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3D프린팅 흉부 보호대” 서울아산, 초희귀 심장이소증 수술 성공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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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몸 밖으로 나온 채 태어나는 초희귀 선천성 질환 심장이소증을 국내 의료진이 융합의학과 정밀 수술로 극복하며, 신생아 생존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서울아산병원은 다학제 협진과 3D프린팅 맞춤형 흉부 보호대, 자기유래 배양피부 이식 등을 결합해 국내 첫 심장이소증 신생아 생존 사례를 만들어냈다고 17일 밝혔다. 업계에서는 극도로 낮은 생존율로 알려진 난치 선천질환에서 IT·바이오 융합 기반 재건 수술의 가능성을 입증한 성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4월 10일 태어난 생후 8개월 박서린 양은 출생 직후 심장이 흉곽 밖으로 완전히 노출된 상태였다. 흉골이 형성되지 않았고 흉부와 복부의 피부 및 연부조직 결손으로 심장과 폐 일부가 체외로 돌출돼 있었으며, 자가 호흡 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폐 기능이 저하돼 있었다. 심장이소증은 100만 명당 5~8명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초희귀 질환으로, 환자의 90% 이상이 출생 전에 사망하거나 출생 후 72시간을 넘기지 못하는 치명적 병이다.

국내에서는 신생아 심장이소증 생존 보고가 없었고, 해외에서도 성공 사례와 구체적 수술 프로토콜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심장을 흉강 안으로 단계적으로 이식하고, 인체 조직공학과 3D프린팅 기술을 결합한 재건 전략을 택했다. 병원은 소아청소년심장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소아심장외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융합의학과 등으로 구성된 다학제 팀을 구성해 장기 치료 로드맵을 세웠다.

 

기술적 핵심은 세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출생 직후 심장과 개방 흉부를 보호하는 응급 안정화 단계다. 의료진은 인공호흡기 치료와 멸균 드레싱을 즉시 시행해 감염과 건조를 막고, 생후 하루 만인 4월 11일 성형외과가 인공피부를 덮는 수술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노출된 심장을 외상과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종의 생체 장벽을 구축했다.

 

두 번째는 심장을 점진적으로 흉강 내로 이주시키는 고난도 수술이다. 심장혈관흉부외과는 5월 7일, 14일, 22일 세 차례에 걸쳐 심장 위치를 이동시키는 수술을 진행했다. 좁은 흉강 내에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혈압을 유지하고 간 등 주요 장기를 손상시키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수술 중 실시간 혈역학 모니터링과 미세 단위 조직 조작이 요구됐다. 의료진은 간을 아래쪽으로 내려 공간을 확보하면서 심장을 조금씩 안쪽으로 이동시키는 단계적 접근을 택했고, 세 번째 수술에서 심장 전체를 흉강 안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세 번째는 흉부 피복과 구조적 보호 단계다. 6월 10일 성형외과는 서린 양의 피부를 소량 채취해 체외에서 배양한 자기유래 배양피부를 흉부에 이식했다. 이는 타인의 피부를 쓰는 이식과 달리 면역 거부반응을 최소화할 수 있고, 유아기 성장에 맞춰 탄력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배양피부는 뼈와 같은 단단한 구조를 대신할 수 없어, 기계적 보호 장치가 추가로 필요했다.

 

융합의학과는 이 지점에서 IT 기반 정밀의료 기술을 결합했다. 3D 의료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린 양의 흉곽 구조를 분석한 뒤, 양측 흉곽을 안정적으로 모아 흉벽이 벌어지지 않게 지지하는 맞춤형 3D프린팅 흉부 보호대를 제작한 것이다. 이 보호대는 환아의 체형과 결손 부위에 정확히 맞춰 설계·제조됐고, 상대적으로 가볍고 인체 적합성이 높은 소재를 사용해 호흡과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 결과적으로 피부로만 덮인 흉부를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면서도 향후 성장과 추가 수술을 감안한 가역적인 구조를 구현했다.

 

이 과정에서 재활의학과도 초기부터 참여해 근골격 발달과 호흡 재활 프로그램을 병행했다. 심장 위치와 흉부 구조가 일반 신생아와 다른 상태에서 성장하는 만큼, 근육 발달과 폐 기능 성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의료진은 이런 재활 치료가 향후 심폐 기능 예후와 운동 능력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린 양은 생후 2개월 무렵 심장이 제자리를 찾은 이후 상태가 꾸준히 호전돼 일반병동으로 옮겼고, 생후 100일 무렵 처음으로 부모에게 미소를 보일 정도로 회복했다. 최근 퇴원해 외래 추적 진료를 받고 있으며, 최종 흉벽 교정 수술은 성장이 어느 정도 이뤄지는 만 3세 이후로 계획하고 있다. 당시에는 전흉벽을 단단한 인공 구조물로 재건하고, 주변을 본인 근피부조직으로 덮는 방식의 확정적 재건 수술이 검토된다.

 

글로벌 수준에서도 심장이소증은 수술 표준이 정립되지 않은 영역으로 남아 있다. 개별 병원과 팀이 제한된 증례를 바탕으로 각기 다른 전략을 시도하고 있어, 생존율과 성장 후 삶의 질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과제다. 이번 사례는 출생 전 태아 정밀 초음파를 기반으로 한 진단, 출생 직후 단계적 수술 전략 수립, 조직공학과 3D프린팅을 결합한 흉부 재건까지 이어지는 통합 케어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시도가 장기적으로 희귀·초희귀 선천질환 치료 패러다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유전체 분석과 산전 정밀 초음파 기술 고도화로 선천성 기형 조기 진단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 치료 옵션이 부재한 질환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사례처럼 다학제 협진과 디지털 시뮬레이션, 3D프린팅 맞춤형 임플란트, 배양피부 등 IT·바이오 융합 기술이 결합할 경우, 과거에는 출생 직후 사망이 불가피했던 질환에서도 새로운 선택지가 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극도로 드문 사례 특성상, 이번 성과를 일반화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환아의 성장 과정에서 심장 기능, 호흡기 합병증, 흉벽 변형, 인공 구조물과 조직 간 적합성 등의 장기 데이터를 축적하고, 수술 시점과 방법을 표준화하는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재수술 시 전신 마취와 심폐 기능 부담이 크기 때문에, 추가 교정 수술 계획도 정밀하게 조정될 필요가 있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이번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심장이소증과 유사한 중증 흉곽·복벽 결손 환아에 대한 임상 프로토콜을 정교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3D프린팅 기반 환자 맞춤형 보호대 설계 기술과 배양피부 이식 노하우를 다른 희귀 선천성 기형 치료에도 확장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이런 융합 의학 모델이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용 3D프린팅 장비, 바이오소재 산업에도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와 의료현장은 초희귀 질환 치료에서 쌓이는 한 건 한 건의 임상 데이터가, 정밀의료와 맞춤형 의료기기 산업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동시에 비용 부담과 보험 적용, 윤리적 의사결정 과정 등 제도적 과제도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서린 양 사례처럼 기술과 협업이 결합한 성공 경험이 공유될수록, 희귀 질환 아동과 가족을 위한 치료 옵션이 점차 넓어질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융합의학 기반 수술 모델이 실제 임상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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