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북미수출 축 상징성 부각”…관세 리스크 속 대규모 투자→장기 잔류전망
한국GM이 미국 수입차 고율 관세 여파로 재점화된 한국 시장 철수설을 잠재우기 위해 북미 수출 기지로서의 성과와 국내 투자 계획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국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 시장에서 거둔 점유율과 신규 고객 유입 효과를 근거로 한국 생산 거점의 전략적 가치를 부각하는 동시에, 대규모 투자와 신차 투입 계획을 통해 내수 부진을 반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관세·노동 환경 등 구조적 리스크가 상존하지만, 중장기 생산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로 장기 잔류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GM은 15일 인천 GM청라주행시험장 타운홀에서 2026 비즈니스 전략 콘퍼런스를 열고 내년 비즈니스 전략과 핵심 이정표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행사에서 한국GM이 담당하는 생산·연구개발 역할과 글로벌 시장 실적이 집중적으로 소개됐으며,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성과가 강조됐다. 한국에서 생산된 스포츠유틸리티차 모델은 10월 기준 미국 소형 SUV 시장에서 점유율 36.7%를 기록했고, GM 미국 전체 판매의 11.8%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성과는 상징적이다. 한국GM에 따르면 트랙스 크로스오버 구매 미국 소비자의 절반이 기존 GM 비이용 고객으로 파악돼, 한국 생산 차량이 GM의 신규 수요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한국산 대미 수출 차량에 15% 관세가 부과되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한국 공장이 여전히 북미 수출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지난해 기준 한국GM의 대미 수출 비중은 84.4%에 달했다.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사장은 콘퍼런스에서 한국 법인의 글로벌 생산 기지로서의 위상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한국GM이 견조한 글로벌 수요에 대응하며 GM의 성장 전략에서 핵심적인 생산 거점 역할을 수행 중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에 대한 GM의 약속은 흔들림이 없으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준비가 어느 때보다 충실히 갖춰지고 있다고 언급하며 철수설을 부인했다. 이러한 발언은 관세 부담이 장기화하더라도 생산 포트폴리오와 비용 효율화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읽힌다.
내수 전략 측면에서 한국GM은 약 4천400억원, 미화 3억달러 규모의 국내 투자를 예고하고 내년에 4개 이상의 신차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수년간 내수 판매 기반이 약화된 상황에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한국GM의 국내 판매는 1만3천952대에 그치며 전년 동기 대비 39.4% 줄었다. 11월에는 973대를 기록해 월 판매가 1천대 밑으로 내려앉는 등 수요 기반이 취약해진 모습이 수치로 드러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카드로 한국GM은 북미에서 강세를 보이는 GMC와 뷰익 도입을 본격화한다. 회사 측은 내년에 GMC 3개 차종과 뷰익 1개 차종을 순차적으로 선보여 수익성이 높은 수입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GM의 4개 글로벌 브랜드가 모두 도입된 국가는 미국·캐나다·멕시코를 포함한 북미 지역 외에는 한국이 처음이다. 한국GM은 이 구도가 한국 시장이 GM 글로벌 전략에서 차지하는 상징성과 전략적 중요성을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측면에서도 한국의 위상을 부각하며 기술 투자 스토리를 곁들였다. 한국GM은 약 100억원을 투입해 핸즈프리 운전자 보조 시스템 슈퍼크루즈를 국내에 도입한 바 있다. 슈퍼크루즈 상용화는 북미와 중국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다. GM이 핵심 기술을 제한된 시장에 우선 적용해 온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시험적이면서도 전략적인 하이테크 도입 시장으로 간주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GM을 둘러싼 불안 요인은 여전히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이 지속될 경우 가격 경쟁력 약화 우려가 반복적으로 제기될 수 있고, 내수 부진이 개선되지 않으면 생산·판매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철수설이 재점화된 배경에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사업 구조와 마진 압박, 그리고 정책 환경의 불확실성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업계는 진단한다.
자산 구조 개편도 시장의 경계심을 자극하는 대목이다. 한국GM은 지난 5월 전국 9개 직영 서비스센터와 인천 부평공장 일부 시설을 매각하고, 내년부터 협력 서비스센터 중심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고정비를 줄이고 자본 효율성을 높이려는 조치로 해석되지만, 일각에서는 장기 축소의 전조로 보려는 시각도 존재한다. 서비스 네트워크의 질과 전국 커버리지 유지 여부가 향후 브랜드 신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전환 과정의 세밀한 관리가 요구된다.
노동 관련 규제 변화도 또 하나의 구조적 변수로 거론된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경영 리스크를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헥터 비자레알 사장은 지난 8월 고용노동부 간담회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재고를 요청한 바 있다. 그는 집단 분쟁과 손해배상 책임 구조 변경이 해외투자 기업의 리스크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GM이 대규모 투자와 신차 투입, 기술 도입을 앞세워 장기 잔류 의지를 분명히 했으나, 관세 정책과 국내 판매 회복 여부에 따라 향후 사업 구조 조정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북미 수출 기지로서의 기여도와 한국 내 정책·노동 환경의 안정성이 맞물려야 지속 투자와 고용 유지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한국GM은 2028년 이후에도 한국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내수시장에 대한 의지를 재차 표명했다. 다만 관세·노동·수요라는 삼중 변수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한국GM의 다음 10년을 결정짓는 핵심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