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노벨과학상 27명, 韓 0명”…기초과학 연구문화 차이 뚜렷
노벨 과학상 수상자 수에서 일본이 27명, 한국은 0명이라는 격차가 반복되고 있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과 노벨화학상까지 일본 연구자가 동시에 수상하면서 과학계에선 또 한 번 근본적인 연구개발(R&D) 시스템 혁신 필요성이 대두됐다. 한국이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화적 도약을 이뤘지만, 과학 분야에선 여전히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노벨위원회는 '조절 T 세포'의 면역 역할을 밝힌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교수와, '금속·유기 골격체(MOF)' 소재를 개발한 기타가와 스스무 교토대 교수를 각각 생리의학상과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두 과학자 모두 일본 대학에서 연구를 이어온 국내파 전문가로, 일본의 내실 있는 기초과학 인프라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일본의 노벨 과학상 성과는 1949년 유카와 히데키(물리학상) 이후 누적 27명, 이 중 21세기 들어 22명을 집중적으로 배출했다.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고르게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일본 기초과학의 성과 바탕에는 19세기 근대화 시작부터 100년 넘게 쌓인 과학 인력 양성 프로그램, 자생적 연구 생태계, 장기적 연구투자 문화가 있다. 특히 도쿄대, 교토대 등 국내 대학에서 학위를 딴 연구자들이 중심이며, 실패를 허용하고 도전적 연구를 장려하는 연구문화가 새로운 성과로 이어져 왔다.
일본은 1995년 과학기술기본법 제정 이후 기초과학 R&D 투자를 제도화해 5년 단위 중장기 계획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휴먼 프런티어 사이언스 프로그램' 등 국제 협력에도 적극적이며, 사회 전반에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관심사에 몰입할 수 있는 ‘오타쿠’ 연구 환경이 형성돼 있다는 평가다. 예컨대 2002년 노벨화학상의 다나카 고이치처럼, 특별한 대학원 경력 없이 오랜 기간 자신의 연구 주제를 파고든 사례도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산업화와 경제성장 중심의 단기성과형 R&D 체제가 201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기초과학 투자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구비 조기성과 압박, 취업률 중심 대학 평가 등으로 창의적 장기연구, 실패가 동반된 도전적 시도는 여전히 쉽지 않은 환경이다. 실제 신진 연구자들은 독창성보다는 투자 대비 결과를 즉시 보여줄 주제로 쏠리는 경향이 짙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기초과학 예산 축소, '연구 카르텔' 프레임 등으로 논쟁이 커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아직도 대학이 ‘취업기관’처럼 운영되고,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문화 기반이 약하다. 과학계는 단기성과 중심에서 벗어나 장기적 안목, 인류 보편적 가치에 기여할 꿈의 연구에 투자하는 R&D 문화로의 전환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노벨상은 업적의 영향력이 수십 년간 지속되는지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해 수여된다. 따라서 한국도 단기 지원에서 벗어나 중장기 중점 연구소 육성, 실패 수용 혁신형 R&D 등 구조적 변화가 병행돼야 실질적 도약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과학계 전통과 정책, 사회기반 변화가 맞물릴 때 기초과학이 성과를 낼 수 있다”며 “한국 역시 인류 보편 가치에 기여하는 도전적 연구를 지원해야 글로벌 과학 선도국 반열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일본 성과가 국내 기초과학 체질 개선의 자극제가 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