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1,465원 시대 지속”…한국 기업, 전방위 비용 압박에 비상 경영
현지시각 기준 19일 오전, 한국(Republic of Korea)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465원 안팎을 오가며 고환율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원화 가치 하락에 따라 원자재와 달러 결제 비용이 급등했다며 내년도 경영 계획과 투자 전략을 전면 재점검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한다. 연평균 환율이 외환위기 당시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수출·수입 구조에 따라 업종별 명암이 뚜렷해지는 국면이다.
현지시각 기준 19일 오전 11시 45분 원·달러 환율은 1,465.00원을 기록해 전날보다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연평균 환율이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국내 대기업들은 내년도 경영 계획의 기준 환율을 1,400원대로 상향 조정하며 비상 대응에 들어갔다.

정유업계는 대표적인 환율 민감 업종으로 꼽힌다. 국내 정유사는 연간 10억배럴 이상 원유를 전량 해외에서 달러로 수입하는 구조여서 환율 상승이 곧바로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분기보고서에서 3분기 말 기준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약 1,544억 원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정유사들은 전체 생산품의 절반 이상을 수출해 환율 상승분을 일부 상쇄하고 있으며, 파생상품 투자를 통한 헤지 전략으로 중장기 환위험 관리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내년도 경영 계획을 환율 1,400원 수준으로 두고 수립하고 있으나, 매달 전월 평균 환율을 기준으로 조정하고 있어 변동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고환율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항공사는 전체 영업비용의 약 30%를 차지하는 유류비는 물론 항공기 리스료, 정비비, 해외 체류비 등 주요 고정비를 달러로 결제해 환율 상승 시 비용 압박이 크게 확대된다. 여기에 원화 약세로 해외 여행 비용이 체감상 높아지면서 해외 관광 수요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달러 강세에 따른 외화환산 손실 부담도 커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해 3분기 말 기준 순외화부채가 약 48억 달러라고 밝히며, 환율이 10원 오르면 약 480억 원의 외화평가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대한항공은 통화·이자율 스와프 계약 등으로 일부 외화 노출을 헤지해 손실을 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고, 항공사들은 내년도 사업 계획에서 환율 대응 강화 방안을 별도로 검토 중이다.
해운업계의 경우 달러 가치 상승이 해상운임을 원화로 환산할 때 환차익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수혜가 예상된다. 최근 글로벌 해상운임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강달러로 수취 운임의 원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수익성에 일정 부분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업계는 국제 유가가 동반 상승할 경우 연료비 부담이 커져 환율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될 수 있다고 본다.
철강업계는 철광석과 제철용 연료탄 등 필수 원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가운데 미국(USA)의 50% 부품관세 부과와 환율 급등이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 제품 수입단가가 크게 뛰었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요가 위축돼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충분히 전가하기 어려운 구조가 부담을 키우고 있다. 대형 철강사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로 유연탄과 철광석 등 주요 원료를 구매하는 이른바 ‘내추럴 헤지’ 전략으로 환율 변동 영향을 완화하려 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환율 변동에 대한 환위험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시나리오별 전망을 통해 환율 변동성 확대가 경영 활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식품업계는 원재료 수입단가 상승으로 원가 압박이 꾸준히 커졌다고 전한다. 국내 식품 제조업의 국산 원재료 사용 비중은 31.8% 수준에 그치며, 밀·대두·옥수수·원당 등 핵심 원재료 대부분이 수입에 의존한다. 롯데웰푸드는 3분기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10% 변동할 경우 세전 손익에 35억 원 규모의 영향이 발생한다고 공시했다. CJ제일제당은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하면 세후 이익이 13억 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오뚜기는 원재료와 부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에서 고환율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으며, 수출 증가 폭은 완만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라면 수출이 큰 삼양식품은 라면 주요 원료를 수입해 환율 부담이 존재하지만, 수출 비중이 약 80%에 달해 환차익으로 일부 상쇄되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커피 원두 가격과 환율 모두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프랜차이즈 카페의 비용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스타벅스’를 운영하는 SCK컴퍼니는 3분기 영업이익이 600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6% 줄었다며, 국제 커피 원두 가격 강세와 강달러 기조가 원두 수입단가를 끌어올린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식품업체 상당수는 올해 상반기 탄핵 정국 등 국내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이미 가격을 한 차례 인상한 만큼 단기간에 추가 가격 인상에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내년 사업 계획을 세우면서 환율을 낙관적으로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결국 내부 비용 효율화를 통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식품산업협회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주요 식품 원자재에 대한 수입 관세를 낮추기 위해 할당관세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고환율 영향은 수입 농축산물 가격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국제 시세 상승과 환율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미국산 냉장 갈비살 가격은 100g당 4,846원으로 전년 대비 9.7% 올랐고, 평년보다 22.4%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국내 소비자 물가에도 추가 압력을 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면세점 업계는 강달러 장기화로 사업 환경이 크게 악화됐다고 평가한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유지하면서 달러 기준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면세점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일부 품목에서는 일반 백화점보다 비싼 ‘가격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여기에 방한 관광 트렌드가 단체 쇼핑 중심에서 개별 경험과 체험 위주로 바뀌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체류비를 먹거리와 문화 체험에 더 많이 쓰는 경향이 나타났고, 면세점 객단가를 추가로 끌어내렸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면세점들은 환율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할인·쿠폰, 환율 보상 혜택을 확대하고 체험형 이벤트를 늘리고 있지만 환율 상승분을 완전히 상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한다.
