가정보원 측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은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국정원은 "쿠팡 측에 어떠한 지시를 한 바 없다"고 밝히고, 로저스 대표의 발언을 위증으로 판단해 국회에 고발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청문회를 주재한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로저스 대표뿐 아니라 핵심 증인들에 대한 추가 조치 가능성을 언급했다. 최 위원장은 김범석 의장 등 주요 증인들이 끝내 출석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위증 고발에 더해 (조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핵심 증인 불출석 문제와 로저스 대표의 발언 논란을 함께 묶어 강도 높은 후속 대응을 예고한 셈이다.
국정조사 추진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쿠팡이 오늘 청문회가 끝나면 더는 논쟁이 안 될 것이라 착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비판하며 "국정조사 등을 통해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최민희 위원장은 "국정조사 요구서는 지금까지 75명 의원의 서명을 받았고 오늘 중으로 반드시 제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국정조사 카드가 공식 궤도에 오른 셈이다.
연이은 질타에 로저스 대표는 해명에 나섰다. 그는 "한국 국회와 본 위원회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제 답이 완벽히 통역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의도가 왜곡돼 전달됐다는 취지로 이해를 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청문회 분위기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로저스 대표가 의원 질의와 직접 관련이 적은 답변을 이어가자, 최 위원장과 위원들이 답변을 제지하는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로저스 대표는 이에 목소리를 높이며 "그러면 왜 저를 증인으로 채택하셨느냐. 답변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청문장 안팎에서는 로저스 대표의 태도가 국회 권위를 흔들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통역 및 절차 진행상의 긴장 관계가 얽히면서 분위기가 악화됐다는 진단도 나왔다.
쿠팡 사태와 관련해 국정원의 위증 고발 요청, 국회의 추가 고발 검토, 75명 의원이 서명한 국정조사 요구서 제출 예정 등이 맞물리면서 향후 파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국회는 로저스 대표의 위증 여부와 쿠팡 경영진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청문회와 국정조사 등 제도 권한을 동원해 진상 규명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