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싹 다 잡아들이라는 건 반국가단체"…윤석열·홍장원, 내란 재판서 정면 충돌

배주영 기자
입력

내란 혐의를 둘러싼 법정 공방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다시 맞붙었다. 계엄 선포 직후 언급됐다는 "싹 다 잡아들이라"는 발언의 대상과 의미를 놓고 양측이 정면 충돌하면서, 체포조 명단의 실체와 신빙성을 둘러싼 쟁점도 다시 부상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20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 속행 공판을 열고, 지난 13일에 이어 홍 전 차장을 증인으로 불러 반대신문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선 윤 전 대통령이 직접 홍 전 차장을 상대로 질문에 나섰다.

쟁점은 윤 전 대통령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일 홍 전 차장에게 했다는 발언이었다. 홍 전 차장은 앞선 재판에서 당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싹 다 잡아들여서 이번에 싹 다 정리해라"는 말과 함께 "대공 수사권을 지원해주겠다"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고, 국군방첩사령부에 대한 인원과 예산 지원까지 강하게 언급했다고 증언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직접 신문에 나서 홍 전 차장의 기억과 진술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는 우선 방첩사 지원과 관련해 "자금이나 인력보다 더 중요한 건 방첩 관련 정보 아니냐"며 "경찰보다는 방첩사가 간첩 수사 노하우가 있는데, 경찰에만 주려고 하지 말고 방첩사에도 정보를 주라는 이야기를 못 들었느냐"고 캐물었다.

 

이에 홍 전 차장은 "당시 대통령은 여러 사람과 통화했는데, 저는 처음으로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고 지시받았다"며 "여러 지휘관과 통화한 대통령보다는 한 통화를 받은 제 기억력이 더 정확하지 않겠느냐"고 받아쳤다.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원래 국정원 차장에게 전화하지 않는데, 한다면 격려성 아니냐"며 "계엄 관련 임무라면 국정원장에게 주지 않았겠느냐"고 따져 묻자, 홍 전 차장은 "그렇게 잘 아시면서 왜 저한테 그런 지시를 하셨느냐"고 반문했다.

 

핵심 쟁점인 "싹 다 잡아들이라"는 발언의 대상과 의미를 두고도 해석이 엇갈렸다. 윤 전 대통령은 이 표현이 주요 정치인이 아니라 반국가단체를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계엄 선포문을 보면 제가 반국가세력과 종북주사파 이야기를 쓴다"며 "제 관심사인 방첩사 역량 보강과 같은 차원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했나 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반국가단체란 게 대공 수사 대상이 되는 사람들 아니겠느냐. 일반 사람들이 아니지 않느냐"고도 말했다.

 

그러나 홍 전 차장은 당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으로부터 들었다는 체포조 명단을 거론하며 윤 전 대통령의 설명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저에게 소위 체포조 명단을 불러주면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이 반국가단체는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싹 다 잡아들이라는 건 반국가단체란 거냐. 그러면 누구를 잡아들이라는 거냐"고 재차 따져 물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체포조 명단의 출처를 문제 삼았다. 변호인단은 "체포조 명단은 윤 전 대통령이 아닌 여인형 전 사령관에게 들은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이에 홍 전 차장은 "그 논리가 맞으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며 "여 전 사령관이 대통령에게 지시받지 않고 단독으로 판단해 군사 쿠데타를 스스로 했다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사실상 체포조 구성이 대통령 지시와 무관하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는 취지다.

 

이날 재판에서는 이른바 홍장원 메모를 둘러싼 공방도 거세게 이어졌다. 홍 전 차장은 여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체포조 명단을 받아적은 1차 메모가 있었고, 이후 보좌관이 이를 토대로 정서한 2차 메모를 만들었으나 두 메모 모두 폐기됐다고 설명했다. 계엄 다음날인 4일에는 보좌관이 기억에 의존해 3차 메모를 작성했고, 여기에 홍 전 차장이 일부 이름을 덧붙이거나 동그라미와 취소선을 추가한 4차 메모가 작성됐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이 과정에 주목하며 메모의 신빙성을 거듭 문제 삼았다. 변호인단은 "2차 메모에서 3차 메모로 넘어가는 과정은 정서를 부탁한 게 아니지 않느냐"며 "보좌관 기억에 의존해 재작성해보라고 한 게 맞느냐"고 따져 물었다. 또 최초 자필 메모와 이후 보좌관이 작성한 메모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집중 추궁했다.

 

홍 전 차장은 "다른 게 아니라 추가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기존에 있던 부분에 추가해서 메모했다는 뜻이지 처음과 다음이 다르다고 해석하는 건 오류"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지렁이 글씨로 알려진 1차 메모에 대해선 "헌재에서 설명하기 위해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었는데, 1차 메모는 폐기했으니 없지 않느냐"며 "그래서 인터넷에 있는 그래픽 자료를 다운받아 1차 메모의 예시로 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원본이 아닌 예시 이미지였다는 취지다.

 

윤 전 대통령 측이 당시 메모를 작성한 보좌관의 실명을 밝히라고 요구하자 홍 전 차장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변호사가 국정원법을 위반하는 진술을 강압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항의해 법정 기류가 한때 경색되기도 했다. 국가정보원 직원 신분 보호와 관련된 법적 논점이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이날 공판에서 드러난 쟁점은 크게 두 갈래로 요약된다. 하나는 "싹 다 잡아들이라"는 발언의 실제 대상이 누구였는지, 다른 하나는 체포조 명단을 둘러싼 홍장원 메모의 신빙성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발언이 반국가단체를 겨냥한 일반적 지시였다는 점과, 구체적 정치인 명단이 담긴 메모는 기억에 기대 재구성된 자료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내란 공모 의혹을 차단하려는 모습이다.

 

반면 홍 전 차장은 대통령과 방첩사령관 사이의 지시 관계, 체포조 명단에 여야 주요 정치인이 함께 포함됐다는 정황을 내세우며 계엄 선포와 체포 계획이 정치적 성격을 띤 조직적 행위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여야 수뇌부가 동시에 언급된 대목은 향후 정치권 파장을 키울 여지가 있다.

 

법조계에선 증인 진술의 신빙성뿐 아니라, 메모의 작성 경위와 보관·폐기 과정이 재판부 판단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계엄 선포와 체포조 편성 논의가 어느 수준까지 구체화됐는지, 또 대통령과 군 지휘부 사이의 보고·지시 체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따라 내란 혐의의 법적 책임 범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날 양측의 공방을 청취한 뒤 추가 신문과 증거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내란 재판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향후 증인 채택과 기록 검증 과정에서 또 다른 정치권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치권은 윤 전 대통령 재판의 향배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법원 판단에 따라 국회와 정당 간 책임 공방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배주영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윤석열#홍장원#이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