인건비와 임대료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구조조정도 이어졌다. 롯데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지난해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현대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올해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인천국제공항 임대료 부담이 커지자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각각 DF1·DF2 권역 사업권을 반납하며 사업 규모를 축소했다.
대형마트들은 수입 식품과 축산물 가격 급등에 맞춰 조달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이마트는 아몬드·냉동 과일·올리브유 등 주요 수입 원물을 연간 수매 계약 방식으로 확보해 가격 변동성을 낮추는 전략을 택했다. 수입육의 경우 환율 상승으로 냉장육 시세가 오르자 냉동육 물량을 5∼6개월치 선확보해 비축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미국산 소고기 가격이 오른 점을 고려해 호주산 소고기 매입을 늘렸고, 지난 7월 사전 계약을 통해 호주산 소고기 물량을 전년보다 약 20% 확대했다. 홈플러스는 고환율 장기화에 대비해 수입 돈육 판매 전략을 재구성하고 있다. 현재 돈육 판매에서 냉장 제품 비중은 90%, 냉동은 10% 수준이지만, 향후 비축이 가능한 냉동 품목 물량을 늘리고 수입국을 다변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원료 수입 비용과 수출 실적에 고환율이 상반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달러로 거래되는 글리세린·지방산·계면활성제와 유럽(EU)산 유화제 등 주요 성분 가격이 환율에 민감해 원가가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화장품 기업 관계자는 “달러와 유로가 모두 강세인 만큼 수입 원료 가격 상승 가능성이 있어 환율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K뷰티 인기에 힘입어 수출이 늘면서 환율 상승이 수출 대금의 원화 환산액을 키우는 효과도 나타난다. 또 다른 화장품 기업 관계자는 “환율 상승으로 해외 매출이 증가하는 측면이 있어 원부자재 가격 상승분을 일부 상쇄하고 있다”며 “다만 장기적인 영향은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은 “환율 변동에 따른 원재료 가격 인상 가능성을 면밀히 확인하고 대응책을 검토 중”이라며 “구매처 다변화와 글로벌 사업 확장을 통해 환율 리스크 관리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도 “고환율로 원료 수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차손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으며, 환율 변동에 대비한 장기 대응책도 수립 중”이라고 말했다.
패션 업계에서는 수입과 수출이 동시에 이뤄져 고환율 영향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원단과 부자재를 수입하는 브랜드 업체는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지만, 수출 비중이 높은 ODM 기업은 환차익으로 일부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LF 관계자는 “캐시미어·울 등 고급 원단과 부자재는 공급처를 분산하고 구매 시점을 나눠 단기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 “고환율 장기화 시 비용 구조에 영향이 불가피해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LF는 또 “환율 시나리오별 비용 구조와 해외 공급처 구성, 운영 효율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내년도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류 ODM 업체 한세실업은 “수출 대금을 환전할 때 원화 수익이 늘어나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원자재와 물류비 등 달러 결제 기반 비용도 함께 상승한다”며 “내년 사업 계획에 환율 리스크를 반영하고 대응책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철강·원유 등 원자재를 수입하는 중소 제조업체의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고환율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원부자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에 부담이 커지고 있어 환율 변동과 기업별 영향 정도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다”며 “경영자금 지원과 환율 변동 관련 안내·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환율은 거시경제 구조와 연관된 측면이 커 단기 정책 수단만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중소기업의 스마트 팩토리 도입과 연구개발 지원 등 혁신 역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장기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 강세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각자 환헤지, 비용 효율화, 공급망 재편 등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고환율 국면이 장기화할 경우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제사회는 미국 통화정책과 글로벌 경기 흐름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어느 수준에서 안정을 찾을지, 그리고 한국 경제와 기업들의 체질 개선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