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검색도 의료다…성별 선호 진료, 어디까지 허용되나
민감한 신체 부위를 진료받을 때 환자가 의사의 성별을 선호하는 현상이 온라인에서 뜨거운 논쟁을 낳고 있다. 최근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항문외과 여의사 검색 사례가 확산되면서, 디지털 흔적을 통해 노출된 환자의 선택이 어디까지 존중돼야 하는지, 또 어떤 기준으로 성적 대상화와 의료적 필요를 구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원격진료 플랫폼과 의료 AI 추천 시스템이 확산되는 가운데, 환자의 성별 선호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윤리적 기준과 데이터 처리 원칙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논란의 발단은 한 사용자가 남자친구의 검색 기록에서 항문외과 여의사를 의도적으로 찾아 진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비롯됐다. 게시글 속 남성은 과거 남성 의사에게 항문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강한 불쾌감과 성 정체성 혼란에 가까운 경험을 했고, 이후 재발한 질환 때문에 트라우마를 피하고자 여성 의사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작성자는 이를 두고 변태적 목적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고, 온라인 공간은 환자 선택권과 성적 대상화 여부를 둘러싼 찬반 의견으로 갈렸다.

의료계에서는 민감 부위 진료 시 환자의 성별 선호를 일정 부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 산부인과에서 여성 환자가 여성 의사를, 비뇨기과에서 남성 환자가 남성 의사를 선호하는 것처럼 항문외과, 비뇨생식기, 성형외과 등 신체 노출이 큰 진료 영역에서 유사한 요구가 반복돼 왔다. 특히 트라우마 경험이 있는 환자의 경우 의료진 성별을 포함한 진료 환경 선택이 치료 순응도와 재진 의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정신건강의학 분야의 분석이다. 다만 특정 성별의 의료진을 일관되게 성적 상상과 연결 짓는 경우라면 의료 목적을 넘어선 행위로 볼 여지가 있어, 의료기관 차원에서도 명확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확산은 이런 논쟁을 더욱 전면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원격의료 앱과 병원 예약 플랫폼은 이미 의사 성별, 경력, 진료 스타일 같은 비(非)의학적 요소까지 필터로 제공하고 있으며, 향후 의료 AI 추천 시스템이 본격 도입될 경우 환자의 과거 검색 패턴과 선호 데이터를 학습해 진료 매칭에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항문외과처럼 데이터가 민감한 진료과에서는 이러한 선호 정보가 개인정보 보호법상 민감정보로 분류될 소지도 있어, 수집과 활용 단계마다 별도의 동의와 비식별화 기술 적용이 요구된다.
해외에서는 환자 성별 선호를 둘러싼 논의가 이미 제도와 가이드라인으로 일부 정리돼 있다. 미국과 유럽의 다수 병원은 산부인과, 비뇨기과, 정신건강 분야에서 환자의 성별 선호를 합리적 범위 내에서 반영하되, 의료진에 대한 차별적 요구나 성적 언행이 수반될 경우 진료 거부나 전환을 허용하는 내부 규정을 두고 있다. 영국의 일부 NHS 병원은 환자가 성별 선호를 표기할 수 있는 디지털 접수 시스템을 운영하면서도, 알고리즘이 인종이나 성별 편향을 강화하지 않도록 선호 데이터의 활용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디지털 헬스케어와 관련한 규제 체계는 아직 충분히 정교하지 않다. 원격의료가 제한적 형태로 시범 적용되는 상황에서, 플랫폼이 수집하는 환자 선호 정보와 검색 기록이 어디까지 의료 서비스 향상을 위한 데이터로 인정될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 동시에 성별과 진료과목이 결합된 세밀한 데이터는 데이터 브로커나 광고 생태계로 넘어갈 경우 성적 대상화, 타깃 마케팅, 편향적 프로파일링 같은 부작용을 낳을 소지가 크다. 의료법과 개인정보 보호 관련 법령이 디지털 환경에서의 의료 검색 패턴까지 포괄해 규율할 수 있도록 세부지침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쟁을 개별 연애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 환자 선택권과 젠더 감수성의 교차 지점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 의료윤리 연구자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검색 기록이 곧바로 도덕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분위기 자체가 문제라며, 환자가 자신의 몸과 심리적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의료진 성별을 선택할 권리는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플랫폼과 병원은 이런 선호가 특정 성별 의료진의 노동 부담을 왜곡하거나 성적 대상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데이터 설계 단계에서부터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 AI와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이 고도화될수록, 환자의 사적 선호와 의료적 필요, 그리고 윤리적 경계의 충돌은 더 잦아질 수 있다. 산업계는 사용자 경험 향상을 위한 맞춤형 추천 기능을 강조하지만, 의료현장은 인간 존엄과 직업 윤리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는 인식도 뚜렷하다. 기술과 데이터가 앞서가는 만큼,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윤리 기준과 규제 장치가 함께 논의되지 않는다면, 비슷한 논쟁은 다양한 형태로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기술과 윤리, 산업과 제도 간 균형이 디지털 시대 의료 신뢰의 핵심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