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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료기기 전주기 품질관리”…분당서울대병원, ISO 인증으로 신뢰 높인다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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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의 품질과 안전을 병원 단계에서부터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AI 기반 디지털 의료기기와 소프트웨어에 대해 국제표준을 충족하는 품질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공식 인증까지 받으면서다. 의료기관이 개발부터 제조, 임상, 인허가 지원까지 포괄하는 전주기 품질 체계를 의료 AI에 적용한 첫 사례로, 향후 고영향 인공지능 규제 시대에 맞춘 신뢰성 경쟁의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최근 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의료기기 및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ISO 13485 인증을 획득했다. 의료기관이 AI 의료기기 연구개발 전주기 설계와 개발, 제조, 품질관리 서비스까지를 아우르는 ISO 13485를 받은 것은 국내 최초다. 인증 심사는 국제 인증기관인 영국왕립표준협회 BSI가 수행했다.

ISO 13485는 의료기기 제조업체와 서비스 기관이 따라야 하는 국제 품질경영 표준이다. 제조설계와 개발 절차뿐 아니라 위험관리 프로세스 수립, 시정 및 예방 조치로 불리는 CAPA 시스템, 제품과 데이터 추적성 확보 수준 등을 세부적으로 평가한다. 소프트웨어형 의료기기인 SaMD도 이 규격의 관리 대상에 포함되며, 아키텍처 설계, 버전 관리, 변경 이력, 결함 대응 등 소프트웨어 라이프사이클 전 과정을 구조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이번 인증은 병원 내에서 개발되는 AI 의료기기에도 제조사 수준의 품질관리 체계를 그대로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순 연구코드를 넘어서, 실제 임상 현장에서 쓰이는 의료용 소프트웨어로 발전하기 위해 요구되는 설계 검증, 데이터 무결성, 성능시험, 위험관리 절차가 국제 기준에 맞춰 표준화됐다는 뜻이다.

 

ISO 13485는 유럽연합의 의료기기규정 MDR, 미국 식품의약국 FDA 품질관리시스템 QSR, 한국의 의료기기 품질관리 심사 GMP 등 각국 규제와 연계돼 있다. 한 번 체계를 갖추면 국내 인허가는 물론 해외 허가를 준비할 때도 중복 심사 부담을 줄일 수 있어 글로벌 진출 전략과 직결된다. AI 기반 영상진단 소프트웨어나 진단보조 알고리즘처럼 소프트웨어 단독 의료기기는 시장 진입 시 규제 문턱이 높아지고 있어, 이 같은 국제 인증 기반 품질 시스템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이번 인증으로 의료진이 국책과제 등에 참여해 개발한 AI 의료기기가 글로벌 표준에 맞춰 체계적인 품질 관리를 받는 기반을 마련했다. 알고리즘 설계 단계에서부터 학습 데이터 수집과 전처리, 성능 검증, 사용적합성 평가, 임상시험 설계, 인허가 지원에 이르는 전주기 과정이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관리되는 구조다. 병원은 이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신뢰성과 재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연구협력 기업을 향한 효과도 크다. 분당서울대병원과 임상시험이나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국내 AI 의료기기 제조업체들은 병원이 구축한 ISO 13485 기반 인프라를 활용해 고도화된 인허가 자문과 소프트웨어 시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알고리즘 성능평가, 리스크 분석, 임상시험 프로토콜 검토 등에서 병원과 기업이 같은 품질 기준을 공유하게 되면서 개발 효율과 규제 대응력이 함께 높아지는 구조다.

 

의료 AI 시장은 영상 판독, 병리 분석, 환자 모니터링, 진료 의사결정 지원 등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동시에 고위험 의료기기급에 해당하는 알고리즘이 늘어나면서 안전성과 신뢰성에 대한 규제 기관의 요구도 강화되는 흐름이다. 병원 단계에서부터 국제 규격에 맞춘 품질관리 체계를 갖춘 것은 향후 대형 병원급 의료기관이 의료 AI 개발과 검증의 허브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의료용 AI 소프트웨어의 인허가 기준이 정교해지고 있다. 미국 FDA는 SaMD와 AI 의료기기 가이드라인을 잇따라 개정하며 알고리즘 변경과 지속 업데이트에 따른 사후관리 요건을 강화하고 있고, 유럽연합은 MDR 아래에서 임상 근거와 리스크 관리, 사이버 보안까지 포괄하는 요구사항을 적용 중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병원이 직접 ISO 13485 체계를 갖추는 시도는 기술 경쟁을 넘어 규제 대응 경쟁에 발맞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국내 규제 환경도 변하고 있다. 최근 제정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은 고영향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 체계를 마련했다. 의료 AI는 환자 안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분야로 고영향 영역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병원이 이런 제도 변화에 앞서 고도화된 연구개발 인프라를 마련한 점은, 향후 고위험 AI에 대한 평가와 감시 체계 구축 논의에서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학종 분당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은 보건의료 영역에서 첨단 AI 활용이 확대되는 상황을 언급하며, 이번 ISO 13485 인증을 통해 의료 인공지능의 아이디어 발굴 단계부터 사용적합성 평가, 성능시험, 임상시험, 인허가까지를 아우르는 전주기 의료 AI 개발 플랫폼을 선제적으로 구축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 연구진과 연구협력 기업 모두가 최상의 전주기 연구개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인프라를 지속 발전시키겠다고 덧붙였다.

 

국내 의료 AI 업계에서는 대형 병원의 품질과 인허가 역량이 산업 생태계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실제 시장에서 신뢰받는 AI 의료기기가 되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의 성능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품질관리와 규제 대응 체계가 필수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산업계는 분당서울대병원의 이번 행보가 의료 AI 기술이 국내외 시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안착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지 주시하고 있다.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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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iso13485#의료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